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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11월호
‘1950년 6월 25일의 전쟁’에 관한 논란: 종전선언이 마침표이자 시작! - 송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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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지상에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약간은 생경한 낱말이 자주 노출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낱말의 확산이 한국의 팝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RM밴 플리트시상식(사실, 이 시상식 명칭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이다.)에서 내뱉은 수상소감을 그 촉발점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행사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의미가 남다르다.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는 극히 공식적이고 상투적인 언급이 중국을 들썩이게 할 줄은 RM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중국 네티즌들이 양국한국과 미국이며 이는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중국 군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무시한 처사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중국의 관영 언론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를 비롯한 중국 내 언론들이 이를 발 빠르게 받아쓰기 시작하면서 항미원조라는 낯선 말이 새삼 우리 앞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 얼마 전에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아이돌 멤버 중에 일부가 자신의 SNS항미원조 70주년을 기념하는 글을 올린 것에 격분한 한국 네티즌이 중국의 한국전쟁 역사 왜곡 동조하는 중국인 연예인들의 한국 활동 제재를 요청한다는 청원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고 이를 국내 언론들이 부채질하면서 이제는 한중 양국 간의 험악한 여론전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그 정점을 찍은 것은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 작전 70주년 기념대회에서 중국국가주석 시진핑의 “70년 전 중화의 우수한 아들딸들로 구성된 중국인민지원군은 인민의 무거운 부탁과 민족의 기대를 짊어지고 평화를 보위하고 침략에 반항하는 정의의 기치를 높이 치켜들고 조선 인민·군대와 함께 29개월 동안 가열 처절한 전투를 거쳐 항미원조 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한겨레신문, 2020.10.27. 기사 발췌)는 연설 내용이다. 이에 미국 측에서는 곧바로 국무부 대변인의 트윗을 통해 중국공산당은 그저 70년 전 전쟁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사실은 북한이 1950625일 남한을 침략한 것이다.”라고 반발했다.

 

이른바 한국전쟁에 대한 젊은 아이돌의 짧은 소감이 본의와는 다르게 동아시아 현대사의 민감한 문제를 다시 소환하는 바람에 중국의 애국주의와 한국 민족주의 간의 갈등을 재현한 격이 되었고 이는 가뜩이나 악화일로에 있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역사 충돌이라는 또 다른 불씨를 더한 형국이 되고 말았다.

 

사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동아시아 현대사 아니 세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 진영이 최초로 격돌한 국제전이었고, 동시에 남북한 간의 내전적 성격도 함께 갖는 전쟁이었다.(박명림, 141쪽 참조) 우리로서는 통일의 기회를 무산시킨 중국의 참전이 두고두고 한스러운 일이겠지만, 중국으로서는 자국의 안보와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태지호·정헌주, 300쪽 참조) 특히, 시진핑 주석이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전쟁이라고 규정했듯이, 중국 입장에서, 이 전쟁은 내전에서 겨우 승리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자신의 국운을 걸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던 절체절명의 도전이었던 셈이다.

 

학자들마다 혹은 관련국 나름의 입장에 따라 이 전쟁은 여러 가지로 호명된다. 6·25사변, 6·25전쟁, 한국전쟁, 한반도전쟁, 조선반도전쟁, 조국해방전쟁, 그리고 항미원조전쟁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학문적 배경과 자국의 이해 게다가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정치적 이념과 복잡다단한 민족감정이 한데 뒤섞인 주관적 자기규정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누가 먼저 이 전쟁을 시작했고 또 누가 최종의 승리자였는지 저마다 입장이 갈린다.

 

물론, 중국이 1950625일 한반도에서 발발한 전쟁을 항미원조를 위한 전쟁으로 규정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북침이나 내전이란 표현까지 더한다면 일반적인 한국 국민으로서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되짚어 본다면, 한반도에서 벌어진 이 참혹한 전쟁에 대한 제대로 된 정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열전(熱戰)은 끝이 났을지 모르지만, 냉전(冷戰)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종전선언은 그래서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전쟁에 마침표를 찍어야 관련국()들 모두가 인정하고 공유할 수 있는 전쟁의 성격 규정과 실체적 규명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전선언은 전쟁의 마침표이자 또 다른 시작이다.


송승석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참고문헌


박명림, ʻ중국군 참전 이후의 재역전과 변화-스탈린, 모택동, 팽덕회, 김일성의 구상과 전략, 『전략연구』 17, 1999,

태지호·정헌주, 중국의 항미원조기념관을 통해서 본 한국전쟁의 기억과 정치적 함의, 『한국정치학회보』 48(4), 2014,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tupian.baike.com/ipad/a2_56_13_01300000206900129526138424234_jpg.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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