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그림 1. 김홍도의 ‘무동’
우리 전통악기 중에 해금이 있다. 깽깽 소리가 난다 하여 민간에서는 깽깽이, 깡깡이 등으로 불려왔다. 김홍도의 풍속화인 ‘무동’에서도 오른쪽 아래 악사가 연주하고 있는 악기가 바로 해금이다. 전통 악단의 연주에서 해금은 빠지지 않는 악기였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해금이 발신하는 심금을 울리는 소리에 매료되어 왔다.
해금은 우리의 전통악기이지만, 송나라 진양(陳暘)의 <악서(樂書)>에 따르면, “해금은 원래 변방 유목민족 해족이 즐기던 악기로서, 두 줄 사이를 죽편으로 마찰하여 소리를 얻으며, 민간에서 즐겨 사용된다”고 기록하였다. 해족은 돌궐 계통의 유목민족으로서, 6세기경 요하 상류 흥안령지역에 거주하였다. 해금이 중국 중원으로 전파된 시기는 대체로 남북조시대이며, 현악기가 발전한 수당을 거쳐 송원대에 이르러 수공업과 상업이 흥기하고 도시가 발전하면서 민간에 널리 보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전통악기의 발전과정에서 현을 활로 마찰하여 소리를 얻는 찰현악기는 여타 악기에 비해 늦게 출현하였다. 예를 들면, 토고와 석경류의 원시타악기를 최초 출현한 악기로 본다면, 훈류의 간단한 취주악기가 그 다음에 출현하였고, 금, 슬, 쟁 등의 탄현악기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출현하였다. 하지만 궁현악기는 뒤늦게 출현하였는데 11세기 전후에 처음으로 궁중음악과 민간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해금은 원대 이전에는 호금(胡琴), 계금(稽琴)이라 불렸으며, 송대에 유행하여 궁정과 민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해금과 비슷한 악기는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데 그 조상은 아랍의 찰현악기인 레밥(Rebab)으로 알려져 있다. 모로코,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슬람교와 함께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전파되어 몽골의 마두금, 중국의 얼후, 베트남의 단니, 한국의 해금, 일본의 고큐(胡弓) 등으로 변화 발전하였으며, 서양으로 전파되어 바이올린, 비올라 등의 모태가 되었다. 레밥은 페르시아에 기원을 두며, 동물의 내장을 꼬아 만든 두 현을 말총으로 만든 활로 연주하는 악기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예종 9년(1114년) 송나라로부터 수입되어 궁중과 연악에 사용되었으며, 이후 아악, 향악, 속악에 두루 사용되었다. <고려사> <악지(樂志)>에 해금을 우리 고유 악기인 향악기로 분류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미 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 해금을 우리의 고유한 토착악기로 보는 인식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세종 12년(1430년)의 하급관리 채용 시험과목에 “거문고, 비파, 대금, 장구, 해금, 당비파, 향피리(이상은 향악)”이라고 적혀있다. 그만큼 해금은 대중에 가까운 악기였다.
현재 중국에서는 해금의 연주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에서는 해금을 조선족의 민족음악에서 사용되는 전통 찰현악기로 소개한다. 이렇듯, 중동지방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해족과 중국을 거쳐 고려로 유입된 해금이 중국보다 오히려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여 한국 고유의 악기로 발전한 것이다. 사실 중국에서는 해금보다는 얼후나 마두금, 고호, 판호 등이 더욱 즐겨 연주되는 악기이다.
해금은 가야금, 거문고, 피리, 대금, 장구와 같은 향악기 편성에 빠질 수 없는 악기로 전승되어 다양한 기악 연주와 노래 반주를 감당해 왔다. 비록 독주음악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궁중음악에서 거리의 악사음악에 이르기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약방의 감초처럼 모든 영역의 음악을 넘나드는 악기로 환영받아 왔다.
그럼에도 해금은 주선율보다는 기악연주의 보조적 역할이나 반주음악에 그쳤다. 이는 무엇보다도 조선시대 내내 전통악기의 으뜸(百樂之丈)으로 선비들 사이에서 애호된 거문고의 그늘에 가린 탓이 있었다. 거문고가 선비들의 교양음악으로 연주되어 풍류문화를 주도했던 것에 비해, 해금은 비음의 해학적 소리를 내며 시장거리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지만, 무용과 노래 반주 등의 보조적 역할에 그쳤다. 이러한 까닭에 조선시대 문인들의 글에서 독주악기로 연주된 해금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전통 중국의 노장사상에서도 최상의 음악은 자연의 소리를 추구하는 데에 있었다. 동양인들은 현악기 가락의 아름다움을 줄을 뜯은 이후의 여음에서 찾았다. 악기를 연주한 주체는 인간이지만, 줄을 뜯은 이후의 여음은 인간의 의지를 벗어난 소리가 된다. 반면 활로 현을 마찰하는 소리는 인간이 강약과 속도를 조절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저급한 가락으로 받아들여졌다. 해금이나 아쟁과 같은 찰현악기가 정식의 현악기 반열에 들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더욱이 해금은 풍각쟁이와 걸인악사 등 일종의 유랑연예인이 생계형으로 구걸음악을 연주하는 악기이기도 했다. 해금으로 동물소리를 흉내내는 등 우스갯소리로 이목을 끌면서, 해금의 이미지가 ‘거랭뱅이의 깡깡이’로 인식되었다. 해금은 묘사음을 내는 단순한 악기로 인식되었고 수준 높은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이다.
줄을 뜯어 소리를 얻는 발현악기인 거문고나 가야금과는 달리 찰현악기인 해금은 소리를 길게 지속시킬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해금은 아쟁과 함께 현을 활로 연주하기 때문에 현악기로 인식되나, 정악에서는 음의 지속성을 기준으로 관악기로 분류된다. 정악에서 현악기와 관악기의 분류가 현을 울리느냐 관을 불어서 연주하느냐가 아니라, 음의 지속 가능 시간이 짧은지 긴지를 기준으로 나누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옛 문헌에서는 거문고 금(琴) 대신에 젓대 적(笛)을 사용하여 해적(奚笛)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또한 현악기이면서도 관악기 선율을 연주하고, 뜯는 것도 아니고 부는 것도 아니니, 예로부터 해금을 비사비죽(非絲非竹)이라 부르기도 했다.
해금은 두 현이 내는 소리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손의 운지와 줄을 당기는 강약에 따라 음의 높낮이가 조절되어 음역이 매우 넓은 악기이다. 해금은 서양의 12반음에 해당되는 모든 음계를 수용할 수 있으며, 동서양의 모든 노래가락을 담아내는 강점이 있다. 다른 찰현악기와 비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특유의 비성으로 섬세하고 애잔하며 심금을 울리는 매력을 발산한다.
서양악기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악기의 하나가 바이올린이라면, 이에 비견되는 악기가 중국에서의 얼후와 우리나라의 해금이라 할 수 있다. 흔히 19세기 거문고, 20세기 가야금, 21세기 해금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전통적으로 거문고가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는 의미로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불려 가장 애호하는 악기로 꼽혀 왔다. 근대 이후 서양음악이 유입되면서 다양하고 빠른 가락에 가야금의 풍부한 표현력이 부합하면서 일약 가야금이 널리 환영받는 악기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 국악음반의 현황을 보면, 다른 악기에 비해 유독 해금 독주 음반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국악곡에서 해금은 거의 빠지지 않는 악기이며, 창작곡에서도 독보적인 음색으로 합주 시 주선율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백화점 등 문화센터에서 빠지지 않는 악기 강습으로 해금이 대유행이다.
【중국문화오디세이 14】
김지환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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