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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12월호
대중문화, 인권, 그리고 국가안보: 홍콩 LGBTQ를 둘러싼 역동의 중첩 _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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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홍콩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상기된 얼굴로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다. 홍콩 공중파 방송에서 2021년에 방영한 드라마 <아저씨의 사랑(大叔的愛)>이라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목만 봐서는 유추하기 어렵지만 이 드라마는 동성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친구들이 흥분하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저씨의 사랑>이 홍콩에서 최초로 공중파를 탄 동성 로맨스물이라는 데 있었다. 부동산 회사에서 펼쳐지는 사내 로맨스물인 드라마는 사장과 룸메이트이자 직장동료인 남성의 열렬한 사랑을 갑작스럽게 받게 된 한 남성의 이야기이다.

 

제목에서 지칭하는 아저씨인 사장은 결혼생활을 문제없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보통의 남성이지만, 회사 직원을 마음에 품게 되면서 이혼을 결심한다. 직장동료는 우연한 계기로 주인공과 룸메이트가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주인공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두 남성의 사랑을 받는 주인공은 이를 부인하고, 이혼 사유를 알게 된 사장의 아내는 믿을 수 없어 하지만 이들의 사랑 자체가 유난히 다른 것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 남성 둘은 최근 홍콩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 그룹 미러(MIRROR)의 멤버이기도 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국에서 BTS의 두 멤버가 공중파 드라마에 출연해 서로 사랑하는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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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아저씨의 사랑> 포스터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드라마를 보면서 홍콩의 열린 LGBTQ 문화를 생각해보았다. 돌이켜보면 홍콩에서 머물던 2017년 내 주변에는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동성 커플을 종종 마주치기도 했고, 홈스테이를 하던 로컬 가족이 동성파트너와 동거하는 친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았다. 비교적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연구한 내 주변에 다채로운 성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건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 대중문화에서 LGBTQ의 사랑 이야기를 작품화하고, 이것을 즐기는 팬층이 공공연하게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BL(Boy’s Love) 문화의 열성 지지자들은 “No BL, No Life”(BL이 없으면 삶도 없다)라는 구호까지 외치며 BL 활동의 거점을 마련해 메이드인 홍콩’ BL 작품을 만들고1), 학생 시절부터 음지에서 BL을 즐겨왔던 내 친구들은 동성 간의 사랑을 행복을 비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최근 홍콩에서는 LGBTQ 커뮤니티에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비단 대중문화의 유행뿐만 아니라, 법원에서 LGBTQ의 권리를 인정하는 중요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 9월 홍콩 종심법원은 동성결혼 인정을 요구한 활동가의 항소를 부분적으로 승인했다.2) 동성결혼에 대한 헌법적 권리를 주장한 활동가의 항소는 기각했지만, 사회적 기본권은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정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한 것이다. 종심법원은 동성커플이 병원을 이용하거나 법적인 상속을 받을 때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대안적인 법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동성결혼을 헌법적인 권리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동성커플도 다른 이성커플과 마찬가지로 헌신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주체로 본 것이다.

 

2018년 활동가가 제기한 법적 소송이 2023년에 이르러서야 동성커플이 부분적으로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 활동가들은 부분적인 승리지만 진정한 변화를 가지고 올 가능성이 생겼다며 법원의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여전히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점에는 실망감을 표현했다.3) 대안적인 법적 틀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상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정부에게 필요한 조치를 촉구했지만, 정부가 특별한 응답을 하지 않은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종심법원은 지난 2월에도 남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4년 간 법적 싸움을 벌인 트랜스젠더 운동가에게 신분증의 성별 표시를 변경하기 위해 전신 성전환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법부 차원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LGBTQ의 권리를 인식한 판결이 나오고 있었다. 20215월에는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이 자신의 동성파트너와 공동 양육권을 부여받을 수 있는 판결을 내렸으며, 20196월에는 해외에서 결혼한 동성커플이 홍콩에 거주할 때 의료보장이나 직장의 배우자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도 판결했다.4)

 

이러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치권의 목소리는 엇갈리고 있다. 114일 홍콩에서 개막한 게이 게임(Gay Games)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린 성소수자들의 스포츠 축제라는 데 의의가 있다. 활동가들은 게이 게임이 홍콩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증진할 수 있다고 그 의미를 강조했지만, 일부 보수적인 입법의원들은 행사 개최 취소 청원을 지지하는 등 반대를 표했다.5) 이들은 전세계의 성소수자가 홍콩에서 집결하는 게이 게임이 외국 세력과의 연대를 가능케 하여 국가보안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주최 측은 게이 게임에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다며 반박했다. 물론 게이 게임은 스포츠와 문화활동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비정치적일 수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권리가 사회의 민주적인 체계와 분위기 조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충분히 정치적인 이슈가 된다. 실제로 수감 중인 민주화 운동가 중에서도 LGBTQ의 권리를 옹호해온 활동가들이 있다. 두 가지 사안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보수적인 입법의원들이 게이 게임을 반대하는 데에는 중국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중국 본토에서 LGBTQ 활동가들에 대한 압박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친 중국적인 성향을 가진 입법의원들이 게이 게임을 LGBTQ의 인권을 옹호하는 서구 이데올로기의 표현이라고 비판하는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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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게이 게임 참가자들의 모습



홍콩에서 LGBTQ는 친근한 문화콘텐츠, 법원의 판결로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 대상,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대중문화를 통해 BL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고, 공식적으로 내려진 법원의 판결은 성소수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제도 마련과 실행을 촉발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인 틀에서 성소수자 이슈를 국가안보 차원으로 납작하게 만들 위험도 공존한다.

 

2019년 사회운동 이후 시민사회의 활동공간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치적인 프레임을 강조하며 활동을 이어온 LGBTQ의 여정이 대중문화의 확산이나 법적인 판결과 맞물리면서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게이 게임처럼 전세계 성소수자와의 연대 이슈로 확장되자 정치적인 해석이 작동하면서 순식간에 LGBTQ 커뮤니티를 압박하는 중국의 큰 흐름 속으로 휩쓸려 버리고 만다. LGBTQ 이슈는 2019년 이래로 활동공간이 줄어든 시민사회의 대응 전략과 어떠한 활동이 검열과 단속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는 정치적 현실을 보여주는 축소판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의 권리가 어떤 정치적인 상황에서도 보호되어야 하는 보편적인 인권이라는 사실이며, 시민사회의 활동이 축소된 홍콩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다.

 


 지금 여기홍콩 11

 

김주영 _ 전북대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LGBTQ는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혹은 Questioning의 줄임말이다여성/남성 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성소수자 전반을 의미하는 퀴어 혹은 여전히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을 통칭한다.

* 참고자료
1) #MM腐女為同好於旺角開BL天堂顧客男女比例4:6 60歲都有成員靠正職幫補書店 自資近6位數拍自家BL劇 成功登上台灣串流平台 谷德昭都讚好#700萬種生活 #4K (2023.1.18. Mill Milk 유튜브 채널 게시 영상)

2) 관련 내용은 REUTERS의 기사 “Hong Kong's top court urges alternative legal framework for same-sex couples”(2023.9.6.) 참고

3) HONG KONG FREE PRESS, “Lack of legal same-sex relationship recognition in Hong Kong a rights violation, top court rules”(2023.9.5.)

4) HONG KONG FREE PRESS, “Explainer: LGBTQ rights in Hong Kong breakthroughs and bitter court battles against discriminatory laws”(2023.9.11.)

5) 관련된 내용은 CNN의 기사 “Hong Kong is co-hosting the Gay Games. But it faces a backlash from the city’s conservative political elites”(2023.11.6.) 참고


**그림 출처

그림 1. https://en.wikipedia.org/wiki/Ossan%27s_Love_%282021_TV_series%29

그림 2. https://edition.cnn.com/2023/11/06/asia/hong-kong-asias-first-gay-games-backlash-intl-hnk/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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