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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3월호
올림픽과 정치 _ 구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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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 제전은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경기였다. 경기 종목도 달리기뿐만 아니라 투창, 레슬링, 권투 등 주로 전투와 관련된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토록 격렬하게 전쟁을 벌였던 그리스의 도시국가들도 이때만큼은 휴전을 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제전을 즐겼다. 그리하여 시 낭송회 등 각종 문예 행사 등도 같이 이루어지고 신에 대한 감사의식도 빠지지 않았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올림피아 제전은 로마제국 말기 기독교가 국교로 정해지면서 폐지되었다. 이교 신을 위한 제전은 기독교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에 르네상스가 시작되어 고대 그리스·로마의 학문과 지식을 부흥시키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서도 이 올림피아 제전은 쉽게 부활하지 않았다. 1896년이 되어서야 쿠베르탱의 노력으로 근대 올림픽으로 재개될 수 있었다. 쿠베르탱은 올림픽 정신으로 세계 평화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16년 독일 제국의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6회 올림픽은 1차대전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그 후 20년이 지난 1936년 독일은 결국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이때 독일은 유럽의 도로 곳곳을 누비는 성화 봉송 장면 등 기록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기록영화는 후에 독일이 유럽을 침공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뒤이어 1940년 올림픽은 원래 도쿄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킴에 따라 논란이 일어났고, 일본의 개최권 반납으로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392차대전이 발발하고 핀란드 역시 소련의 침공으로 전쟁을 겪게 되어 결국 개최되지 못했다. 1944년 런던 올림픽도 역시 2차대전으로 취소되었다. 도쿄, 핀란드, 런던은 1964, 1952, 1948년에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올림픽 취소뿐만 아니라 보이콧도 종종 등장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수에즈 운하 사태, 소련의 헝가리 침공 등을 이유로 몇몇 나라가 불참했고, 중국은 대만의 참가 허용을 이유로 불참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인종차별로 악명이 높았던 남아공에 럭비 국가대표팀을 보낸 뉴질랜드의 참가 불허 요구가 거부되자 아프리카 국가들이 불참하였다. 또 대만은 자국 국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데 대하여, 중국은 대만 참가 허용에 항의하며 불참하였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도 파란을 겪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고, 서방 세계 상당수가 이에 동조하여 불참하는 바람에 반쪽짜리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4LA 올림픽 때는 공산권 국가들이 올림픽을 보이콧하고 그 기간 자신들만의 체전을 개최하였다.

 

이처럼 올림픽은 전쟁과 정치 때문에 빚어진 오명으로 점철되었다. 이번 베이징 동계 올림픽도 마찬가지이다. 개최 전부터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의 외교적 보이콧선언으로 진통을 겪었다. 신장을 비롯한 중국의 인권문제가 원인이었다. 거기에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입장권 수입이 대폭 하락하는 등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그럼에도 중국은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최초의 도시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대대적인 축제를 거행했다. 외부의 비난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성화 봉송 주자로 인도와의 국경분쟁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을 선정하여 인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인권문제가 불거진 신장 출신을 최종 주자로 선정하여 외교적 보이콧에 맞불을 놓았다. 한국도 역시 한복 문제, 편파 판정 등으로 국민들의 감정이 상했다. 올림픽 기간 있었던 각종 문제들에 대해 중국 언론은 거의 보도하지 않고 올림픽을 칭찬하는 기사들로 도배하였다. 최종적으로 중국은 금메달 순위에서 미국을 한 개 차로 제치고 3위를 차지하면서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미국을 제치는 데 일조한 선수는 금메달 2개를 딴, 미국과 중국 2중 국적자인 에일린 구였지만, 국적문제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다른 무엇보다 강국으로서의 중국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의미는 이미 오래전에 퇴색했지만, 중국이 이번 올림픽 개최로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의문이다. 중국의 부상과는 반비례로 중국의 국제적 평판은 하락하고 있다. 이미 코로나 사태로 세계에서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바닥을 치고 있고, 인권문제, 남중국해 문제, 홍콩 사태, 대만 문제 등으로 중국의 이미지는 긍정적이지 않다. 그런 가운데 이번 올림픽은 이를 만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국제사회에서의 평판보다는 자국민에 대한 선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물론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중국은 올해 20차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있으며, 시진핑이 제시한 중국몽을 위해 국내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공산당 영도를 금과옥조 삼는 중국은 공산당의 위대함을 계속 강조해야만 집권의 안정을 이룰 수가 있다.

 

시진핑 시기 중국 언론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바로 강국’, ‘대국이다. 이는 경제뿐만 아니라 우주기술 등 과학분야를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서 쓰이며, 부상한 중국을 상징한다. 심지어 교통 강국이라는 단어도 등장하였다. 교통이 편하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교통 강국이라는 단어는 아주 어색하다. 이처럼 모든 분야에서 강국’, ‘대국을 추구하는 중국의 최종 목표가 무엇일지 세계는 궁금해한다. 세계의 대부분이 비난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중국은 러시아 편에 서서 강대국으로서의 신뢰를 잃고 있다. 올림픽에서 보여주듯이 국제적인 기준보다는 자기들만의 만족을 추구한다면 중국의 부상을 누가 환영할 것인가.


구자선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n.sinaimg.cn/sinakd20220214s/395/w720h475/20220214/48dd644d7c80b808bce1813a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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