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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3월호
한자의 탄생, 왜 하늘에서 곡식이 쏟아지고 귀신이 통곡했을까 _ 이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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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GPT의 출현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Generative Pre-TrainingTransformer)가 연초부터 화제다누구나 하고 싶은 질문을 던지면 세상에 존재하는 정보를 종합해 놀라운 수준의 문장으로 대답한다사람들은 이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캡쳐해 SNS에 올리며 자신의 감동을 공유한다지식만 전달해주는 게 아니다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하고 시와 소설도 쓴다에세이도 쓰고 연설문도 솜씨 좋게 작성한다단순한 정보 검색의 기능을 넘어 창작능력까지 갖췄다GPT는 학습 능력이 있어 점점 진화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미국의 의사면허 시험도 통과했다고 한다. <교수신문>에는 GPT가 못 풀게 시험 더욱 정교하게 출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인공지능이 박사논문을 쓸 날도 멀지 않았다그렇다면 대학이라는 지식의 플랫폼은 계속 생명을 유지할까여러 분야에서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을까?

 

인공지능의 능력에 감탄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걱정과 두려움으로 끝난다GPT 개발사의 공동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는 AI가 미래 인류 문명의 최대 위험 요인 중 하나라고 했다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문명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설 때마다 인간은 이런 공포를 느꼈다나도 그랬다. 2016년 알파고가 천재 바둑 기사 이세돌을 꺾을 때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마음이 서늘했다곧 기계가 인간을 정복할 날이 올 것 같아서였다고대의 문헌에도 문명의 발전을 두려워한 사람들의 기록이 있다한자의 탄생을 둘러싼 이야기다.


 

한자의 탄생

한자의 역사는 약 6천년쯤 된다. 한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짐승이나 곡식의 수를 표시하려고 새끼에 매듭을 만든 것이 기원이라는 설이 있다. 결승(結繩)설이다. 황하, 낙수에서 나온 용마와 거북이의 문양을 보고 성인이 팔괘(八卦)를 만들었고 문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설도 있다. 이를 하도낙서설(河圖洛書說)이라 한다. 가장 대표적이고 신화적인 색채가 강한 이야기는 창힐조자(倉頡造字)설이다. 창힐이란 인물이 혼자 만들었다는 학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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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창힐의 초상


창힐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전국 시대에 이미 보편적으로 알려졌다세본에 저송(沮誦)과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저송과 창힐은 황제(黃帝)의 좌사우사였다는 기록이 있고 여씨춘추에서는 해중(奚仲)이 수레를 만들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고 했으며 순자에는 문자를 좋아한 사람은 많았지만 창힐이 전담하여 혼자 만들었다고 했다대체로 건조하고 담백한 기록이다누군가가 문자가 만들어도 이 문자가 통용되려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이를 승인하고 받아들여야 한다하지만 이 이야기는 창힐이 개인의 능력으로 문자를 만들고 황제의 권위로 천하에 보급했다는 내용이다문자의 탄생을 개인의 업적으로 보는 인식은 영웅을 숭배하는 중국의 문화심리가 반영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그런데 한대로 오면 창힐에 대한 이야기에 신비주의 성격이 더해진다.


한대의 문헌을 보면 창힐이 태어나자마자 문자를 만들었다는 말도 있고 창힐의 눈이 네 개라는 말도 있다새의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만든 사람이니 비범한 관찰력이 있어 네 개의 눈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창힐을 성인이라고 호칭하는 기록도 있고 제()라고 호칭하는 기록도 있다문자의 능력을 얼마나 대단하게 생각했으면 창힐을 이정도로 신격화했을까.

 

 

문명과 인간의 선한 본성

유안의 회남자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옛날 창힐이 문자를 만드니 하늘이 곡식을 비로 내리고 귀신이 밤에 통곡했다백익이 우물을 만드니 용이 검은 구름 위로 오르고 신령들이 곤륜산에 깃들었다능력이 많아질수록 덕은 희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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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서한 유안(劉安, BC179~BC122)의 저작 회남자(淮南子)

 

유안은 기본적으로 문명의 발전이 세상에 주는 이로움보다 인간의 선한 본성을 해치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폐해를 더 걱정했다우물의 발명은 세상을 이롭게 했지만 땅 속에 살던 용과 신령이 살 곳을 잃고 쫓겨났다장자에도 채소밭에 물을 주면서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힘들게 물을 긷는 노인 이야기가 나온다그 노인은 기계에는 기계의 이치가 있어 사람들이 효율과 이익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기계를 쓰면 순박한 본성을 보존할 수 없다고 했다유안이 능력이 많아질수록 덕이 희박해진다고 한 말과 같은 맥락이다유안은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자신을 꾸미고 서로를 속인다고 생각했다그럴 수 있다이익이라는 것은 본래 배타적인 속성을 갖고 있으니까.

 

  

지혜는 불행의 씨앗

그렇다면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에서 곡식이 내리고 귀신이 밤에 통곡했다는 말도 문자의 탄생이 어떤 불행의 신호라는 의미로 보인다왜 문자가 생기자 하늘에서 곡식이 쏟아지고 귀신이 울었을까후한의 고유(高誘)는 이렇게 해석했다.

 

창힐이 새의 흔적을 보고 글자를 만들자 사기와 거짓이 생겨났다. 사기와 거짓이 생겨나자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추구하며 경작하는 본업을 버리고 송곳과 칼을 뾰족하게 하는 일에 힘썼다하늘은 사람들이 장차 굶주릴 것을 알고 곡식으로 비를 내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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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거짓말의 발명(The Invention of Lying, 2009미국)>

 

송곳과 칼은 문자를 기록하는 도구다아직 붓과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라 사람들은 송곳과 칼로 목판에 글씨를 새겨 문서를 만들었다사람들이 송곳과 칼을 뾰족하게 했다는 말은 문서를 위조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쉽게 남을 속이고 돈을 벌 수 있는데 누가 힘들게 뙤약볕 아래에서 밭을 갈겠는가? <거짓말의 발명(The Invention of Lying, 2009미국)>이라는 영화가 있다거짓말이 없는 세상이다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말을 진실이라 믿는다주인공은 빈털터리지만 은행에서 8백달러의 잔고가 있다고 말한다번개처럼 떠오른 거짓말이었다순진한 직원은 시스템 에러라 믿고 그에게 돈을 인출해준다그는 간단한 거짓말로 부와 여자와 명예를 얻는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한국)>에 나오는 최민식의 대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이고?” 하지만 세상에 사기꾼이 넘쳐나고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사기를 당하고 굶어죽는 사람도 생기는 법하늘이 이들을 불쌍히 여겨 미리 곡식을 내려주었다는 것이 고유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귀신은 왜 밤에 통곡했을까고유는 또 이렇게 해석했다.

 

귀신은 문서로 탄핵받을까 두려워 밤에 울었다.

 

귀신은 양계와 음계를 오가며 인간의 생사를 주관한다그런데 저승사자가 간혹 생사람을 잘못 데려가는 일도 있었나보다아이의 이름을 개똥이소똥이라고 짓던 것도 저승사자를 헷갈리게 하려던 문화라고 한다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어도 그저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였는데 이제 문서로 염라대왕에게 투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옛날 사람들은 문자에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우리도 제사를 지낼 때 고인의 이름을 적어놓고 절하지 않는가그래서 귀신이 처벌받을까봐 두려워 위기감을 느꼈다는 해석이다귀신의 귀()를 토끼 토()의 오기로 보는 설도 있다글자가 비슷하다귀신이 아니라 토끼가 울었다는 말이 된다토끼털은 붓을 만드는 귀한 재료이기 때문에 토끼들이 두려움에 떨었다는 해석이다기발하고 귀여운 발상이다귀신이나 토끼의 세계는 자연계를 상징한다인간계와 자연계는 서로의 영역이 있는데 문자의 발명으로 경계선에 변형이 생겼다인간계의 영역이 넓어지고 자연계의 영역이 위축됐다.

  

  

문명이 가져온 인류의 자신감

물론 이 학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고금횡단 한자여행>(김준연학민사, 2008)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혹자는 곡식을 풍족하게 내려주어 인간들이 창조적인 사고를 못하게 하려는 하늘의 의도였다고 한다배부른 돼지는 사고를 하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또 혹자는 문자의 탄생으로 지식이 축적되자 하늘에서 곡식이 쏟아지듯 비약적으로 생산이 증대된 현상의 비유라고 했다문명의 발전이 가져온 인류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해석이다.

 

이런 생각들을 보면 옛날 사람들은 문자의 탄생을 신비하고 위대한 사건인 것은 분명하지만동시에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위험하고 불길한 전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양날의 검과 같다어둠을 가르고 세상을 발전시키지만 내 살을 베기도 한다그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제 문명의 발전은 막을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놀라운 속도로 스스로 진화할 것이다인공지능의 발전에 주눅 들지 말고 우리의 살을 베지 않도록 경계하고 감시해야 한다자신감이 필요하다.

  

 


이규일 _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위키피디아

사진 2: 위키피디아

사진 3: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7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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