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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5월호
루신이 말하는 '제3의 시대'는 가능한가 _ 조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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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魯迅)은 중국의 세익스피어로 불린다. 그러나 1919년에 광인일기를 쓴 이후부터 중국에서 그는 유교비판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21세기 전통이 부흥하는 시대에 루쉰은 전통을 단절시킨 원흉’, ‘민족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국민성 개조나 아큐 비판은 서방 패권주의 문화 확장에 부화뇌동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의 문명과 루쉰의 관계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먼저 루쉰이 매섭게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유교 그 자체가 아니다. 그는 이데올로기화된 유교, 인간미를 상실한 예교를 비판하고자 했다. 그것을 루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예교’(吃人的禮教)로 표현했다. 루쉰은 당시 그 자신과 중국 전통문화 사이의 복잡한 관계로 곤혹스러워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전통문화의 가장 철저한 비판자였으며 그 점에서 가장 우수한 전통문화 계승자였다.” 루쉰은 중국전통을 비판함으로써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을 최후의 전통 지식인이라 불렀다. 루쉰은 그 자신을 전통의 밖에 위치지우지 않고 전통 안에 위치지움으로써 자신도 비판의 대상 안에 들어있고, 전통에 문제가 있다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그런 태도를 견지하고자 했다.


루쉰이 1925년에 쓴 등하만필(燈下漫筆)이라는 글을 보면 중국의 문명과 역사에 대면하여 청년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노신이 보기에 중국인은 한번도 사람의 자격을 손에 넣은 적이 없다. 잘해야 노예였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에 근거하여 그는 역사시대를 1, 노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시대. 2, 잠시 안전하게 노예가 될 수 있는 시대로 구분한다. 이 순환이 옛 유가들이 말한 일치일란(一治一亂)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두 종류의 시대에 만족하지 말고 오늘날의 청년의 사명은 중국 역사에 없었던 3의 시대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중국의 정신문명은 명목상의 공화제에 의해 매몰되지는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고작 만주인이 무대 위에서 퇴장한 것 뿐이다. 중국의 문명이란 그 인육(人肉)을 내밀어 부호의 잔칫상을 차리게 하는 장치인 것이다. 중국이란 그 인육의 잔칫상을 정비하는 주방인 것이다.” “그 인육의 잔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사람을 잡아먹는 일당을 내쫓는 것, 그것이 오늘날의 청년의 사명이다.” 루쉰은 청년을 향해 그들의 역할과 책임은 사람의 세상을 창출해야 하는 것임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19세기말 20세기 초 루쉰의 작품은 계몽과 국민성비판의 의미로 읽혔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그것보다는 루쉰이 상상하는 제3의 시대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특히 지금은 중국문명 부흥의 긴 도정에서 자기긍정의 역설적 방법에 대한 깊은 사유가 필요한 때이다. 루쉰이 생각하는 새로운 자기인식의 출발점은 흔히 말하듯 단순한 자기부정이 아니다. 루쉰이 말하는 내재적인 자기와해, 또는 니체적인 적극적 망각은 다른 외부적인 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기에 의존한 재창조를 위한 처절한 자기인식의 과정이다.

 

루쉰은 기존의 전통 문명은 부정한다고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즉 그는 계몽의 불가능성과 그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가 항상 계몽 그 이후를 문제 삼은 것도 그것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는 입센의 노라는 가출하여 어떻게 되었는가에서도 가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가출 이후가 더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철로 된 방에서 자는 사람들을 깨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깬 이후 갈 길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것이 루쉰의 중국 계몽에 대한 리얼한 인식이다.

 

따라서 그는 기존의 가치 체계를 소멸시킴으로서 새롭게 가치체계와 의미체계를 세우기 위해 다소 위험하면서도 급진적 전략을 동원한다. 논설의 형식이 아니라 알레고리 방법을 통해 부친살해에 버금가는 극단적 요법을 사용했다. 이는 루쉰이 아큐정전이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을 Q’라고 명명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아큐라는 이름은 이름도 성도, 족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국의 모든 계보학의 시스템으로부터 배제를 의미한다. 한자의 의미체계를 벗어나면 아큐를 명명(命名)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명명은 이 의미체계의 가치하락과 주변화를 전제로 한다.

 

계보학의 시스템을 지워버렸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모더니티라는 말은 자기의 시대를 상대화해서 본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즉 자기가 누구인가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루쉰은 나, 중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타자 즉 서양으로 도피하는 방식이 아닌 자기객관화에 의한 자기 판단을 내리려 했다. 아무리 서양이라는 모범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을 모방하고 수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다른 문제이다.

 

루쉰에서 서양이라는 것은 수용의 대상이기보다는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거울로서의 역할로서 족하다. 중국식도 아니고 서양식도 아닌 근대와 그것을 구성할 내발성을 갖는 사람의 세상의 창출이라는 루쉰의 고민은 21세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루쉰으로 대표되는 모더니티의 상징체계는 21세기의 새로운 경제대국이 된 중국에 역설적으로 더 필요한 가치체계가 아닐까. 왜냐하면 21세기의 중국의 미래구상은 자기전통에 대한 무매개적인 회귀여서도 안되며 이미 실패한 서양의 자본주의 모델과도 거리를 둔 어떤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루쉰을 예교를 비판한 반전통적인 원흉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의 상징과 정면 대결해야 한다. 그리하여 21세기의 수많은 청년 루쉰을 창출해야 한다. 이들로 하여금 제3의 시대를 창조하게 해야 한다. 3의 시대는 노예가 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노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시대도 아닌 사람의 세상이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서 루쉰은 지워지고 있다. 그가 지워진 중국에서 과연 3의 시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조경란 _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www.soh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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