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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10월호
소설이 재현한 1930-40년대 홍콩의 사람들이 말해주는 것 _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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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소설은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한 허구의 이야기다. 소설은 허구이면서도 현실에 뿌리를 단단하게 내린 지극히 사실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현실과 단단하게 결속된 허구의 서사는 가끔 어떤 실체적 문제에 접근하는 데 시사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영국의 오랜 식민지였던 홍콩에서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뜨거운 햇볕 아래 줄을 서 기다린 사람들,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중국. 이 기묘한 풍경을 마주하면서 최근에 읽은 홍콩 소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이 떠올랐다. 홍콩성시대학의 중문과와 사학과 부교수라는 독특한 배경을 가진 작가 마가파이(馬家輝)는 실제 1930-40년대 홍콩에서 살았던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설을 썼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영국이 홍콩을 점령했던 1930년대와 일본이 홍콩을 침략했던 1940년대에 걸쳐있다. 주인공인 록남초이는 광저우에서 목수로 일하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오로지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해 홍콩행을 결정하게 된 인물이다. 홍콩에서 인력거꾼으로 일하던 록남초이가 삼합회의 두목으로 거듭나게 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실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스코틀랜드 출신인 경찰 모리스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 정치적인 기밀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소설은 영국의 식민지 시기를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생존이라는 욕망으로 관통한 사람들의 면면으로 거칠게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홍콩을 점령한 영국도, 내전 상황의 중국도, 그리고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며 홍콩에 주둔한 일본도 이들에게는 모두 적응 해야할 대상일 뿐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생존에 필요한 일들을 정치적 구분 없이 마구잡이로 했다. 그렇게 당시 홍콩에 살았던 사람들은 전략적으로 생존의 방법을 찾았다.

 

영국인은 너희 땅에 잘해주지만 일본인은 너희 땅을 짓밟는다는 걸 잊지 마!”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에서 모리스가, 218

 

혼란스러운 식민지 홍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영국과 짓밟는 일본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을까. 그렇지만 홍콩이 영국의 그늘을 벗어난 지 25년이 지난 지금 잘해주는 영국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홍콩 곁에 남아 있다. 2019년 이후 영국은 홍콩을 떠난 사람들이 영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특별비자 정책을 만들었다. 홍콩의 마지막 식민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은 홍콩 민주화 운동의 적극적인 지지자 중 한 명이다. 시위대는 종종 영국의 국기를 흔들었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했을 때는 번영했던 과거의 홍콩을 함께 떠올리며 애도했다. 추모 장소에서 시위 주제곡을 연주하고 경찰에 연행된 사람도 있었다. 홍콩의 식민지에 대한 향수가 민주화 운동과 연결되는 독특한 지점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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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된 완차이(Wan Chai)에서 2020524일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 모습


사진 공유 사이트인 언스플래시(Unsplash)에 이 사진을 올린 사람은 중국의 국가보안법이 1984년 

중국과 영국의 홍콩반환협정(Sino-British Joint Declaration)극악무도한 위반이라고 비판함.


영국 식민지와 여왕의 존재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홍콩의 현 상황에 대해 언제나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해온 필자의 친구는 자신이 여왕의 팬이었다고 말했다. 여왕이 우아한 사람이었다면서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고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주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여왕의 면모를 홍콩사람들이 특히 좋아했다고 전했다. 영국의 왕실이 영적인 지지를 주었고, 그렇기에 좋아했다는 친구의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에서 영국의 국가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비꼬듯이 우스꽝스럽게 번역해서불렀다는 홍콩의 광둥 사람들이 오늘날 홍콩을 살아가는 친구의 말을 들었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사람들이 일본귀신의 침략에 항의하고 있지만 영국인에게는 어떤가? 영국인도 전쟁으로 이 도시를 빼앗지 않았던가? 지난 왕조의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홍콩을 중국에 돌려주지 않았고, 중국인도 영국인들에게 홍콩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이곳의 중국인들은 지배당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았다. 편하게 살 수 있다면 귀신도 사람이 될 수 있고, 편하게 살 수 없으면 사람도 귀신이 된다. 중요한 건 편하게 살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229

 

소설은 생존을 위해 질주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려 영국도 결국 홍콩 땅을 빼앗았다고 말한다. 기억이 사람들에게 자리 잡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1930-40년대나 지금이나 영국은 홍콩에게 빚을 졌다는 사실이다. 기나긴 식민지 시기가 그 빚 자체이다. 한 세기를 살았던 여왕도 그 빚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왜 여왕은 정신적 지주가 되어버린 걸까? 중국은 왜 교과서 개정까지 하면서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을까? 역사의 아이러니가 따로 없는 오늘을 소설 속 실존했던 인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지금 여기홍콩 4



 김주영 _ 전북대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참고자료

뉴시스. (2022.9.22.). “여왕 추모행사서 하모니카 연주했다고 체포된 홍콩 남성?”

마가파이(허유영 역). 2019.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현대문학.

프란시스 마오. (2022.6.16.). “홍콩 새 교과서, ‘홍콩은 영국 식민지였던 적 없어’”, BBC NEWS 코리아.

Hillary Leung. (September 18, 2022). “‘If all was well, I wouldn’t be here’: Hongkongers mourn the death of Britain’s Queen and a bygone era”, HKFP(Hong Kong Free Press).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1: https://unsplash.com/photos/uNHrmuZ6V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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