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11월호
중국 공산당 조직과 권력구조 문건 해제: 中央宣傳部關於宣傳中“客觀主義”偏向給華北局的指示 _ 이유정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

이유정1.jpg



해제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19481013일 당 선전()에 있어서 객관주의편향을 지적하며 이에 대해 화북국(北局)에 지시를 내렸다. 1948년은 공산당이 중국 전역 가운데 대부분의 동북과 화북, 화남과 화동의 많은 지역, 그리고 서북의 일부분에서 승리하던 시기이다.1) 한편 19486월 인민일보는 하북(河北省)에서 창간되었다.2) 그러나 이시기 자연 재해가 문제가 되었는데 인민일보는 이를 객관적으로 보도했고, 중앙선전부가 보도에 대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지시에 따라 인민일보는 1948118일 『선전 보도에서 객관주의 경향을 극복하자』라는 사설 보도를 통하여 자아비판을 하였다.3)


아편전쟁이후 중국 언론 보도에 대한 중국 지식인, 언론인, 그리고 혁명가들의 객관주의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이 변화하였다.4) 중국 공산당을 제외하고 중국의 사상가들은 언론 보도의 객관주의를 지지하고 있었다. 캉유웨이(康有爲)와 량치차오()를 대표로 하는 입헌유신파와 손문이 이끄는 자산계급 혁명파는 언론을 중시하고 언론의 객관적 보도를 중시했다. 마오도 객관적 보도를 중시하여 1925년 발표한 『정치주보발간이유』에서 사실만을 보라고 주장였다. 그러나 후차오무()로 대표되는 마르크스 이론가와 무산계급 언론학자들은 혁명에서 무산계급 선봉대의 지도 역할을 위해 당의 정책을 선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덩의 실사구시 주장으로 객관적 보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될 때까지, 중국의 언론은 개인숭배와 과대보도를 지속하였다.



번역


선전()에서 '객관주의' 편향에 대 중앙선전부 화북국(北局) 지시(19481013日)

화북국은 주양(), 반석(磐石), 신문사 동지들에게 전달하라:

 

10 10 인민일보는 "전 화북 해방구의 인민이 단결하고 투쟁하여 각종 재해를 이겨내고 있다"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런 기사를 발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 기사에 좋은 소재들도 많지만, 원칙적으로는 가지 심각한 단점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첫째, 기사의 제목, 서두와 말미에 각종 재해를 이겨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체 기사의 3분의 2 이상의 많은 분량이 극도로 지루하고 산만하게 각 구의 각종 재해를 상세하게 열거하고, (심지어는 닭의 전염병과 늑대에 물린 경우까지 포함하여) 어두운 그림을 구성하여, 독자로 하여금 읽고 나면 극도의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화북 전역의 올 가을 평균 수확량이 70%에 달하기 때문에 이를 기근 극복의 성과로 적극 홍보하고, 좋은 경험과 교훈을 제시하는 동시에 이재민 구호활동의 미흡함을 지적하여, 간부들과 인민들이생산을 한 치 늘리기위한 노력을 계속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기사는 그런 고무적인 힘이 없거나 드물다. 그 힘은 우리 신문에서 모든 선전과, 모든 비판과 자아비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적극적인 고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우리의 선전 업무에서 허용되지 않는객관주의경향의 한 단면이다.

 

둘째, "객관주의" 경향은 기근의 원인 분석에서 더 심각하게 드러난다. 세 가지 유형의 기근의 첫 번째 원인은 모두 "장기 전쟁"이다. "첫째, 홍수의 발생과 수년간의 전쟁으로 인한 하천 제방의 파손과 미수리... 둘째, 병충해발생했으나 장기전으로 인한 부담이 과중했고, 과거(언제의과거를 의미하는가?) 지개 극좌() 정책(어떤 정책이 극좌인?)으로 인해 농민들 생산 정서의 저하를 가져왔다. 셋째, 전염병이 만연하고, 장기전으로 민생이 동요하 불안정해지고 영양실조로 저항력이 약화되었다…" 오늘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결정적 의의가 있는 전쟁은 어떠한 입장인가? 공산당 중앙화북국 기관지의 입장이 의식이 없는 평범한 서민들의 전쟁에 대한 혐오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여러 가지 전쟁이 있고, 전쟁은 여러가지 면모가 있지만, 여기서는 분석을 전혀 찾아볼 없고, 이른바 전쟁의 폐해만 강조하고 있고, 토지개혁의 폐해를 더하였다. 항일전쟁이 없었다면, 2 이상의 해방전쟁이 없었다면 상황은 비참했을 일이 아닌가? 전쟁의 모든 사악한 결과는 결국 공정하고 명백하게 일본 침략자와 국민당 반동파의 책임으로 귀속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기사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결론을 얻을 는가? 우리는 전쟁의 종식을 요구하거나 전쟁 중에 재난을 구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동지들은 이 논리적 오류를 알고 있지만 편집할 때우연히 잊어버린 것인데, "잊었는가”?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선전 작업에 존재하는 특정 객관주의 경향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인민일보 공개적으로 자아비판하는 기사를 쓴 이후, 올해의 재난구호의 위업을 널리 알리는 역점을 두고, 투쟁을 계속할 것을 촉구하며, 내년 생산 규모를 한 치 더 늘릴 준비를 하고, 전쟁과 토지개혁에 대한 각종 잘못된 정서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는 제안을 한다.

 

이밖에 10 10일자 신문 4면에 걸쳐 전쟁의 선전 기사가 단 한 건도 없는 점은 편집부의 이목을 .

 

신문사 직원들과 이 문제를 한 번 검토하고 결론을 내리고 알려 달라. 화북국이 신문사에 대해 이 문제를 검토해 독촉하기를 요청한다.

(중앙 당안 원본에 따름)

  

 중국공산당 조직과 권력구조 관련 문건 해제 14


이유정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 THE CHINESE CIVIL WAR, https://alphahistory.com/chineserevolution/chinese-civil-war/

(검색일: 2021/10/25).

2) 人民日报 https://www.fmprc.gov.cn/ce/ceuk/chn/sybd/zymt/t687669.htm (검색일: 2021/10/26).

3) 풍영인이동근, & 최향단. (2011). 중국 언론의 객관보도 사상형성과 변천언론과학연구11(1), 458-459.

4) 풍영인이동근, & 최향단. (2011). 중국 언론의 객관보도 사상형성과 변천언론과학연구11(1), 435-470.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attle_of_Siping03.jpg

《中人民解放军历 4 解放战争时期(上)》 城出版社 198410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