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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4월호
좌파 포퓰리즘, 인민전선의 새 이름인가 _ 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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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 1935~2014)


2014년에 작고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정치철학자로 정확히 프랑스 철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이 오직 프랑스에만 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라클라우와 오랜 기간 동반자로 함께 작업한 벨기에 출신의 정치철학자 샹탈 무페(Chantal Mouffe)는 실제로 젊었을 때 알튀세르의 세미나에 참여했으며, 라클라우 자신도 알튀세르를 탐독하고 그의 몇몇 개념들(과잉결정, 이데올로기적 호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튀세르의 이단적 상속자라고 볼만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이승원 역, 문학세계사, 2019년)가 번역됨에 따라 라클라우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포퓰리스트 이성에 대하여>(On Populist Reason)라는 저서도 국내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아마 조만간 국내에도 번역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 칼럼에서 우리가 포퓰리즘에 대한 라클라우의 논의에 주목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그의 논의가, 우리가 두 번째 칼럼에서 다룬 ‘인민전선’ 전술의 최근의 이론적 발전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의 논의의 큰 윤곽이 세 번째 칼럼에서 우리가 다룬 바디우의 이론과 몇몇 지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수렴하고, 또 매우 중요한 지점에서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양자의 수렴과 발산은 우리 자신의 정치를 사유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쟁점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두 번째 칼럼에서 이미 말했듯이, 유럽 공산주의 진영이 20세기에 서로 갈라져 싸웠던 가장 큰 쟁점은 ‘계급 대 계급’ 노선인가, ‘인민전선’ 노선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두 노선이 처음으로 가시적인 방식으로 서로 부딪혔던 것은 나치를 비롯한 파시즘 세력에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하는 질문을 둘러싸고였다. 당시 소련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코민테른은 처음에는 ‘계급 대 계급’ 노선을 채택했지만, 이후 이 노선이 처참하게 실패함에 따라 인민전선 노선으로 급선회한 바 있었다. 이런 노선 전환은 매우 복잡했던 독일에서의 상황과 관련된다.


러시아 혁명의 성공에 고무되어 1918년에 행한 독일혁명이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집권 세력이 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배신으로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손에 스파르타쿠스단 지도자인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와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가 즉결 처형된 사건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독일 공산주의자들의 적개심을 극단화했다. 또한 나치 세력이 발흥하고 있었을 당시 독일이 맞이한 경제 위기는 매우 심각한 것이어서, 곧 자본주의가 붕괴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로자의 붕괴론은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준거가 되었다).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낙관 속에서 독일 인민이 조만간 자신들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여기면서, 심지어 나치세력과의 공조 속에서 사회민주주의정부를 흔들기 위한 파업을 조직하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나치가 권력을 잡았을 때에도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곧 인민이 나치의 거짓을 깨닫고 곧 자신들을 지지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코민테른은 결국 계급 대 계급 노선을 포기하고 인민전선을 주장한 디미트로프 테제를 채택하게 된다. 인민전선(popular front)은 다양한 조직에 소속된 노동자 및 농민 세력을 통일시킨다는 통일전선(united front)에 대립하는 것으로, 그것은 소부르주아지뿐만 아니라 일부 부르주아지까지 전선으로 광범위하게 묶어내야만 파시즘에 대한 효과적인 저항을 할 수 있다는 사고에 기반한 전술이었다. 


 이런 인민전선 노선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정치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오였으며, 그것은 바로 일본제국주의에 맞선 국공합작뿐만 아니라, 국공합작 이후 대장정 시기 중국 ‘인민’의 생성을 도모한 그의 성공적인 실천으로 나타났다. 라클라우는 <포퓰리스트 이성에 대하여>에서 마오의 대장정 시기의 투쟁에 대한 짧지만 매우 중요한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하나의 극단적 예로 마오쩌뚱의 ‘대장정’을 들어보자. 여기에 위에서 묘사한 의미의 ‘포퓰리즘’이 있다. 즉, 복수의 적대적 상황들에서 ‘인민’을 역사적 행위자로 구성하려는 시도가 있다. 마오쩌뚱은 심지어 ‘인민 내부의 모순’에 관해 말하고 그래서 고전적 맑스주의 이론에 파문이었던 실체, ‘인민’이 등장한다. (…) ‘인민’은, 순수한 계급 행위자들(생산관계 내의 정확한 위치에 의해 정의되는)의 속성으로 간주되는 동질적 본성을 갖기는커녕, 복수의 단절 지점들의 [등가적] 연결로 인식된다.”(On Populist Reason, Verso, p. 122) 여기서 우리는 라클라우가 마오의 인민전선 노선을 좌파 포퓰리즘의 명확한 사례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라클라우가 말하는 ‘좌파 포퓰리즘’이란 바로 인민전선 노선의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포퓰리즘을 설명하는 라클라우의 이론적 논의의 틀은 바디우의 것과 몇 가지 점에서 수렴하는 양상을 보인다. 우선 라클라우가 이질적 세력들로부터 등가적 사슬을 만들어내는 실천으로서의 포퓰리즘을 주장할 때, 그런 이질적 세력들이란 바로 기존의 권력(헤게모니) 안에서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자들, 다시 말해서 배제된 다양한 세력들을 지칭하며, 이들이 자신들의 이질성들을 하나의 등가적 표면 위에 3등록하는 데에 성공할 때에 비로소 효과적인 대항-헤게모니적 정치가 출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바디우가 배제된 다양한 자들이 하나의 집합(즉 자신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집합)으로 출현할 때 그것이 바로 진리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바디우는 상황상태(국가) 안에 있는 ‘공백’을 명명하는 것이 진리 사건의 정치라고 주장하면서, 이때 이런 공백이란 하지만 단순한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의 다양성”(즉 무는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것들이 그 안으로 모두 들어올 수 있는 공이라는 의미에서)을 뜻한다고 말하는 것은 라클라우가 이질적인 세력들의 등가적 접속을 사고하는 것과 상당히 가깝다. 게다가 라클라우와 바디우는 또 다른 면에서도 수렴하는데, 그들이 공히 인민(등가적 사슬 또는 자신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집합으로서)을 생성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으로서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라클라우와 바디우가 수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의 결정적인 지점에서 발산한다. 라클라우는 인민의 이름을 공동체적 충만성(이런 충만성이 종국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그가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을 의미화 하는 이름이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바디우는 인민의 이름은 결코 충만성의 이름이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공백을 명명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바디우는 공동체적 충만성을 명명하려는 행위는 반드시 진리의 도착으로서의 시뮬라크르(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이름은 나치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비록 라클라우가 현정세에서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포퓰리즘을 생산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라클라우의 논의가 민족 공동체 또는 더 나아가 초민족적 공동체(supranational community)로서의 유럽 등에 준거하는 공동체주의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른 한편 바디우에게 제기해야 할 질문은 그가 공백을 명명해야한다고 말하면서 국제주의를 강조할 때 그것을 어떻게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와 화해시킬 수 있다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최근 에티엔 발리바르는 포퓰리즘의 문제설정을 일정하게 인정하면서도 포퓰리즘이 아니라 대항-포퓰리즘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는데, 그가 말하는 대항-포퓰리즘은 좌파 포퓰리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의 핵심적인 요소로서의 지도자 숭배와 모종의 (민족적이거나 그렇지 않은) 공동체에 대한 준거를 거부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마오 4

 

최원 _ 단국대 철학과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www.flickr.com/photos/dgcomsoc/7215329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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