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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6월호
홍콩의 가사노동자: 착취와 차별의 현장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기 _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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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고용에 관한 논의가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내국인과 일부 중국동포의 일이었던 가사노동을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에게 허용하자는 것이다. 작년에 시행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의 효과를 살펴 가사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를 강화해야 할 시기에 갑작스럽게 대두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주장은 논란을 촉발했다. 특히,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는 동 법에 대한 개정법률안이 지난 3월 국회에 발의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발의된 의안 원문을 보면, “일과 가정의 양립이 위협받는 현실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과 여성의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실질적 대책으로 최저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채용을 제시한 것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지불 제외라는 반인권적인 개정안을 당당하게 제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홍콩과 싱가포르라는 선진사례가 있다. 의안 원문에는 외국인이 보이지 않는 곳이 아닌 같은 생활권에서 일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사회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다소 황당한 기대효과까지 덧붙여져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한국보다 앞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기 시작한 홍콩의 이야기를 통해 개정법률안이 희망하는 기대효과가 굴절되는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실 올해뿐만 아니라 작년 말에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저임금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채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서울시는 고용부와 함께 이번 가을부터 필리핀 가사노동자 100명을 시범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기존의 고용허가제에 가사근로자를 추가하는 방안이다. 그나마 최저임금을 지불한다는 점에서 개정법률안과는 차이가 있지만, 현재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되어 있는 내국인 중심의 이모님에 비해 저렴한 임금 지불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동포 가사노동자도 임금에서 차별을 받아왔다. 결국 내국인과 중국동포 이외의 가사노동자 채용정책 도입은 최저임금 지불 여부와 무관하게 보다 낮은 임금의 노동력을 수입하도록 하며, 모든 가사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전반적으로 낮출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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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홍콩 빅토리아파크에서 텐트를 치고 

휴일인 일요일을 즐기고 있는 가사노동자들의 모습


홍콩에는 2021년 기준으로 약 34만 명의 가사노동자가 있다. 대부분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왔다. 이들은 가사노동 전반, 육아, 그리고 고령화된 홍콩에서 노인 돌봄을 담당하는 필수인력이다. 아이 셋을 양육하고 있는 필자의 친구는 이민을 고민하고 있는데,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이민 이후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기 어려워지면서 부담해야 하는 가사노동일 정도다. 하지만 이처럼 필수적인 노동력에 책정된 임금은 턱없이 낮다.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은 HK$4,730으로 한화로 환산하면 약 80만원이다. 홍콩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HK$40으로 약 6,800원이다. 이에 준하면 가사노동자가 하루에 근무하는 시간을 최소 10시간으로 잡아 계산했을 때 HK$9,600(10시간x24[매주 일요일 휴무 제외]xHK$40)을 받을 수 있지만 현실은 이보다 낮은 월급에 그친다. 고용주의 집에 상주하며 일하는 특성상 하루 노동시간이 10시간일 리도 만무하다는 점에서 가사노동자의 노동 가치는 크게 평가절하 되고 있는 셈이다. 홍콩의 경제는 가사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임금 차별은 또 다른 차별을 손쉽게 불러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작년에는 홍콩 방송국 TVB에서 방영한 드라마에서 필리핀 가사노동자로 분한 배우가 갈색 얼굴 분장을 하고 나와 공분을 산 적이 있다. 당시 논쟁이 꽤 거세었다. 가사노동자 단체는 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홍콩에서 가사노동자는 특히 젊은 여성일 경우 가정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고, 일요일마다 주어지는 휴일에도 통금을 정해 관리해야 하는 어린아이 같은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고층 아파트의 창문을 청소하는 위험한 가사노동을 고용주가 지시하여 가사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적도 많다. 코로나19에 감염된 가사노동자를 집 밖으로 내쫓아 아픈 몸으로 공원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던 사례도 있다. 가사노동자에 대한 물리적이고 성적인 학대와 폭력 사건이 가끔 보도되기도 한다. 모든 고용주가 그렇지는 않지만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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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 일요일에 센트럴의 한 지역에서 함께 춤을 추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가사노동자들의 모습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노동자가 고용주의 집에 거주하지 않고 출퇴근을 하면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근무처의 자유로운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 고용허가제 자체가 가진 문제를 생각하면 또 다른 인권침해 요소가 상존한다. 홍콩에서는 최근 가사노동자가 계약 기간인 2년 이내에 고용주를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조기 계약해지가 가능한 사유는 예외적으로 고용주의 이민, 사망, 재정적인 이유, 가사노동자가 학대나 착취되었다는 증거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인정한다. 계약만료 전에 고용주 변경을 희망하면 홍콩을 떠나 비자발급 신청을 처음부터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조치는 고용주 보호를 위한 것일뿐, 가사노동자의 입장에서는 타당하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홍콩의 입법의원들도 이에 동조하며 위험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입법의원들은 고용주의 입장에서 가사노동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며, 현재의 정책이 가사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가사노동자가 계약 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고용주를 찾아야 하는 2주간의 기간도 길다면서 7일로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주 동안 가사노동자는 새로운 고용주를 찾지 못하면 홍콩을 떠나야 한다. 홍콩의 가사노동자 지원단체는 가사노동자들이 고용주를 변경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이라며 정부에 차별 중지를 촉구했다. 노동조합 역시 인종차별적인 입법의원들의 발언을 규탄했다. 최근에는 고층건물에서 창문을 청소하던 필리핀 가사노동자가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다시 발생해 그 심각성을 일깨워주었다. 이미 2016년부터 표준계약서에서 금지된 행위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창문 청소 업무는 고용주에게 법에 준해서 지시를 금하는 영역이 아니다. 이에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는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고용주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에 준하지 않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홍콩 가사노동자는 다양한 착취와 차별에 손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가사노동자가 한국인과 같은 생활권에서 공존하면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홍콩의 상황을 봤을 때 비현실적이다. 고용주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내국인보다 낮은 임금을 주면서, 가사노동이라는 집 밖의 노동보다 평가절하된 업무를 지시하면서 차별적인 태도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 정책도 내국인인 고용주를 우선하면서 가사노동자를 필요한 목적으로만 활용하겠다는 도구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현 상황도 마찬가지다. 일과 가정의 양립, 저출산 문제 해결, 여성의 경제활동 지원이라는 목적을 위해 외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착취한다면 차별은 연쇄적으로 그 몸집을 키워나갈 것이다. 동시에, 이미 차별에 기반한 임금 착취의 구조가 공고화되고 만연해진다면 착취와 차별의 악순환 속에서 가사노동자들은 더욱 취약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출생률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여성은 계속 일할 수 있겠지만 가사노동자를 관리하고 업무를 부여하는 추가적인 노동도 결국은 여성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서는 개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가사노동자의 채용보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육아를 공적으로 지원하는 체제의 마련이 더욱 시급하다.



홍콩의 가사노동자는 지극히 어려운 계층만을 돕는 잔여적 사회복지를 추구하는 정부 정책 하에서 돌봄의 사적 장치가 되었다. 우리는 이미 일상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희생을 디딘 채 살아가고 있다. 착취와 차별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홍콩 가사노동자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홍콩의 가사노동자 정책은 한국이 추구해야 하는 선진사례가 아니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대상이다.





지금 여기홍콩 8


김주영 _ 전북대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참고자료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조정훈의원 등 11)(국회, 2023.3.22.)

[단독] 월급 200만원 필리핀 이모님온다...정부·서울시 파격 실험’(한경, 2023.5.8.)

Why domestic workers oppose Hong Kong’s ‘job-hopping’ proposal(Rappler, 2023.5.17.)

Domestic workers’ union slams Hong Kong lawmakers’ ‘racist’ proposals as legislature discusses crackdown on ‘job-hopping’(HKPF, 2023.2.15.)

Criminalise employers who make domestic workers clean unsafe windows, NGO urges Hong Kong gov’t(HKPF, 2023.5.17.)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직접 촬영하여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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