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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7월호
한국 화교의 중국요리 이름 엿보기 _ 주희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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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역사가 사관(史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평양(平壤) 을밀대(乙密臺) 아래에 이른바 기자(箕子, 중국 은(殷)나라 왕족)의 무덤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 지리적 환경이나 역사적 배경으로 보았을 때 한국인과 중국인은 꽤나 오랜 전부터 교류해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고 1992년 한·중 수교가 되는 이 기간 동안 한국과 중국의 교류는 완전 단절됨에 따라 한국의 화교들도 중국대륙과의 소통이 두절되었다. 때문에 많은 중국요리의 이름들이 왜곡되어 불리거나 주방에서나 불리는 약칭(略稱)이 정식이름이 되는 경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차우러우(炒肉)’요리를 들 수 있다. 바로 ‘잡채’라고 번역되어 부르는 요리다. 그러나 ‘차우러우’는 ‘고기볶음’이라는 의미로 ‘잡채’라고 옮겨질 하등의 이유는 없지만 ‘차우러우’는 한국의 잡채와 조리 후의 형태가 매우 흡사하다.

 

사진 1  한식 잡채

사진1. 한식 잡채.jpg

 

사진 2  중식 잡채

사진2. 중식잡채.jpg

 

1960년 이후 한국의 중국요리가 대중화되고 한국 외식문화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는데,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음식점이 대세였다. 중식이 대중화되면서 가장 많이 팔리는 요리라고 하면 당연 탕수육이지만 대중화되기 이전에 가장 많이 팔렸던 요리는 탕수육이 아닌 ‘차우러우’ , 즉 ‘잡채’였다고 하면 매우 뜻밖일 것이다.  

 

그림 1  1935.02.05 동아일보 3면 생활/문화 소설 〈삼곡선(三曲線)〉

사진3. 1935.02.05동아일보3면 생활문화 소설 〈삼곡선(三曲線)〉.jpg

 

-소설 내용의 일부-

   …게집애가 올러 와서 달착지근하니 닥어 들더니, "술을 가저옵시다요", "잡채를 식힐까요" "탕수육은?"하고 못견데게 하엿다. 그는 그 꼬리타분한 게집애의 분내음시에 머리가 아프고 겁이낫다 三十(삼십)이 넘… 

 

소설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중국음식점의 요리 1순위는 탕수육보다는 잡채였다. 저렴한 가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인 가장 많이 찾았던 요리인 것은 분명하다. 그만큼 우리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이 때만해도 중국음식점의 대표 음식은 짜장면이 아닌 ‘따루몐(打滷麪)’이었다. 지금 중국음식점에서 ‘우동’이라고 바꿔 부르는 음식이다. 시대에 따라 입맛이 변한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닌가보다.    

 

앞서 말했듯이 ‘차우러우’는 ‘고기볶음’이라는 뜻이다. 사진2에서 보다시피 ‘차우러우’는 ‘고기볶음’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차우러우’를 ‘잡채’로 번역해 부르는 것 또한 의문이다.  사실 이 의문은 중국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뜬금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물음의 답은 ‘양장피’라고 불리는 요리에 있다. 현재는 ‘양장피’라고 부르지만 이전에는 양장피를 ‘양장피잡채’라고 불렀다. 1931년 4월 24일 동아일보 4면 생활/문화에 연재기사 하나가 실렸다.

 

그림 2  1931년 4월 24일 동아일보 4면 생활/문화 연재기사

사진4. 1931년 4월 24일 동아일보 4면 생활문화 연재기사.jpg

 

기사 내용 중에는 “…중국 사람이 파는 양장피도 불려 넣고 겨자도 치고… ”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양장피'는 양장피 요리가 아닌 양장피의 주재료인 라피(拉皮)를 가리킨다.  라피는 ‘얇은 녹말묵’ 같은 것인데, 녹두나 감자녹말을 물에 희석시켜 더운물에 데치고 투명해지면 찬물에 식혀 묵처럼 만든다. 중국 남방에서는 라피를 ‘펀피(粉皮)’라고 한다. 유통과정의 편리함과 장기보관이 용이하게 건조를 시킨 것이다. 요리할 때는 물에 불려서 사용한다.

 

사진 3  건조 된 라피(拉皮)

사진5. 건조가 된 라피(拉皮).jpg

 

사진 4  물에 불린 후 건조된 라피(拉皮)

사진6. 물에 불린 건조가 된 라피(拉皮).jpg

 

어쩌다가 ‘라피’가 ‘양장피’로 불렸을까? 화교 스푸(師傅, 중식셰프)사이에서는 양장피를 ‘차오러우피(炒肉皮)’라고 부른다. 한국 화교 스푸들은 요리 이름을 줄여서 부르는 습관이 있는데 탕수육(糖醋肉)을 ‘탕러우(糖肉)’라고 한다든지, 짜장면(炸醬麪)을 ‘장미엔(醬麪)’이라고 한다든지, 해물잡탕(海雜伴)을 ‘자발(雜伴)’이라고 줄여서 말하곤 한다. 양장피도 ‘차오러우라피(炒肉拉皮)’를 줄여서 ‘차오러우피’라고 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차오러우라피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매우 유명한 요리이면서 양장피와 형태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차오러우피(炒肉皮)’나 ‘양장피(兩張皮)’는 중국 현지에는 없거나 완전히 다른 요리이다.

 

사진 5  중국 동북지역의 차오러우라피(炒肉拉皮)

사진7. 중국 동북지역의 차오러우라피(炒肉拉皮).jpg

 

사진 6  한국의 중국요리 양장피(兩張皮)

사진8. 한국의 중국요리 양장피(兩張皮).jpg

 

차오러우라피가 양장피의 원형이며 초창기 양장피의 모습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차오러우라피에서 가장 주요한 재료는 라피이며 찬물로 다시 식히는 과정이 필요해 중국요리 식당의 구조로 보았을 때 먼저 만드는 것이 순서이다. 때문에 처오러우라피 주문이 들어오면 통상적으로 먼저 “라장피!(拉張皮! 라피 한 장 뽑아!)”라고 외쳤을 것이고, ‘라장피’라는 소리를 ‘양장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치 “짱이꺼!(醬一個! 짜장 하나!)”가 ‘짱깨’로 불리는 것이나 중국 민방언(閩方言)의 인사말이 짬뽕으로 불리는 것, ‘난젠완쯔(南煎丸子)’가 ‘난자완스’로 불리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양장피는 라피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양장피 잡채’의 잡채는 어쩌다가 붙은 이름일까? 『규곤요람(閨壼要覽)』(1860년)이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1936)에서 언급 되는 잡채의 조리법을 정리하면, ‘고기나 야채 혹은 해산물 등을 채 썰어 익힌 후 섞어 겨자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는다’로 요약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규곤요람』에서는 당면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당면을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되어 있다. 이렇듯 과거 한국에서 먹었던 잡채는 라피 없는 차오러우라피와 비슷하다. 차오러우라피는 양장피와 달리 참깨장(芝麻酱)을 뿌려 섞어 먹는다. 당연히 차오러우라피는 한국의 잡채와 비슷한 음식으로 보였고 라피가 들어간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양장피 잡채’라고 번역해 불렀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총빠우하이센(葱爆海参)’을 한국의 ‘해삼탕(海蔘湯)’으로 번역해 부르는 것과 같으며, ‘하이자발(海雜伴)’을 한국에서는 ‘해물잡탕(海物雜湯)’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양장피 잡채’의 ‘양장피’가 ‘차오러우라피’의 ‘라피’가 되니까 자연스럽게 ‘잡채’가 ‘차오러우’가 되고 ‘잡채’를 ‘차오러우’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차오러우라피’에는 라피 위에 ‘고기볶음’만 있는 반면 양장피에는 요즘의 잡채와 형태가 비슷한 ‘차오러우’가 라피 위에 있다. 이것은 라피가 양장피로 불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49~1992년 이 기간 동안 이념대립으로 인해 한국과 중국의 교류가 단절되는 바람에 화교들이 중국대륙과의 소통이 두절된 관계로 한국의 중국요리 이름이 많이 왜곡되어 옮겨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19년 황해도(黃海道) 사리원 동리(沙里院東里)에서 당면 공장이 운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차우러우’라고 불리는 ‘중식잡채’는 ‘차우펀탸오(炒粉條)’와 매우 흡사하다.

 

사진 7   ‘차우펀탸오(炒粉條)’

사진9. ‘차우펀탸오(炒粉條)’.jpg

 

‘차우펀탸오’과 ‘차우러우’의 조리기법은 일치하며 그 사용되는 식재료 또한 매우 유사하다. 이것을 보아 ‘차우펀탸오’는 ‘차우러우’의 원형이고 한국의 당면잡채가 유행하는 1950년~1960년 대 ‘차우러우’가 ‘잡채’로 번역되어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17】

 

주희풍 _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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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학익동 태원(泰園)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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