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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3월호
동화와 융합, 혼종의 동남아시아 화교화인史 _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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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시절,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싱가포르의 화교기업(Chinese Business in Singapore)’이라는 사학과 전공과목의 수업보조(Teaching Assistant)를 할 때였다. 당시 담당한 수업은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인, 말레이시아인, 인도인, 유럽인, 미국인 등으로 구성된 다인종/다국적 수업이었다. 싱가포르의 화교 기업가들을 주제로 다루는 수업의 특성상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종종 묻곤 했다. 자칫 무례한 질문이라 느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대부분 개의치 않고 모두 “종족(ethnic)은 중국계, 국적(nationality)은 싱가포르”라고 답했다. 대다수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고, 또 그렇게 교육을 받는다는 말을 부연설명으로 덧붙이기도 하였다. 동시에 중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이러한 대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물론 많은 중국학생들이 그러한 인식에 대해 어색해하고,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온라인 공간에서 더욱 심한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싱가포르의 화예(華裔)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수많은 화예들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삼스럽지만 지난 1년여간의 ‘동남아화교화인 관행’연재는 그 간극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었을 때 현실의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이해관계를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21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둘러싼 가장 첨예한 대립은 미중관계이다. 특히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 이후 굴기한 중국의 국제적 부상은 유일한 세계패권으로 군림하던 미국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따른 패권경쟁의 여파가 동아시아 지역에 불어 닥쳤는데, 한반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사드 배치를 둘러싼 미중갈등으로 촉발된 중국발 경제제재가 몇 년 전 한중관계를 휩쓸었던 바 있었다. 당시 학계와 대중을 막론하고 중국의 막무가내식 대응에 꽤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조정국면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그 잔재는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대중관계에 그리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현재 세계의 관심을 베트남 하노이로 집중시키고 있는 북미관계 역시 그 근원을 따지면 미국 대중정책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미중관계라는 태풍에 휩쓸려 곤란한 지경에 처해있는 국가는 사실 한국만이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화교화인공동체들 역시 비슷한 국제정치적 환경에 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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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최근에는 보안문제를 이유로 중국의 대표적 모바일폰 생산기업인 화웨이(Huawei 華爲)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는 미국과 반발하는 중국 사이에서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사진은 화웨이 매장 사진.

 

2017년 5월 14일과 15일 양일간에 걸쳐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포럼’은 수많은 아시아 및 서방의 취재진들이 몰려들어 취재했을 정도로 성대히 치러진 중국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해상실크로드의 핵심지역인 동남아시아 국가의 정상들 역시 참가하였는데, 그 명단에 싱가포르와 태국의 정상들은 빠져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태국의 경우 내륙에 위치하고 있는지라 해상 실크로드와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설명(물론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되었지만, 싱가포르의 경우 별다른 공식적인 발표 없이 리셴룽 현 총리를 일방적으로 초대하지 않은 것이다(대신 장관급 인사를 초대). 이에 대해 전문가들이 남중국해 분쟁을 둘러싸고 싱가포르가 취한 입장이 중국의 이익에 배치되었었던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2016년 8월 21일 싱가포르 건국 51주년 기념 연설에서 전 총리 리콴유의 아들이자 현 총리인 리셴룽은 80%의 인구가 중국계인 싱가포르의 특성상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하여 국민들이 공적인 관계 혹은 사적인 관계를 막론하고 전 방위에서 받고 있는 압박을 잘 알고 있다고 고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쟁에 대해 아세안(ASEAN)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며 국제 사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말과 함께 국민들에게 최대한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혹시라도 정부의 판단에 의해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더라도 국민들의 이해를 바란다는 요지의 연설을 덧붙였다.
 

싱가포르는 그 인구 구성상 범중화권으로 분류되는 도시국가이면서 중국 공산당정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같은 종족임에도 불구하고 양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친미국가로써 미군이 상시 주둔하고 있다. 그리고 대륙의 중국 대중과 정부는 이러한 싱가포르 화교커뮤니티의 이중적 태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싱가포르 총리의 남중국해 관련 발언 이후 중국의 대중들이 보인 비난 일색의 여론과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박들은 그러한 반응들이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경우들이었다. 그리고 싱가포르 화교공동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화교공동체 역시 중국에 대한 인식이 중국정부가 바라고 기대하는 그것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동남아시아의 화교공동체와 그 문화는 200여 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중국인 이민자들에 의해 중화문화와 외부문화가 교류한 결과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만 그 교류의 핵심은 “중학위체(中學爲體), 서학위용(西學爲用)”으로 중화(中華)의 정신을 보존하면서 서구의 근대적 기술문명만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중국대륙을 중심으로 보는 학계의 시선이다. 즉 화교문화에서 외부문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순히 보충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화교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왕궁우(王赓武 Wang Gungwu) 역시 이민의 패턴과 정치적 인식 등에 따라 다양한 층위의 화교공동체가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누구든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중국인”이라고 인식한다.
 

이민(diaspora)은 상이한 공동체와 문화가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대표적인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층위의 현상들이 발생하는데,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 이민자 공동체의 문화가 그대로 보존되는 경우 혹은 이주국의 토양에 그대로 동화되는 경우로 나뉜다. 동남아시아의 화교공동체를 중국 중심의 인식아래 바라볼 때 발생하는 현상이 바로 이러한 이분법적 흑백논리다. 이러한 논리를 따르면 “그래서 네가 중국인이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와 같은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중화의 문화를 지켰는가’ vs ‘이주국의 외부문화에 동화되었는가’를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쟁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하물며 중화의 전통 혹은 문화를 바라보는 인식마저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이후에는 서로 분리되는 현상을 보인다. 북경식 표준어를 가리켜 ‘한어(漢語)’라고 지칭하는 대륙인들과는 달리 동남아의 화교화인들은 여전히 대부분 ‘화어(華語)’라고 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본 연재가 그동안 지향하고자 했던 바는 이민으로 인해 발생되는 사회문화적 현상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다는 점이다. 동화와 보존을 둘러싼 이분법적 해석은 그 다양한 층위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문화교류에는 단순히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혼종의 문화 혹은 융합의 문화가 창조되는 현상들 역시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현상들이 혼재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화교공동체에 대해 역사‧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그들의 대중(對中)인식에 대해서도 ‘조국과 뿌리를 부정하는 매판집단’ 정도의 일방적 인식만을 보여주는 데에 그칠 것이다. 이민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점을 일국사 중심에서 초국적 관점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본 연재에서 수백여 년에 걸친 중국인의 동남아시아 이민사와 그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동화, 융합, 혼종)을 다양한 주제들(고향, 상업, 건축, 음식, 종교 등등)을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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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 대륙부 동남아시아인들의 역사는 도서부와는 또 다른 이민의 양상을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사진은 태국의 광동인 회관인 ‘광조회관(廣肇會館 Kwong Siew Association)’의 전경



【동남아화교화인 관행 12】


김종호 _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 1] 화웨이 매장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uawei_Store_(original_shot_with_Huawei_Mate_20_Pro).jpg
[사진 –2] 태국광조회관(廣肇會館 Kwong Siew Association)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Kwong_Siew_Association_of_Thailand_Templ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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