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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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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중화민족 공동체와 조선족의 정체성 _ 신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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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3일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边)조선족자치주(이하 옌볜주) 성립 70주년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조선족 전통의상을 입은 가무단이 민요와 춤 등을 선보이는 공연을 펼쳤고, 저녁에는 대형 불꽃 축제도 열렸다. 본 행사 이전부터 옌볜주 곳곳에서는 각종 전시회와 문예 공연, 여행 이벤트 등의 행사가 진행되면서 70주년을 미리 축하했다. 그러나 중국의 관영매체를 포함한 대부분 언론은 행사의 의미나 내용보다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와 국무원 등 중앙부처의 축전 내용과 당의 우수한 민족정책에 따른 옌볜주의 경제·산업성과를 칭송하는 데 집중했다. 해당 축전은 최근 중국 민족정책의 핵심인 중화 민족주의와 국가통합, 민족단결,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 강화 등을 키워드로 하고 있다. 10월에 열릴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보다 소수민족의 정체성이 강조되는 것을 원치 않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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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93일 창설된 옌볜주는 중국 지린성 동부에 위치하여 남쪽으로는 북한,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맞닿아 있는 자치주이다. 2021년 기준 인구 약 202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한족은 약 122만 명으로 60%가량을 차지하고, 조선족은 전체의 약 35%72만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1) 옌볜주 지정 초기 조선족 비중이 약 70%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그 비중이 상당히 감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산업화 영향으로 상당수의 조선족이 대도시나 해외, 특히 한국으로 이주한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한국에는 이미 옌볜보다 많은 75만여 명의 조선족이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조선족 사회의 공동화가 심화되면서 옌볜주는 민족 고유문화의 색깔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자치주 지위를 부여받음으로써 가졌던 민족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러한 민족적 위상에 대한 우려를 가중시킨 것이 7월에 발표된 <조선어언문자공작조례실시세칙>(朝鲜语言文字工作条例实施细则)의 조선어와 중국어 병기 방법의 변화다. 개정 전에는 가로표기의 경우 조선어를 앞에, 중국어를 뒤에 쓰도록 하고 세로표기의 경우 조선어를 오른쪽, 중국어를 왼쪽에 쓰도록 했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칙은 가로, 세로표기의 조선어와 중국어 순서가 바뀌면서 중국어 우위 체계가 마련되었다. 당국은 이러한 세칙 개정의 이유로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하고 민족단결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옌볜주의 조선족 비중 감소로 이미 교육현장에서도 중국어 사용이 확대, 우선시 되는 기조가 확산되고 있다.


소수민족 거주지역의 수업을 중국어로 통일하도록 하는 정책은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20년 당시 네이멍구자치구의 중국어 교육 강화조치에 반발한 몽골족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저항은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현지 교육 당국이 기존 몽골어로 가르치던 도덕·법치, 역사 등 과목의 수업언어를 중국어로 바꾸고, 중국 당국이 펴낸 통합 국정교과서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당시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청원에도 해당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과 개입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오면서 많은 외신도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중국의 교육정책과 소수민족 언어 정책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실제로 상급학교 진학이나 취업에서는 중국어 사용능력이 지배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국 소수민족 언어의 사용은 자연스럽게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4조는 각 민족이 평등하고, 그 어떤 민족에 대한 차별 대우와 억압, 민족 단결을 파괴하고 민족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소수민족 거주지의 자치권을 보장하고 국가는 소수민족 특색과 필요에 따라 소수민족의 경제와 문화 발전을 지원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각 민족은 모두 각자의 언어 및 문자를 사용하고 발전시킬 자유와 각자의 풍속 및 관습을 유지하고 개혁할 자유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현재의 중국 소수민족 언어 정책은 건국 초기부터 지켜온 본 조문의 취지와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정체성이자 문화적 동질성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중국 내 조선족의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안타까워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동북공정, 문화공정 등의 논란으로 반중 정서가 고조되면서 조선족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그러나 민족과 국적의 개념은 구분 지어야 하며 조선족에 대한 맹목적 혐오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한중 간 역사갈등에서 조선족 문화나 정체성 등을 도외시하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는가? 조선족은 한중, 남북교류의 가교역할을 해왔으며 그들이 다수 거주하는 동북 3성 지역은 우리 한민족 역사의 중요한 근간이 된 곳이다. 지금은 타국이 된 우리 역사의 공간에서 민족 언어와 전통, 문화를 지켜온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 정체성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한 포용적 관점에서 조선족 문화를 바라보고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신지연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참고문헌

吉林省人民政府, 延边朝鲜族自治州2021年国民经济和社会发展统计公报”, 

http://www.jl.gov.cn/mobile/sj/sjcx/ndbg/202208/t20220802 85294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吉林省人民政府, http://www.jl.gov.cn/zw/yw/jlyw/202209/t20220903_85572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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