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10월호
문화굴기(崛起) - 고전서사와 애니메이션이 만나다 _ 박계화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

2023년 화제의 애니메이션 중국기담


박계화 (1).png    박계화 (2).png

                                       사진 1. ‘중국기담포스터                 사진 2. 중국기담 제2<鵝鵝鵝> 캐릭터 상품



2023년 새해 첫날, ‘중국기담(中國奇譚)’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중국판 유튜브 비리비리(嗶哩嗶哩)에 공개되었다. 큰 홍보 없이 시작하였지만, 반응은 심상치 않았다. 선보인 지 일주일 만에 4,000만 뷰를 돌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콘텐츠 리뷰 플랫폼 더우반(豆瓣)에서는 7만 여 명에게 9,5(10점 만점)의 높은 평점을 받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잠시 반짝하고 지나가는 단발성의 관심과 인기가 아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9개월이 지난 현재 비리비리에서의 누적 조회수는 2.9억 건을 넘어섰으며 평점도 9.9점에 달한다. 또한 이러한 인기에 부응하여 캐릭터 상품 개발 등 파생상품 시장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기담’은 상하이 애니메이션 필름 스튜디오(上海美術電影製片廠)와 비리비리가 손을 잡고 제작한 중국식 판타지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총 8편(<小妖怪的夏天>·<鹅鹅鹅>·<林林>·<鄕村巴士带走了王孩兒和神仙>·<小满>·<飛鳥與魚>·<小賣部>·<玉兔>)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화제성의 핵심은 이 애니메이션의 내용과 형식이 중국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가장 중국적인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이 8편의 작품은 각각 독립적으로 감독마다 다른 스타일로 제작하였는데, 단지 전통의 재현에 그친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메시지를 현대적 감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즉 시골 마을에 대한 향수, 도시 노동자의 심리, 현대인의 욕망과 자아의식, 미래에 대한 과학적 상상, 인성에 대한 탐구 등의 주제를 중국의 지괴(志怪: 괴이한 이야기를 기록) 전통과 결합시켜 2D, 3D, 전지, 인형, 수묵 등의 여러 기법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중국기담’은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작품 풍격으로 전통적인 고전 서사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한껏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중국기담’을 만든 상하이 애니메이션 필름 스튜디오는 <피리 부는 목동(牧笛)>, <세 스님(三個和尙)> 등 중국 산수화의 기법으로 수묵 애니메이션을 최초로 선보이며 세계의 주목을 받은 중국의 대표적 애니메이션 제작사 중 하나다. 그 밖에 민간 예술인 그림자극 피영희(皮影戱)와 전지(剪紙) 공예의 예술적 특성을 도입한 전지 애니메이션, 민간 설화나 아동문학 작품을 토대로 한 인형 애니메이션 등을 성공적으로 제작하며 중국식 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여 ‘중국학파’ 애니메이션을 선도하였다. 상하이 애니메이션 필름 스튜디오가 시간과 제작비 걱정 없이 이러한 실험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것은 계획경제를 이끈 중국 정부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 <천궁 대소동(大鬧天宮)>, 와이드 스크린 애니메이션 <나타의 바다 소동(那吒鬧海)>, 최초의 TV시리즈 애니메이션 <검은 고양이 경장(흑묘경장)> 등이 모두 이런 배경 아래 나왔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도입된 후 더 이상 이런 실험을 지속할 수 없었고 자본의 논리와 일본, 미국 애니메이션의 강세에 밀려 한동안 침체를 면치 못했다. 그랬던 상하이 애니메이션 필름 스튜디오가 중국의 ‘궈차오(國潮: 애국 소비 열풍)’에 힘입어 중국 요괴 이야기를 주제로 한 ‘중국기담’으로 당당히 귀환한 것이다.



박계화 (3).png박계화 (4).png

                       사진 3. <작은 요괴의 여름(小妖怪的夏天)>          사진 4. <거위, 거위, 거위(鵝鵝鵝)>



상하이 애니메이션 필름 스튜디오의 강점은 수묵화, 전지, 인형극 등 중국 전통문화 기법을 훌륭하게 재현하는 동시에 중국 전통 이야기를 재해석한 스토리텔링에 있다. ‘중국기담’ 작품들 가운데에도 중국의 고전서사를 활용한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작품인 <작은 요괴의 여름(小妖怪的夏天)>는 중국 고전 소설 ≪서유기≫를 모티프로 한 수묵 애니메이션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영웅적인 캐릭터로 친숙한 손오공이 아니라 작은 요괴 멧돼지이다. 멧돼지 요괴는 요괴대왕을 위해 당승(唐僧)을 잡아 삶고 요리하여 그 고기를 바치고자 동료 요괴들과 준비작업을 한다. 그 과정 중 상사로부터 혼나고, 과중한 업무에 허덕이는 모습은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지만 현대 직장인들의 일상과 겹쳐지며 많은 공감을 얻게 된다.

 

두 번째 작품 <거위, 거위, 거위(鵝鵝鵝)>는 위진남북조 소설 <양선서생(陽羨書生)>이 그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양선서생>은 <거위장 서생(鵝籠書生)>이라고도 하며 양선 지역 출신 허언(許彦)이 길에서 발이 아프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서생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괴이한 이야기다. 그 서생은 자신을 거위장에 태워준 허언에게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입에서 온갖 진귀한 음식과 아름다운 여인을 꺼내고, 그 서생이 잠든 사이 여인은 또 자신의 입에서 정부(情夫)를 꺼내며, 여인이 잠든 사이 그 정부는 또 나이 어린 여자를 입에서 토해내 즐긴다. 서로를 속이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던 그들은 상대가 깨려 하자 다시 하나 하나 입에 집어 넣고 마지막으로 발이 아픈 서생이 깨어난다. <거위, 거위, 거위>는 이 이야기를 차용하여 대사가 없는 무성영화 스타일로 만들어졌는데, 흑, 백, 적 3색만 사용하여 몽롱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면서 인간의 욕망과 인심이라는 주제가 오히려 강렬하게 다가온다. 또한 이야기 자막에 2인칭인 ‘당신’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며 주인공인 거위를 배달해야 하는 행상인과 관객인 ‘당신’을 동일시하게 함으로써 관객을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로 만드는 마술 같은 기법을 도입한다. 입 속에서 꺼내지는 다양한 인물들은 각자에게 가장 부족하고 그래서 갈망하게 되는 것을 상징하며 마지막에 다시 삼키는 행동들은 뱉어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주워 삼키는 인간의 나약함, 미련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겹겹이 쌓인 기만 속에서 행상인은 여우 서생의 입에서 나온 백조 여인에 마음을 두었다가 잃게 되었고 결국 탐심으로 인해 가지고 있던 두 마리 거위마저 다 잃게 된다. 감독은 백조 여인과의 사랑 앞에서 망설이는 행상인처럼 사람들에게 주저하는 것이 정상이며 잃음으로써 얻는 것이 있고 얻음으로써 잃는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고양이 사당 ‘소묘묘(小猫廟)’의 원형은 쓰촨 지역 몐양(綿陽) 운대관(雲臺觀)의 담묘전(譚猫殿)이다. 감독이 민간과 친숙한 모티프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박계화 (5).png   박계화 (6).png

               사진 5. 몐양(綿陽) 운대관(雲臺觀) 담묘전(譚猫殿)     사진 6. <거위, 거위, 거위> 엔딩장면



중국 고전 서사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흥행 성공의 보증수표인가?

 

‘중국기담’의 등장과 성공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신화, 전설, 고전 소설 등의 중국의 고전 서사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의 흥행 성공 사례가 늘면서 완전히 새로운 내용의 서사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 재산권)를 창작하기보다는 훌륭한 콘텐츠로 인정받고 또 대중성이 확보된 고전 서사 IP를 활용하여 안전하게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2004년 중국 정부는 ‘문화굴기’를 위한 정책 중 하나로 애니메이션 산업을 지키기 위해 자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에 관한 몇 가지 의견(關於發展我國影視動畫產業的若幹意見)을 발표하고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정책에 반영하였다. 매일 방영하는 애니메이션 중 중국산 애니메이션을 70% 이상 방영하도록 하고, 민족창작 애니메이션의 지원·우대 정책을 시행하며, 중국 애니메이션 산업 박람회 등의 전시회를 통해 마케팅을 활성화하고, 인기 애니메이션의 브랜드화를 추진, 중점 창작 계획 실시, 우수한 주제 선정, 특별 자금 지원 등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2015년 이후 흥행에 성공한 중국 국산 애니메이션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2015년 고전 소설 ≪서유기≫를 모티프로 한 <신서유기: 몽키의 부활(西遊記之大聖歸來)>은 어린이 관객뿐만 아니라 전 연령층의 호응을 얻어 흥행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고전 서사를 토대로 한 스토리텔링과 중국 전통문화를 활용한 문화산업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나의 붉은 고래>(2016)와 <나타: 세상에 내려오다(哪吒之魔童降世)>(2019) 등을 제작한 Coloroom Pictures(彩條室)를 설립한 광셴미디어(光線傳媒)와 <신신방: 나타중생>과 <백사1: 인연의 시작>(2019)<백사2: 청사의 시련>(2021) 등의 작품을 제작한 줴이광 애니메이션(追光動畫, Light Chaser Animation)은 대표적인 고전서사 IP 제작사이다. 이들은 시행착오를 거쳐 수억에서 수십억 위안의 흥행성적을 거둔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으며 풍부한 문화적 자산인 고전 서사를 활용한 국산 애니메이션을 계속 론칭할 계획이라고 한다.

 

쟈오즈(餃子) 감독의 <나타: 세상에 내려오다>는 중국 현지 개봉 당시 20일 만에 약 38억 위안을 벌어들이고 최종 약 50억 위안의 입장료 수익을 올려 중국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고의 박스 오피스 성적을 기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유기≫와 같은 신마소설 계열의 고전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에 나오는 나타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되었다. 언뜻 보기에 악동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외모, 여자인지 남자인 아이인지 어른인지 모호한 정체성과 괴팍한 성격·초월적인 능력까지, 주인공 나타는 여러모로 낯섦이 곧 인기의 요인이 되었던 전설적 캐릭터들의 계보를 따른다. 고약한 운명의 소유자가 적수로 만난 동료를 통해 결국 자기답게 살아가게 되는 과정의 성장담을 그리고 있으며, 인간, 초월적 인간, 신선, 요괴가 공존하는 도교적 세계관을 정점에 이른 중국 3D 애니메이션 기술력과 결합하여 구현해냈다. 고전 소설 ≪봉신연의≫의 환상적 배경과 디즈니·픽사 식의 유머러스한 캐릭터가 조화를 이루어 훌륭한 중국식 고전서사 애니메이션이 탄생한 것이다.



<백사1: 인연의 시작>과 <백사2: 청사의 시련>은 송나라에서부터 구전된 중국 4대 민간 전설 <백사전>을 모티프 삼아 백사의 전생과 내세에 관련한 현대적 해석을 보여 준 작품이다. 뱀 잡는 마을에 사는 청년 아선이 어느 날 숲 속에서 기억을 잃은 소백을 구해준다. 소백을 구하기 위해 인간이길 포기하고 요괴가 되기를 자처하는 과정에서 진정(眞情)이 무엇인지, 세상을 지배하려는 권력과 맞서는 진정한 사랑의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즉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소외시키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며 500년을 아우르는 우여곡절이 이어진다. 미국 워너브라더스의 기술력과 합작하여 만든 <백사1: 인연의 시작>은 현재 중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기술력,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있어 할리우드를 벤치마킹한 긍정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전통적인 소재와 비주얼을 활용하면서 이를 전달하는 플롯을 할리우드 스타일로 세련되게 구사한 것이다. <백사1: 인연의 시작>의 흥행에 힘입어 2021년에 나온 <백사2: 청사의 시련> 역시 개봉 20일 만에 누적 흥행 5억 300만 위안을 기록하였다. 이것은 <백사전>의 결말 즉 백사가 요괴를 퇴치하는 법해선사에 의해 항저우 서호의 뇌봉탑에 갇힌 후 이를 구하기 위한 백사의 동생 청사가 집념을 가지고 법해선사와 싸워 이기는 이야기로 디스토피아적 분위기의 수라성 공간과 시간을 중국의 불교, 도교, 민간신앙 속 전통사상과 결합시켜 환상적으로 그려냈다.  



박계화 (7).png

사진 7. <나타: 세상에 내려오다>



박계화 (8).png

박계화 (9).png

사진 8,9. <백사1: 인연의 시작>, <백사2: 청사의 시련>



현재 중국의 고전 서사 애니메이션은 오랜 시간 축적되어 계승된 중국 특유의 전통적인 표현 기법과 스타일, 중국 고전 콘텐츠의 재해석을 통해 현시대에 맞는 양질의 콘텐츠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도 전통 자원을 활용하여 혁신을 시도한 중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귀추가 주목되긴 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여전히 존재한다. 첫째, 고전 서사가 흥행에 성공하는 보증수표인 것 마냥 지나치게 동일한 캐릭터를 여러 작품에서 일관성 없게 사용하는 것은 본래 가지고 있는 원천 IP를 손상시킬 수 있으며, 비슷한 캐릭터의 반복은 관객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둘째, 2021년 중국 문화부에서 ‘십사오’시기 문화산업 발전 계획을 발표하였는데 그 가운데 애니메이션을 통해 사회주의 핵심가치를 생생하게 전파할 것을 명시한 부분이 있다. 자칫 잘못하면 사회주의 선전 수단의 도구가 될 위험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고전 서사의 훌륭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중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에 도취되어 자국의 문화가 제일이라는 문화우월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 즉 전통문화와 고전 서사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다양한 문화콘텐츠의 발굴과 개발을 소홀히 하게 만든다는 점을 인식하고 경계한다면, 역사, 고전, 판타지가 조화를 이룬 콘텐츠와 그간 공들여 키운 중국의 애니메이션 기술력들은 그 동안 문화적으로 실추되었던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충분하며 중국 정부가 목표로 하는 ‘문화굴기’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_ 박계화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참고자료

배주애, <문화굴기의 일환으로 바라본 중국애니메이션의 약진>, ≪중국어문학≫ 제93집, 2023.8

최자인, [최자인의 차이나 리포트 6]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를 다시 빛나게 한 <중국기담>, I Love Character 칼럼, 2023-03-14 기사

시안무역관, ‘나타지마동강세’ 흥행 열풍으로 살펴본 중국 애니메이션산업, Kotra 해외시장 뉴스, 2019-11-26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www.ilovecharacter.com/news/newsview.php?ncode=1065570894959288

사진 2.  

https://baike.baidu.com/tashuo/browse/contentid=c88e91fe463e231a8490db4a&lemmaId=

59264104&fromLemmaModule=pcRight&lemmaTitle=%E4%B8%AD%E5%9B%BD%E5%A5%87%E8%B0%AD&

fromModule=lemma_right-tashuo-article

사진 3,4. https://m.blog.naver.com/china_lab/222982370558

사진 5,6. https://baijiahao.baidu.com/s?id=1754616888390411277&wfr=spider&for=pc

사진 7. https://baike.baidu.com/pic/哪吒之魔童降世

사진 8.

https://baike.baidu.com/item/%E7%99%BD%E8%9B%87%EF%BC%9A%E7%BC%98%E8%B5%

B7/22887865?fr=ge_ala

사진 9.

https://baike.baidu.com/item/%E7%99%BD%E8%9B%872%EF%BC%9A%E9%9D%92%E8%9B%87%

E5%8A%AB%E8%B5%B7?fromModule=lemma_search-box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