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5월호
해바라기 운동과 대만의 청년 정치 _ 김명준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둔 20231217, 필자는 당시 타이베이시의 정치 1번지인 중정(中正완화(萬華)구에 출마한 민진당 우페이이(吳沛憶) 후보의 유세 현장을 찾았다. 실내에서 열린 행사였지만 현장의 열기는 수천 명이 운집한 장소만큼이나 뜨거웠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당선을 의미하는 대만어 둥쏸(凍蒜)’을 외치고 민진당을 상징하는 녹색의 깃발을 흔들었다. 곳곳에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응원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도 보였는데, 이는 이 행사가 단순한 응원보다는 하나의 축제인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 모습은 며칠 전 갔었던 국민당 대선 후보의 선거 유세와 대비되었다. 해당 유세의 경우, 참석자의 대부분이 어르신들이었고 이들은 응원보다는 휴대폰 화면에 더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 젊은 후보의 유세 현장은 달랐다. 무엇보다 기존의 상상했던 유세와 달리 세련된 느낌을 주었으며 에너지가 넘쳤다. 그중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타 정당의 젊은 후보들이 참석해 현장에서 우페이이를 향해 지지연설을 한 것이었다. 선거구가 겹치지 않더라도 타 정당 후보의 선거 유세에 참석해 지지 연설하는 모습은 필자에겐 꽤 낯선 장면이었다. 한국이었으면 당에서 이런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 1..png

그림 1. 20231217. 우페이이 후보의 유세 현장. 우페이이 후보(왼쪽에서 두 번째)
린창줘
(林昶佐)(왼쪽에서 세 번째) 전 입법위원



하지만 현장에서 받은 홍보물을 주의 깊게 살펴본 결과 이날 단상에 올라 각자의 정견을 밝히고 우페이이를 지지했던 여러 후보들의 공통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행사에서 지지 연설했던 이들은 해바라기 운동 세대를 구호로 하는 초당적 연합인 이 세대 연합(這個世代連線)’의 구성원들로, 모두 2014년 해바라기 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는, 이른바 해바라기 세대정치인들이었다. 이 연합은 20239, 입법위원 린창줘(林昶佐)의 주도 아래 조직되었다. ‘이 세대 연합은 명확한 실체를 가진 조직이기보다는 2024년 선거를 위해 전략적으로 조직된 마케팅 성격의 조직으로, 우페이이(1987년생), 먀오보야(苗博雅, 1987년생), 라이핀위(賴品妤, 1992년생), 쩡원쉐(曾玟學, 1987년생), 우정(吳崢, 1989년생), 황제(黃捷, 1993년생) 등 젊은 시의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함께 움직이며 각 후보의 유세마다 함께 단상에 올라 지원 유세를 했다. 범록세력 안에서 해바라기 운동이라는 경험을 중심으로 뭉친 일종의 젊은 정치인 계파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사진 2..png

그림 2. 이 세대(這個世代, The Generation)’ 연합.
이들은 2024년 대만 선거를 앞두고 연합해 선거운동을 했다.



사진 3..png

그림 3. (왼쪽부터 라이핀위, 우페이이, 린창줘, 우정) 이들은 2024
선거운동 유세에서 서로를 지원했다
.



해바라기 운동과 이 운동이 대만 정치에 끼친 영향

  

해바라기 운동은 2014318일부터 410일까지 23일 동안 진행되었던 운동으로, 당시 대만 입법원의 양안 간 서비스 무역 협정(海峽兩岸服務貿易協議)’ 채택에 반대한 200여 명의 학생 및 시민단체가 입법원을 점거해 큰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운동이 한창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입법원 주변에 수만 명의 사람이 모이기도 했다. 운동 초기, 입법원 밖의 사람들은 희망을 상징하는 해바라기를 들고 이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고 이에 이 운동은 해바라기 운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46일 당시 입법원장이었던 왕진핑(王金平)양안협의 감독조례(兩岸協議監督條例)’가 제정되어 입법되기 전에는 양안 간 서비스 무역 협정을 검토하지 않기로 약속하면서 운동은 마무리된다.

   

해바라기 운동은 당시의 대만 정치와 사회, 양안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대만 정치에 끼친 영향이 크게 두드러졌다. 2016년 총통 및 입법위원 선거를 1년 앞둔 2015, 해바라기 운동의 주역들은 여러 진보 측 인사들과 힘을 합쳐 진보정당 시대역량(時代力量)’을 창당하는데, 시대역량은 특정 선거구에 후보를 내보내지 않는 방식으로 당시 야당이었던 민진당과 힘을 합쳤다. 그 결과, 시대역량은 창당 이후 치른 첫 선거에서 5(지역구 3, 비례대표 2)을 얻어내는 기염을 토한다.

   

또한 2014년 해바라기 운동은 청년들의 정치 참여 열풍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는 선거 입후보자 수의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시대역량을 비롯한 여러 군소 정당들이 등장해 너도나도 선거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결과 2008년과 2012년 각각 295, 283명이었던 지역구 입후보자의 수는 2016년과 2020년에는 377, 431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후보를 10명 이상 등록한 정당도 2008년과 2012년의 10곳과 9곳에서 2016년과 2020년에 14, 16곳으로 큰 변화를 보였다.

  

사진 4..png

그림 4. 대만 선거 입후보자 수의 변화



해바라기 운동은 입법위원의 연소화(年少化)를 불어오기도 했다. 201252.5세였던 대만 입법위원의 평균 연령은 2016년에는 50.8세로 낮아졌으며 전체 입법위원 중 50세 이하 입법위원들의 비율 또한 47%로 늘어 절반에 가까워졌다.

   

여성 정치인들의 증가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여성 정치인들의 수는 이전부터 증가해왔지만, 해바라기 운동 이후 크게 늘어 2020년에는 전체 입법위원 중 42%를 차지했다. 특히 이번 2024년 선거는 역대 가장 많은 여성 후보들이 출마한 선거였다.

  

사진 5..png

그림 5. 입법위원 중 여성의 비율



지나간 역사가 되어버린 해바라기 운동?

  

한편, 해바라기 운동의 영향력은 2016년 선거에만 반짝했을 뿐, 이미 지나간 역사가 되어버렸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여러 지표는 대만 정치가 해바라기 운동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바라기 운동 이후 갑자기 증가했던 입후보자의 수는 운동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젊어졌던 입법위원의 평균 나이는 이미 운동 이전인 2008년보다 많아졌다. 가령, 2024년 선거로 당선된 11대 입법위원 중 50세 이하 입법위원의 비율은 2008년보다도 낮은 27%로 떨어졌다.

  

사진 6..png

그림 6. 입법위원 당선자들의 평균 연령 변화 추이



해바라기 운동 이후 혜성처럼 등장한 시대역량의 기세도 오래 가지 못했다. 20165석을 얻으며 당당하게 입법원에 입성했지만 2017년부터 시작된 내홍과 이에 따른 내부 분열은 시대역량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실망을 불러왔으며 많은 이들이 민진당이나 민중당으로 당적을 옮기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 결과 2020년에는 의석수가 3석으로 줄었고 이번 2024년 선거에서는 단 하나의 의석도 얻지 못하며 창당 이래 처음으로 원외 정당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입법원 입성 이후, 대만의 미래에 필요한 어젠다를 선점하기보다는 작은 민진당이 될 것이냐 아니냐라는 소모적인 논쟁을 가지고 내부 분열을 겪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한계는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향후 대만 정치에 어떤 이변이 출현할지는 모르지만, 현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시대역량은 해바라기 운동 정당이라는 껍데기만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동오대학교(東吳大學) 정치학과 교수인 천팡위(陳方隅)는 해바라기 운동의 영향력이 모두가 생각하거나 예상한 것만큼 견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 운동으로 설령 몇 명의 신인 정치인들이 탄생했다 하더라도 기존의 정치 구조를 흔들지 못했다는 것이다.1) 실제로 서두에서 언급한 이 세대 연합의 후보들 중 이번 2024년 선거에서 당선된 이는 우페이이와 황제뿐이다. 특히나 이들 후보의 당선 원인이 이 세대 연합이라는 젊은 정치인들의 연대에 있기보다는 소속 정당이 민진당이라는 점에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두 여성 당선인이 모두 빼어난 미모를 지닌 만큼 정책적인 측면보다는 외적인 측면이 이들의 인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가령 황제 후보의 경우, 그의 정책적 견해보다는 코스프레 의상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진 7..png

그림 7. 민진당 입법위원 황제(黃婕)의 코스프레. 이 코스프레는 국내외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해바라기 운동 이후 벌써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 흘렀다. 현재 대학을 다니고 있는 청년들에게 해바라기 운동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암기 대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2014년 이후 대만 사회에서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청년들의 정치 참여는 그 열기를 잃어버린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청년들의 관심사와 참여 방식도 변했다. 이제는 직접적으로 거리에 나서기보다는 SNS와 미디어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참여 방식이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형태로 대만 사회를 바꿔나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날의 대만 사회는 언젠간 나타날 격랑의 시대를 위해 그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 운동도 이를 추동할 에너지가 필요한 법이다. 때가 되면 제2, 3의 해바라기 운동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김명준 _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동아연구소 박사과정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1) https://www.twreporter.org/a/318-movement-10th-anniversary-10-keywords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https://www.facebook.com/photo?fbid=931584648326560&set=pcb.931584768326548

그림 2. https://www.taiwannews.com.tw/zh/news/5036434

그림 3. https://www.cdns.com.tw/articles/795745

그림 4. 필자 정리

그림 5. 필자 정리

그림 6. 필자 정리
그림 7. 
https://today.line.me/tw/v2/article/7N5WGlr, https://ynews.page.link/syQ1G

https://www.ftvnews.com.tw/news/detail/2022A07W0295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