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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1월호
초원과 하늘이 만나는 그곳, 중국의 변경을 가다-하얼빈에서 만주리까지 _ 박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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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현대사학회는 금년 여름 처음으로 하계중국답사를 다녀왔다. 81일부터 6일까지 56일의 일정이었다. 답사지역은 하얼빈에서 만주리(滿洲里)까지를 왕복하는 코스였다. 구체적으로 하얼빈, 치치하얼, 아룽치, 하이라얼, 어울구나, 만주리 등을 포함한다. 대체로 만주 북부, 몽골 동부, 중국-러시아 국경지대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연구에는 시간성과 공간성이 날실과 씨줄처럼 내포되어 있다. 시간의 문제는 사료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지만, 공간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연구자의 실감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낀다. 한 번 가봄으로써 사료를 통해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를 체득하게 된다. 연구와 교육에서 공간을 실감했느냐 아니냐의 여부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역사학에서는 답사를 매우 중시해왔다. 사학과에서 학생들과 함께 가는 답사가 끊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첫 번째 일정은 731부대 박물관(정식명칭은 侵华日军第七三一部队罪证陈列馆)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웅장한 규모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연상시켰다. 개인적으로 201210월 이곳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이런 박물관이 없었다. 어느새 훌륭한 박물관이 세워져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근자에 박물관과 같은 문화시설에 대한 중국정부의 투자가 참으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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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731박물관 전경 

 

물론 이곳은 마루타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은 일본군 세균전 731부대가 있던 기억의 터(lieux de mémoire)’라고 할 수 있다. 정식 명칭은 일본관동군주만주제731방역급수부(日本關東軍駐滿洲第731防疫給水部)’이다. 일본 관동군은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이곳에서 조선인, 중국인, 몽골인 등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벌였다.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고 그 방법도 매우 잔혹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가 함께 기억해야 할 전쟁범죄의 현장이다.

 

하얼빈 기차역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기억의 터이다. 190910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안중근의사기념관(安重根義士紀念館)’이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플랫폼 그 위치 바로 앞에 있던 귀빈용 대합실을 개조해 20141월 개관했다. 20173월에 하얼빈 기차역 개축공사로 잠시 옮겨져 있다가 금년 320일에 원래 있던 장소에서 재개관했다고 한다. 기념관의 유리창 너머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발사한 지점과 이토 히로부미가 서 있던 지점이 표시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참가자 중에 한 분은 기념관 너머에 있는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나서 친일과 반일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KBS 시사기획 <>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지 우덕순의 친일행각(친일단체 조선인민회의 활동 등)을 거론했는데, 주지하듯이 안중근 가문은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정작 자식들은 친일 논란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안중근 가문이라는 무게감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고, 우덕순의 행보와 반대로 유동하는 남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선택에 대한 무게감을 주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뒤로 하고 치치하얼(齊齊哈爾)로 향하였다. 치치하얼은 현재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 하얼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인구가 530만에 달한다고 한다. 청나라 때에도 헤이룽장 지역 행정·군사의 중심지였다. 치치하얼은 만주어로는 치치가르”, 다우르어로는 치치하르라고 하는데 목장이라는 뜻이다. 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진 초원은 목장이라는 지명에 꼭 들어맞았다.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때에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거쳐 흑룡강으로 쳐들어오자 치치하얼에 군대를 주둔시킨 것이 치치하얼이라는 도시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부쿠이(卜奎)”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치치하르라고 고쳤다.

 

하얼빈에서 치치하얼로 가는 길은 버스로 4시간이나 걸렸다. 역시 중국을 여행하려면 이동거리가 무척 길 수 밖에 없다. 차창 너머로 초원 구경을 실컷 했다. 차창으로 보이는 것은 오직 초원, 옥수수 밭, 침엽수림뿐이었다. 그것도 그냥 초원이 아니라 습지가 많은 초원이다. 한국과는 시야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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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하얼빈에서 치치하얼로 가는 길에 만난 탁 트인 초원길

  

청나라 때까지만 해도 만주, 특히 북만주 지역은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무인지경의 땅이었다. 확실히 직접 와서 보니 사람이 살 수 없었던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듯하다. 여름이라 그나마 날씨가 괜찮았지, 아마도 겨울이면 정말 사람이 살기 힘든 지역이었을 것이다.

 

치치하얼에서는 흑룡강 짜룽 자연보호구(黑龍江紮龍國家級自然保護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이곳은 습지생태계에 해당되는 자연보전지역이다. 아시아 1, 세계 4위 규모의 갈대습지가 펼쳐져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두루미 번식지로도 유명하다. 현재 전 세계에 살고 있는 두루미가 2천 마리 정도 되는데 400여 마리가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현지에서는 정수리에 붉은 점이 있어 단정학(丹頂鶴)이라고 불렀다. 여러 마리의 두루미를 사육하면서 시간에 맞추어 두루미가 떼 지어 날아오르는 광경을 연출하곤 했는데 그 부자연스러움에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이어 내몽고자치구 후룬베이얼(呼倫貝爾)로 향했다. 후루베이얼에서는 아룽치 조선족 마을(阿榮旗 新發朝鮮民族鄉)에 들렀다. 아룽치(阿榮旗)는 소수민족 자치기(自治旗)이고 관내에 4개의 민족향(民族鄕)이 있다고 한다. 마을은 매우 조용하고 깨끗했다. 하지만 소수민족의 정체성은 한식을 맛깔나게 내놓은 식당에서만 느낄 수 있었다. 마을 전체가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리모델링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가(朴家)’, ‘이가(李家)’처럼 한국의 성씨를 간판으로 삼은 민박집에서 관광지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민망한 간판을 집 앞에 놓아 둘 수는 없을 터이다. 관광지로서 마을의 한 가운데에 있는 전람관에는 조선족 마을의 역사와 풍속, 일상, 사계절 등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어얼구나(額爾古納)에 도착하자 러시아 색채가 물씬 풍겼다. 오전에는 유명한 어얼구나하 습지(額爾古納河濕地)를 찾아갔다. 이곳은 중국에서 원시 상태를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습지라고 한다. 매우 넓어 시야가 확 트인 습지가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었다. 어얼구나하(額爾古納河)와 그 지류가 굽이쳐 흘러 수려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여행 전에 지인으로부터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절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마도 여기인 듯했다. 한 달 정도 아무 생각 없이 머무르면 좋을 곳이었다.

 

만주리(滿洲里)는 내몽고자치구 후룬베이얼 대초원의 서북부에 위치해 있다. 북으로는 러시아와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몽골국(외몽골)과 인접해 있어 3국의 문화가 모여 있다. 관문의 성격이 농후한 변경의 유락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창()’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족, 몽골족, 회족, 러시아인 등 23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고 인구는 약 30만에 달한다. 또한, 중국 최대의 육로 관문으로서 유라시아 대륙의 교량이자 중국, 몽골, 러시아 경제가 합류되는 결절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주리 기차역이 또한 인상적이었는데 만주리는 중국 최대 육지운송의 관문이고 기차역은 그 중심 시설이다. 역사적으로도 러시아가 건설한 동청철도(東清鐵路, 中東鐵路)의 시발역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새로 지은 말끔하고 커다란 역사(驛舍) 한편에 옛날의 영광을 엿볼 수 있는 고풍스런 시설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만주리에서 뜻하지 않게 얻은 소득이었다.

 

이후 러시아 국경지대로 이동했다. 거리가 10남짓에 불과했다. 국경지대는 국문경구(國門景區)’라 불리는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었다. 대규모 쇼핑센터가 두어 개나 있었다.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보다 관광버스를 쇼핑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더 많은 듯했다. 전술했듯이 관문의 성격이 농후한 변경의 유락도시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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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멀리에서 본 만주리역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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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만주리역 옛 영광을 엿볼 수 있는 고풍스런 시설물




박경석 _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직접 촬영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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