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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1월호
중국의 미래상이 현재를 만든다 - 쇄신의 정치 _ 조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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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화학상 수상자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현재가 미래를 결정하기 보다 우리가 가진 미래의 이미지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지를 결정한다고 했다. 이 말은 자본주의 사회보다 사회주의 사회에 더 들어맞는다. 중국같은 사회주의 사회는 단일 지배가 이루어지기에 50-100년의 일관된 청사진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 ‘100년의 마라톤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1949년에서 2049년까지 지도자가 몇번을 바뀌어도 100년의 계획이 일관되게 가동되는 것이다. 1940년 마오쩌둥(毛澤東)신민주주의론에서 사회주의적 개조가 장기간을 필요로 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현실화되어, 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근 50년 뒤인 1987년 덩샤오핑(鄧少平)과 자오즈양(趙紫陽)사회주의 초급단계론부터였다. 사회주의가 공산주의의 단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100년이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100년이라는 시간표 안에서 지금도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해당하며 2012년 시진핑(習近平) 시대가 시작되면서 신시대가 시작되었다.

 

시진핑의 신시대의 최대 목표는 중화제국체제의 화려한 재구성이다. 이를 기반으로 중국유산의 재활성화를 통해 향후 20-30년 내에 세계화의 새로운 국면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과거의 조공체제가 수렴형이라면 21세기의 일대일로는 확장형이다. 한나라의 한무제가 중국 시스템의 완성자라면 시진핑은 한무제의 확장적 재현인 셈이다. 시진핑체제가 부여받은 이중의 임무는 지배의 정당성과 공산당 통치의 지속성이다. 지배의 정당성은 최소한 청조가 이루어놓은 강역과 그 안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을 분열시키지 말아야 확보될 수 있다. 통치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공산당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마오쩌둥의 카리스마를 가져와야 한다. 공산당에서 마오와 동급으로 시진핑 사상을 거론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중화제국체제의 화려한 재구성이라는 중국의 미래상은 중국의 현재를 만든다. 극도로 경직된 애국주의와 고립된 정체성의 모습을 보여준다든지, 여러가지 문화적 측면에서 점유자의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민주의적 사고를 보여주는 지식인이나 다원적 정체성의 주장들은 발을 붙일 곳이 없다.


반면 시진핑 정부 들어와 마르크스주의와 더불어 유교전통을 유독 강조하는 것은 중화제국체제의 재구성에서 철의 삼각의 핵심적 이데올로기가 바로 유교와 마르크스주의이고 유교관료와 당관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의 사회주의 경험은 소유제나 법체계 등 특정 사회의 작동조건이 피케티(Thomas Piketty)류의 가치지향적 이데올로기와 함께 궁구되지 못하면 모두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치의 쇄신을 위해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마련되고 공공의 광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 진정 철학적 차원에서 중국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중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타자성이나 자기상대화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어야 하나 이 짧은 지면에서는 100년 전 정치가와 사상가의 인간과 국가의 정신에 대한 일부분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루쉰(魯迅)은 실제는 강자를 도와 약자를 괴롭히면서 말로는 약자를 도와 강자에 저항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가짜 선비라 불렀다. 이들의 공통점은 줄타기를 잘 하여 자기는 하나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비판적 지식인이라 부른다. 역시 자기인식이 문제이다. 이런 사람은 주인의 위치에 있어도 항상 노예이다. 정신이 빈곤하기 때문이다. 루쉰은 국가든 인간이든 태반이 노예근성과 동물성을 가진 것들로 분류한다. 실제가 또 그렇다. 따라서 적지 않은 인간이 노예성과 동물성 사이의 어디엔가 위치한다. 대개 모든 강자와 약자는 그 강약의 위치의 변동에 불과하지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정신의 빈곤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가간의 관계에서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나 똑 같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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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루쉰의 모습


쑨원(孫文)은 『삼민주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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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쑨원의 모습    

 

중국은 세계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바야흐로 세계 열강은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는 길을 걷고 있다. 만일 중국이 힘을 키웠을 때 역시 다른 나라를 무너뜨리려고 열강의 제국주의를 배워 같은 길을 걷는다면 그들의 실패한 자취를 뒤쫓을 따름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약자를 돕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이로써 비로소 우리민족은 천직을 얻는다. 약소민족은 돕고 세계열강에는 저항한다. 만일 전국인민이 모두 이렇게 뜻을 세운다면 중국 민족은 반드시 발전할 것이다. 만약 이 뜻에 서지 않는다면 중국민족에게 희망이란 없다. 우리는 오늘 아직 발전을 이루기 전에 약자를 돕겠다는 뜻을 세워두고 장래에 힘을 키우면 지금 자신이 받는 정치적, 경제적 압박을 떠올려 그 때 약소민족이 같은 고통 속에 놓여있음을 보게 된다면 그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 이리 하여야만 비로소 치국평천하가 된다.”

 

중국의 문제는 철저히 자기인식을 할 수 있느냐, 자기 상대화가 되느냐, 타자성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가 그 미래상을 결정할 것이다.


조경란 _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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