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 이 글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아시아리뷰> 제12권 2호에 게재된 “도시에 대한 ‘관리’와 ‘권리’ 너머: ‘베이징 노동자의 집’ 코뮌 공동체의 정치사회적 함의”라는 필자의 논문 일부를 축약한 것이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해당 논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
국가 주도 도시화 계획과 위계화된 시민권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나아가 글로벌 정치경제를 선도하는 G2 국가로 우뚝 선 중국의 부상은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이동을 수반했다. 2019년 기준으로 중국에는 상주인구 1,000만 명 이상의 거대도시가 18개, 500만 명 이상의 도시가 91개, 100만 명 이상의 도시가 147개 있으며, 상주인구 기준 도시화율은 1949년 10.64%에서 2021년 64.72%로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이 추세라면 2030년에는 약 10억 5,000만 명의 인구가 도시에서 거주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2021년 호적인구 기준 도시화율은 여전히 45% 정도에 머물러, 호적 신분상의 제약과 차별을 받는 유동인구가 약 2억 5,000만 명 정도이다. 특히 대표적 유동인구로 분류되는 농민공은 2021년 기준 약 2억 9,000만 명에 달하며, 도시에 거주하면서도 여전히 심각한 제도적·비제도적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를 경험한 대부분 국가에서 도시로의 인구이동은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중국의 경우 호적제도에 기초한 도시-농촌 이원구조 속에서 농민공은 언제나 사회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법적 존재이자,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졌다. 무엇보다 농민공은 실제 주거하고 있는 도시에서 적법한 시민 혹은 공민 신분을 갖춘 존재로 인정되지 않기에 이등 시민 혹은 비(非)시민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도시 생활에서 제도적으로 기본적 권익을 보장받지 못한다. 즉 도시와 농촌 주민 간 호적 신분의 차이가 ‘사회적 신분’의 차이로 전환되면서, 중국 정부와 기업은 농민공들의 사회적 재생산 비용은 부담하지 않은 채 이들을 저임금 노동력으로만 활용하는 극단적으로 효율적인 도시화를 이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효율적 도시화’ 과정은 지역 간 불균등 발전과 도농 및 계층 간 극심한 격차를 초래했으며, 특히 농민공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도시에서의 차별적 처우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2000년대부터 중국 정부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정치적 안정을 위해 새로운 도시화 발전 전략과 호적제도의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농민공의 사회적 불만과 저항을 정부의 사회관리 체계 내에서 통제할 ‘필요’와 지역 간 균형 발전을 통해 내수 소비를 확대하려는 경제발전 전략 전환의 ‘목표’가 합치된 결과이기도 했다.
특히 중국 정부는 2014년 “국가 신형도시화 규획(国家新型城镇化规划) 2014~2020”을 발표해 새로운 도시화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사회경제 구조의 ‘거대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신형도시화’ 계획의 핵심은 ‘사람 중심의 도시화’이다. 즉 ‘농민공의 시민화’를 통해 기존 도농이원구조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 농민공의 도시정착을 안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부 지역에서는 도시 호구 등록 요건을 완화하고, 일정한 자격을 갖는 유동인구를 대상으로 사회보험과 공공서비스를 확대했으며, 도시와 농촌의 호구를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리고 ‘농민공 시민화’ 전략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 시도로 ‘점수 적립식 호구 부여[积分落户]’ 정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 정책은 관할 구역 내 취업인구 중 해당 지역 비도시 호구 주민을 대상으로 하여, 호구변경 신청의 각종 자질 및 실적(학력, 기술능력, 사회보험료 납부 기간, 사회 공헌도 등)을 점수로 환산하고, 그 총점에 따라 도시 호구로 변경해 주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정책은 기본적으로 특정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을 제한하고, 농민공과 같은 유동인구를 중소 규모의 도시나 외곽으로 이주시키려는 목적이 강했다. 그리고 각급 지방정부가 해당 지역의 조건에 부합하는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에 따라 도시들 사이에 위계(hierarchy)가 공고해졌으며, 일정 자격의 충족으로 획득한 도시 호구를 기준으로 ‘위계적 시민권’이 형성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호구 소지자와 이주자 간의 차등적 사회질서 체계를 정당화하고, 능력주의(meritocracy)에 기초한 도시민의 서열화를 고착화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7년 1월부터 베이징에서 시행된 ‘점수 적립식 호구 부여’ 정책을 보면 일정한 ‘자격’을 충족한 사람에게만 차등적으로 ‘(도)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포섭과 배제의 전략이 그대로 드러난다. ‘신형도시화’ 계획을 통해 ‘사람의 도시화’를 강조하지만, 첨단산업이 아닌 ‘3D 업종’(Difficult, Dirty, Dangerous)에 주로 종사하는 외지출신 농민공들은 ‘저단인구(低端人口)’로 불리며 여전히 도시에서 배제와 축출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신노동자: ‘사회건설’에의 동원과 ‘사회 거버넌스’에서의 배제
개혁개방 과정에서 베이징의 도시건설과 발전에 피와 땀으로 헌신했던 농민공에 대한 제도적 차별과 사회적 배제는 중국 사회에서 ‘공민(公民)의 권리’에 관한 문제 제기를 촉발했다. 특히 2천년대 이후 농민공들의 ‘신노동자’로의 주체화 과정과 이에 따른 조직적 저항이 증가하면서 ‘공민으로서의 권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권리수호[维权]’ 투쟁도 급증했다. 이에 따라 법적 권리에 기반한 공민을 주체로 ‘공민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개혁 시기 중국 사회건설의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는 공민 개념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향할 수 있다는 우려와 신노동자의 집단행동이 당의 지위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다시 당을 중심으로 하고 인민을 주체로 하는 ‘인민사회’ 건설이 시진핑 신시대 새로운 ‘사회 거버넌스(社会治理, social governance)’ 모델이 되었다.
하지만 도시공간에서 배제와 축출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신노동자들에게 ‘공민으로서의 권리’는 여전히 그림의 떡에 불과하며, 이들에게 ‘인민의 주체적 지위’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도 모호하다. 주지하듯이 중국 정부는 2000년대 이후 농민공의 파업이 증가하고, 공식적 노동조합인 공회(工会)의 지원보다 ‘노동 NGO’ 조직이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개입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사회 거버넌스’ 체계의 구축을 통해 노동문제를 규범화하고 제도화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사용자와 평등한 협상을 진행하는 중요한 주체인 ‘공회’에 대한 개혁이 미진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권리수호 행동은 여전히 ‘사회 불안정 요소’로 규정되어 통제와 단속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즉 여전히 ‘안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는 정책 기조가 유지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동쟁의를 비롯한 노동문제도 사회의 ‘안정유지’ 차원에서만 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사회 거버넌스’ 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가 ‘사회조직’의 활성화와 규제 완화이지만, ‘노동 NGO’ 조직은 예외로 취급되고 있다. 즉 중국 정부는 다수의 사회조직에 대해 포섭 전략을 취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경제발전에 위해가 될 우려가 있는 ‘노동 NGO’에 대해서는 ‘안정유지’를 명목으로 탄압과 배제의 전략을 적용하는 분할통치 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사회 거버넌스’ 체계의 구축을 강조한다고 해서 실제로 과거보다 민간영역의 자율성이 높아지고, 사회조직의 활동이 자유로워진 것은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 사회 거버넌스 체계 개혁은 당정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국가운영 및 사회관리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조직에 대한 중국 당정의 통제와 관리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당정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회조직만이 체제 내부로 포섭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신노동자에 대한 ‘사회건설’ 과정에의 동원과 ‘사회 거버넌스’ 체계에서의 배제는 도시공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권력 기제 및 지배구조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주지하듯이 다원 주체의 참여를 강조하는 ‘사회 거버넌스’ 체계로의 전환은 도시지역 기층사회 관리체제의 변화를 수반했다. 즉 사회주의 시기 도시공간에서 통치 기제로 작동하던 ‘단위체제(单位体制)’에서 주민의 거주지역인 ‘사구(社區, Community)’를 중심으로 하는 관리체제로의 변화를 추동했다. 이러한 ‘사구’ 건설을 통한 기층 도시 및 사회관리 방식의 전환에 대해 일원적 거버넌스에서 다원적 거버넌스로, 집권에서 분권으로, 인치에서 법치로, 당내 민주에서 사회 민주로 전환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이에 반해 중국 ‘사구 건설’ 운동은 “단지 행정이 사회를 흡수하는 과정, 혹은 국가가 사구의 실무를 유연하게 통제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상반된 시각도 존재한다. 즉 도시에서 ‘사구 거버넌스’의 주체가 다원화되기는 했지만, 아래로부터 위로의 수평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협력적 네트워크는 형성되지 않았고, 오히려 자본과 권력이 긴밀하게 결합한 왜곡된 거버넌스 방식이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중국에서 ‘사구’는 “국가의 의도와 사회의 자율성이 충돌 및 타협하는 장소이자, 단순한 거주지역을 넘어 도시의 공공영역과 관련된 통치와 행정, 자치를 보여주는 복합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도시는 비록 “국가와 시장에 의해 포획되어 있지만, 교환가치와 상품화의 논리에 저항하는 사회적 투쟁의 근거를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위로부터의 ‘사회 거버넌스’ 및 ‘사구’ 건설과 아래로부터의 신노동자들의 실질적 필요 및 요구가 도시공간에서 어떻게 마주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베이징 노동자의 집’ 코뮌 공동체의 경험과 실천: 도시에 대한 ‘관리’와 ‘권리’ 너머
이와 관련해 신노동자 문화 활동과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베이징 노동자의 집’ 총간사인 쑨헝(孙恒)은 위로부터의 ‘제도 설계’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지역사회 건설을 통한 참여 민주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2002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 단체는 베이징 수도공항 근처의 노동자 밀집 지역인 피춘(皮村)에 위치하며, “신노동자 집단의 문화 구축, 다양한 교육 활동, 공동체 경제 및 상호 협력적 연합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종의 코뮌[公社]을 지향한다.
이들 공동체 운동의 출발점은 신노동자 집단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직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즉 “사회와 기업이 제도화된 방식으로 노동자를 탈사상화[去思想化]”하는 현실을 벗어나려는 실천적 노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실제 생활과 필요에 기반한 신노동자 집단의 조직적 실천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이들의 지향점도 명확해졌다. 즉 첫째로 신노동자들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지역사회[社区]’를 공동체 운동의 활동 공간이자 현장으로 삼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 지향점은 다양한 문예 형식을 통해 신노동자의 사상과 가치관 및 생활 태도를 변화시킴으로써 ‘신노동자 문화’를 창도(唱導)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신노동자 개인과 조직, 그리고 지역사회의 유기적 결합이라는 코뮌 공동체 건설을 지향한다.
먼저 ‘베이징 노동자의 집’은 설립 초기부터 지역사회에 뿌리내린다는 활동 방침을 확립했다. 이는 신노동자 집단의 사회적 상황과 조직의 능력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즉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해 온 신노동자들에게 결핍되거나 부재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에서 상시적으로 연결되어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공통의 감각”을 형성하려는 문제의식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자본이 구매한 ‘노동력’이나 제도적 차별의 대상인 ‘농민공’으로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부모, 자녀, 부부, 이웃, 친구로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필요’를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다. 즉 ‘피춘’이라는 지역사회를 근거지로 새로운 생산방식을 고민하고, 재생산의 필요를 자율적으로 충족하며, 이를 공동으로 운영해 나가는 거버넌스 구조를 창출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들은 ‘신노동자 문화’의 창도를 지향한다. 베이징 노동자의 집 활동가이자 사회학 연구자인 뤼투(吕途)는 ‘신노동자 문화’의 함의를 주체성, 가치관, 기능의 측면에서 설명한다. 즉 신노동자 문화의 주체는 신노동자 자신이며, 자본의 문화와 패권에 반대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먼저 주체의 측면에서 그동안 사회적으로 주어졌던 수동적이고 차별적인 ‘농민공’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스스로 ‘신노동자’로 호명하며 주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신’노동자는 과거 사회주의 시기 ‘국가의 주인공’으로서 안정적 지위와 사회복지를 향유했던 국유기업 노동자[工人]와도 다르며, 개혁개방 이후 부유하는 노동자를 의미하는 농민공과도 구별되는 개념이다. 즉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대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도시에서 차별받는 현실을 자신의 힘으로 바꿔 나가겠다는 주체화 과정의 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자본의 문화적 패권에 대항해 “독립 자주, 자력갱생, 상호협력”을 신노동자 문화의 핵심 가치관으로 제시하면서 다양한 문예 형식을 통해 전파한다. 이처럼 ‘신노동자’라는 개념에는 새로운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창조하려는 갈망이 반영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베이징 노동자의 집’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코뮌의 이상(理想)을 개인과 조직, 그리고 사회적 차원 간의 유기적 결합으로 상정한다. 뤼투의 말처럼 이들의 코뮌 건설 운동은 공허한 이론이나 구호가 아니며, 모든 활동가의 장기적인 실천과 경험이 응축된 ‘문화적 전투’이다. 물론 이 과정이 결코 순탄한 것은 아니며, “막막함과 좌절, 고민과 행동”이 뒤엉켜 있다. 무엇보다 ‘신노동자’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논쟁적이며, 이들의 문화적 실천과 운동도 여전히 탐색의 과정에 있다. 그러나 현실의 구체적 ‘필요’로부터 출발한 ‘베이징 노동자의 집’ 코뮌 공동체의 경험과 실천이 주는 함의는 작지 않다. 위로부터의 도시발전 및 도시관리 정책과 마주치면서 전개되고 있는 이들의 공동체 운동을 통해 도시에 대한 ‘관리’와 ‘권리’ 너머를 상상할 수 있는 이론적·실천적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노동자의 현실적 ‘필요’와 ‘자각’에 기초한 실천 운동은 그 자체로 포스트 사회주의 시기 중국의 도시화 문제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이들의 경험은 계속해서 축적되어 ‘피춘정신’으로 계승될 것이다.
정규식 _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학술연구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아시아리뷰> 제12권 2호, “도시에 대한 ‘관리’와 ‘권리’ 너머: ‘베이징 노동자의 집’ 코뮌 공동체의 정치사회적 함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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