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5월호
결코 열리지 않을 판도라의 상자, 그 이후는? _ 구자선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

구자선 (1).JPG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Stanislav Petrov: 1939-2017).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명이 죽음을 면했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1983. 당시는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한 후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르며 강경책을 펴고 있을 때였다. 그해 91KAL KE-007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되었다. 그러나 같은 달인 926일 인류에게는 그보다 더 큰 재앙이 닥쳐올 뻔했다. 그날 모스크바 외곽의 기지에서 방공 임무를 맡고 있던 페트로프 중령은 미사일 경보를 듣는다. 감시위성에서 소련을 향해 날아오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5기를 포착한 것이었다. 그의 임무는 상부에 즉시 보고하여 핵미사일로 반격하게 하는 것이었다. 미사일 공격 보고를 받은 소련 크렘린은 30분 안에 보복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상부에 전화를 걸어 컴퓨터가 오작동한 것 같다고 보고했다. 훗날 그는 그같은 판단을 한 근거를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첫째, 미사일이 단 5기뿐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가졌다. 미국이 핵공격을 했다면 엄청난 수의 미사일을 발사했을 것인데 단지 5기만 날아오는 것이 이상했다는 것이다. 둘째 육상의 다른 레이더에서는 아무런 공격 징후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계 오작동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훗날 소련 위성이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잘못 감지하여 경보를 울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류를 핵전쟁 속에서 구한 그의 이야기는 묻혀 있다가 기밀이 해제된 1998년에야 밝혀져 독일 일간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조그마한 실수로 언제든 인류를 멸망시킬 무기이기에 이미 냉전시기부터 미국과 소련은 전략무기제한협상(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 SALT I, SALT II), 냉전이 끝난 이후에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 New START) 등으로 핵무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원자력에 대해서도 면밀한 감시가 이뤄져왔다. 그러나 미중의 전략 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핵무기 개발 등으로 다시 핵무기에 대한 공포가 증대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핵전력 강화가 뉴스가 빈번해지고, 북한도 핵탄두 보유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핵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핵무기는 적을 공격하여 점령하고자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다. 자국을 공격할 의도가 있는 적에게 우리가 망하면 너도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무기이다. 이를 상호확증파괴라고 한다. 핵공격을 하면 공멸인 것이다. 관건은 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압박할 수 있는 위협력이다. 그러므로 최근에는 한국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여론이 계속 증대되고 있다.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여론조사 방식의 문제이다. “당신 옆에 금이 떨어져 있는데 줍겠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당신 옆에 금이 떨어져 있는데 그것을 주우면 절도죄로 잡혀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금을 줍겠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다른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여론 조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핵보유로 치러야 할 대가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한국의 핵보유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는 문제가 있다. 이런 여론조사가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면 괜찮지만, 다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 저의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그러면 정작 한국은 핵을 보유할 수 있을까? 한국이 핵을 보유하려면 우선 북한이나 이란처럼 국제사회의 제재를 당분간 감당해야 한다.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한국에만 선의를 갖고 핵무기 보유를 허용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북한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핵을 가지면 거기서 끝날 것인가? 시야를 좀 더 넓혀서 봐야 한다. 바로 옆에 있는 일본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갖게 된다. 국내와 국제 여론 때문에 제한을 받던 일본은 정상적인 군대 창설과 핵보유에 대한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은 일본 극우파들이 그토록 원하는 바가 아니던가. 더구나 일본은 한국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핵재처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다량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고, 우라늄 농축도 20%를 넘어 할 수 있다. 결정만 나면 높은 기술력으로 짧은 시간에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 중국의 위협 증대를 느끼고 있는 대만도 핵개발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 이란은 핵개발 의혹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지만, 이런 제재를 유지할 명분을 잃게 된다. 이란이 핵을 보유하게 되면 주변의 사우디아라비아나 터키 같은 나라들은 핵개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도 자국의 안보를 위해 핵보유를 해야 된다고 외치지 않을 것인가? 한국의 핵무기 보유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경찰로 자처하는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결코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전술핵 도입이니, 핵우산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가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야말로 미국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수단들이다. 이와 별도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 한반도는 세계 4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 그 가운데 3개국이 핵강대국이다. 동맹국인 미국을 차치하고 우리는 그동안 중국이나 러시아에 의한 핵위협은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국은 한반도가 거의 통일될 무렵 총병력 200만 명 이상을 보내 한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분단을 고착화하는 역할을 한 적대국이었다. 러시아 역시 한국전쟁 때 전투기 조종사를 보내 비밀리에 참전한 적대국이었다. 그런데도 현재는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에 대해 별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오히려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고, 러시아는 불곰사업 등으로 한국의 무기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눈앞의 핵위협에 대해서도 우리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위협의 강도를 낮추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한번 개발한 핵무기를 북한이 쉽게 포기할 리는 없다. 지난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단숨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상황을 잘 관리하는 것이 차선책일 것이다.


구자선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todayboda.net/article/7132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