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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9월호
‘공산전체주의’ 중국의 국민당 장군촌 _ 조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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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공산전체주의에 대한 대결을 강조하고 8월 말에는 여당 연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고 발언했다. 이 이념의 대척점에 있으며 공산전체주의에 해당하는 대상은 당연히 북한이다. 다음으로는 명시적으로 지정하진 않더라도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이 해당할 것이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가열되는 국내의 상황은 뒤로 하고 최근의 논쟁과 관련하여 중국의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중국 저장성에는 민국 장군촌(民國將軍村)’이라는 관광 명소들이 있다. ‘민국은 쑨원이 신해혁명을 이끌어 왕정을 타파하고 1912년 건국한 중국 최초의 공화국, 중화민국을 의미한다. 장군촌은 자기 마을 출신의 중화민국 장군들을 기념하면서 관광 자원으로 개발한 것이다.

 

알다시피 중화민국 건국 전후로 중국의 역사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중화민국의 임시 초대 총통이었던 쑨원이 북양군벌의 수뇌인 위안스카이에게 어쩔 수 없이 총통직을 양보한 이후, 중국은 군벌들의 시대로 접어든다. 1925년 사망한 쑨원의 유지를 받들어 국민당 세력들이 남쪽으로부터 북벌을 감행하여 군벌들을 물리치거나 이들과 타협하면서 중화민국이 다시 회복되었다. 그러나 중화민국은 내부적인 분열, 일본의 침략, 공산당과의 대결로 쉴 틈이 없었다.

 

중국 역사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비극적이었던 이 시기에 활동했던 장군들의 인생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거기에 근대 공화국을 향한 열정, 항일 투쟁과 같은 민족주의적 정당성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관광 자원의 대상으로서 손색이 없다. 국민당의 1인자였던 장제스의 고향이 저장성이어서 당시 많은 중화민국 장군들이 저장성 출신이었다. 이러다 보니 한 곳에서 중화민국 장군들이 여럿 나오기도 했으며, 이 동네들에서 이른바 민국 장군촌이 개발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근현대사를 조금만 알아도 우리는 여기서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다. 국민당은 공동의 적인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공산당과 타협하면서 이른바 국공합작을 하기도 했지만, 최소한 1인자 장제스에게 공산당은 종국에는 반드시 박멸해야 진짜 적이었다. 일본이 물러간 뒤에는 결국 내전으로 이어져 국민당 세력이 타이완섬으로 패퇴하고 1949년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공산당의 적이었던 중화민국의 국민당 장군들을 기념할 수 있는가? 공산당 탄압과 무관한 장군들만 선별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소련의 명령을 따랐던 공산당과 소련의 지원이 필요했던 국민당이 억지로 손을 잡고 1923년 수립한 1차 국공합작은 1927년 국민당 우파가 상하이와 우한 등지에서 공산당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면서 종결되었다. 그 뒤로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2차 국공합작이 재개될 때까지 국민당 군대는 지속적으로 공산당을 토벌했다. 장제스가 국민당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해 나가던 1920년대 초중반까지 군벌들을 진압한 북벌 등에서 일찌감치 사망한 장군이 아니라면, 뒤이은 수많은 공산당 섬멸 작전과 무관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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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중국 저장성에서 관광 자원으로 개발된 중화민국 장군(1892년 출생, 1935년 사망)의 고택



저장성 한 농촌 마을의 장군촌을 살펴보자. 이력과 사망 시기를 고려하면, 공산당 섬멸에 공헌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당시 중화민국의 장군들이 왕정 타파와 공화정 수립의 선봉에 섰던 근대 엘리트이자 일본에 대항했던 민족적 영웅으로서 장군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산당 토벌과의 연관성이 명시적으로 표기되지도 않고 후손들이 관련 사실을 은근히 뭉개기는 하지만, 장군들의 반공 경력이 이제까지 문제시된 적은 없다. 비교가 늘 그렇듯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우리의 상황에 맞추어 뒤집어서 보면, 이 사실은 꽤 충격적일 수 있다. 우리 마을 출신으로 항일 경력이 있는 북한 인민군 장성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셈이니 말이다.

 

학술적으로 보자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전체주의적 권력의 힘이 모자라 관광으로 돈을 벌어보려는 배금주의와 이념을 막론하고 집안에서 입신양명한 사람을 우러러보는 전통적 유교사상을 지방의 시골 마을까지는 막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대만에서 중국과의 통합 여론이 약화되고 독립을 꿈꾸는 민진당이 집권을 거듭하면서 중국공산당 통치의 가장 중요한 정당성인 조국통일과 하나의 중국이라는 목표가 흔들리고 있다. 오히려 과거 공산당의 적이었던 국민당이 대만에서 가장 중요한 협력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화국 수립과 항일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졌었던 국민당 출신 장군들의 반공은 적당히 눈감아 줄 수 있는 경력이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중화민족이라는 정체성과 조국통일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상징으로서 더 큰 효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저장성의 장군촌은 공산전체주의중국이 능력이 모자라 이념과 권력의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일 수도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하게 전체주의적이지 않거나 이념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에게 아직 남겨진 전체주의적 사고와 이념적 편향으로 별로 놀랍지 않은 사례를 놀랍게 인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조형진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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