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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4월호
마오쩌둥의 ‘중간지대론’과 그 현재적 의의 _ 이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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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다소 제동이 걸리기는 하였지만, 작년 초부터 급변해왔던 남북북미 관계는 동아시아 국제정세 변동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과연 70년 동안 계속되어온 적대적 대립 관계를 해소하고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등을 통한 새로운 평화 체제 구축에 성공할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시국을 맞이하여, 한국 정부의 외교적 역할에 대한 기대와 요구 역시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이 글은 중국 현대사 속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위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의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얄타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점차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주도의 사회주의 진영 사이의 대립으로 치닫게 되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드러나듯이, 그 개념이 과연 동아시아에서도 적합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비판적 견해들이 많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하튼 국제정세는 냉전(Cold War)’으로 표현되는 체제 대립의 단계로 이행하였다. ‘냉전의 시발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19462~3월을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삼고 있다. 케넌(G. Kennan, 1904~2005)이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제안한 것도 이 시점이었고, 처칠(W. Churchill, 1874~1965)이 그 유명한 철의 장막연설을 한 것도 이 시점이었다.


국제정세의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는 1946년 봄부터 중국에서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정치적군사적 대립이 전면적으로 확대되는 배경이 되었다. 194510월의 충칭회담, 19461~2월의 정치협상회의 등으로 이어지던 평화협상의 분위기는 19463월부터 어긋나기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19466월부터 전면적인 국공내전으로 치닫게 되었다. 국공내전의 국제적 배경을 강조하는 연구자들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일련의 협상 및 대립의 과정을 미국과 소련의 관계 변화, 냉전적 대립 구도의 형성 과정과 맞물려 전개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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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안나 루이스 스트롱의 마오쩌둥 인터뷰(安娜·路易斯·斯特朗采访毛泽东)



소 중심의 양극체제가 형성되어가는 상황을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과 중국공산당은 중간지대론(中間地帶論)’이라는 다소 독특한 관점으로 해석하였다. 19468월에 미국인 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Anna Louise Strong, 1885~1970)과의 인터뷰에서 마오쩌둥은 당시의 국제정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매우 광활한 지대가 가로놓여 있고, 여기에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의 수많은 자본주의 국가와 식민지()식민지 국가가 있습니다. 미국 반동파는 이 국가들을 복속시키기 전에는 소련을 침략할 수 없습니다. (중략)미국은 각종 구실을 내세워 수많은 국가에서 대규모 군사 조치를 진행하며 군사기지를 건립하고 있습니다. 미국 반동파는 그들이 세계 각지에 이미 건립했거나 건립을 준비하고 있는 모든 군사기지가 다 소련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이러한 군사기지는 소련을 향한 것입니다. 다만, 현재 미국의 침략을 먼저 당하고 있는 것은 소련이 아니라, 군사기지를 건립한 그 국가들입니다.”1) 

 

19461121일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마오쩌둥은 위의 관점을 재차 강조하며, ‘미국과 소련 사이의 광활한 지대중간지대(中間地帶)’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현재 세계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 그리고 미국과 소련 사이입니다. 이 세 구역의 인민은 모두 미국 반동파에 반대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세계는 미국 제국주의와 전 세계 인민의 모순과 대립(의 세계)입니다. (중략)종합하자면, 세계는 진보하고 있고 소련은 발전하고 있으며, 미국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오늘날의 주요 모순은 미국과 자본주의 세계 기타 국가의 모순이며, 미국과 中間地帶의 모순입니다.”(강조는 필자)2)

 

 12월에도 그는 서구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간지대의 모순을 다시 강조하였다.

 

현재 미국의 반소(反蘇)는 연막탄을 쏘아 세계를 독점 지배하기 위한 것으로서, 먼저 중국과 영국의 이익을 침해하고, 다음에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중간지대(中間地帶)를 침해하려는 것입니다.”3)

 

요컨대, 마오쩌둥은 미국과 소련의 대립 관계를 전제하면서도, 국제사회의 실제 모순은 미국과 중간지대사이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중간지대는 사실상 미국과 소련을 제외한 모든 국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자본주의 국가와 식민지()식민지 국가들이 모두 포함된다. 미국이 소련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소련의 사이에 놓여있는 광활한 중간지대를 먼저 장악해야 하므로, 미국의 반소(反蘇)’ 주장은 중간지대를 침략하기 위한 연막탄이라는 것이 그의 관점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체제의 구분은 무의미하였다. 실제로 중국공산당은 당시 국제정세의 주요 모순을 미국과 소련, 또는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 사이의 대립으로 해석하는 것은 모두 독단적인 선전(武斷宣傳)”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은 1946년 중엽의 국제정세를 독자적인 관점에 따라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독자성은 한편으로는 근대 이래 중국이 경험해왔던 제국주의 침략과 그에 대한 저항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100여 년 동안 외세의 침략을 당해온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마오쩌둥은 당시 미국의 대외정책을 중국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의 맥락에서 해석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비로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 대립의 의미는 퇴색되며, 오로지 중국을 비롯한 중간지대미국 제국주의의 대립이 부각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디까지나 중국을 국제정세의 주요 변수로 설정하려는 관념적 경향도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의 독자적 국제정세 인식을 가져온 요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론해본다. 2000년 넘게 중국을 천하의 중심으로 사고해왔던 관념적 유산과, ‘신중국(新中國)’ 건설을 통하여 부강(富强)한 국가를 재건하려는 민족주의 혁명의 지향은 서로 쉽게 조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중간지대론은 중국을 체제 대립의 한 진영에 속하는 일부분으로서 사고하지 않고 국제사회 주요 모순의 담당자로 설정함으로써, 국제정세 변동의 부차적 요인이 아닌 중심적 요인으로 규정하였다. 중국을 국제정세 변동의 핵심 요인으로 사고하는 경향성이 중화주의적 관념의 유산인지, 대국으로서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특징인지를 명확히 판별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러한 경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94월 현재의 시점에서 중간지대론의 사례를 살펴본 것은 중간지대론의 내용이 목전의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해석하는 데 유의미한 시사점을 갖기 때문은 아니다. ‘중간지대론이 제기된 시점으로부터 이미 70년이 넘게 흘렀고, 무엇보다도 현재 국제사회의 구도는 그때와는 판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중간지대론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는 과연 오늘날의 국제정세에 대한 우리 나름의 독자적, 객관적 분석에 기초한 관점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 자문하게 하기 때문이다. ‘중간지대론의 정확성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외교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기본적인 관점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족적, 국가적 이익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외교 정책의 설정 이외에, 그러한 외교 정책의 토대를 이루는 국제정세에 대한 근본적인 해석과 전망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 것이든, 미래 전망에 기초한 것이든, 국제정세에 대한 체계적인 세계 인식이 갖추어져야만, 요동치는 외교적 변화에 대한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원준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1) 毛澤東, 和美國記者安娜路易斯斯特朗的談話(1946.8.6.), 中共中央文獻編輯委員會 編, 毛澤東選集4, 北京: 人民出版社, 1991, 1193-1194.

2) 毛澤東, 要勝利就要搞好統一戰線(1946.11.21.), 中共中央文獻硏究室 編, 毛澤東文集4, 北京: 人民出版社, 1996, 197.

3) 毛澤東, 同三位西方記者的談話(1946.12.9.), 中共中央文獻硏究室 編, 毛澤東文集4, 北京: 人民出版社, 1996, 206.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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