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국제사회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의 중국에 대한 집요한 압박과 견제가 국제사회의 부정적 여론의 증가추세를 견인하고 있다면, 이에 대응하는 중국의 경직되고 고집스러운 태도가 그 불씨를 키워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 19 팬데믹에 대한 중국의 무책임한 대응과 신장위구르 지역과 홍콩 등에서 불거진 종족차별과 반민주적 행태는 이러한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사진 1. 베이징 중앙에 위치한 천안문
한국과 중국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2020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 리서치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2019년에 비해 12% 증가한 75%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서방세계의 중국에 대한 반감과 부정적 여론의 전파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팽배해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50%를 상회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퓨 리서치의 동일 조사에 의하면, 2015년 37%에 그쳤던 부정적 여론이 2017년 6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비난 여론이 급증한 데에는 2016년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과 그에 따른 한한령(限韓令)을 비롯한 중국의 각종 보복 조치의 실행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돌아보면,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은 줄곧 긴밀한 경제적 밀월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지만, 한국인의 중국 혹은 중국인에 대한 잠재적 인식과 감정이 호의적이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단순한 이익 파트너로서의 인정을 넘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였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반세기에 가까운 국경의 단절과 사회·정치적 체제의 생경함은 양국 간의 인식 차이와 문화 충돌의 빈발로 이어졌고, 지리적 근접성과 접촉의 친밀성은 오히려 역사·문화적 논란 같은 새로운 문제를 돌출시켜왔다. 그리고 이러한 다방면의 갈등이 지금의 ‘반중(反中) 정서’로 비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반중 정서’는 그것이 사람의 감정적 문제이기에 더욱 심각하다. 일단 감정적으로 고착이 되면,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작동하지 않는 한, 내면으로부터 쉽게 불식되거나 사그라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법무부는 ‘영주자 국내 출생 자녀 간이국적 취득제도’를 담은 국적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영주권자 가운데 2대 이상 국내에서 출생했거나 혈통적·역사적으로 유대 관계가 깊은 재외 동포와 그 후손에게 신고 절차만을 통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그 수혜 대상의 90% 이상이 중국 국적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대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고,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반대 청원이 올라와 30만 명이 넘게 동의했다. 실제로 법적 수혜 대상이 되는 중국 국적자의 경우, 대부분이 이른바 조선족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동포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특정 국적자를 우대하려는 취지가 결코 아니었다는 법무부의 해명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반대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청와대가 나서 국적법 개정안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나면서 사태는 비로소 진정 국면을 맞이했다.
어쨌든 ‘반중 정서’가 중국 국적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중국동포에 대한 혐오와 반감의 문제로까지 확전한 모양새다. 반대 청원의 핵심 요지가 ‘대한민국은 혈통주의 전통을 통해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해나갈 것’이라는 점에서도 이는 상식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다. 혈통주의에 대한 포기가 결코 아니라는 법무부의 설명도 궁색하고 구시대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젊은 세대가 혈통주의라는 낡은 패러다임에 묶여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데에는 실로 당혹감을 금치 못하겠다. 이는 1948년 제헌의회에서 <국적법>을 제정할 당시, ‘단일민족의 순결성’, ‘단군 혈통의 계승’, ‘귀화자의 배신에 대한 두려움’ 등의 논리로 혈통을 근간으로 한 국민 범위를 확정한 것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행태이다.
국적법 개정이나 강원도가 추진한 차이나타운 조성 사업의 추진 등은 법적 논리의 문제점이나 사업적 타당성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기초해 보류되고 좌초되었다기보다는 다분히 ‘반중’이라는 감정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반중 정서’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고 무시할 일은 아니다. 현상이 일반화되고 보편화되면 감당할 수 없는 후과로 남게 된다. 한일관계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발동하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교정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원인이 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다. 명색이 대국임에도 소국적 행태를 반복하는 중국도 깊이 성찰해야 하지만, 그에 반발해 감정적 낭비를 거듭하는 우리도 이쯤 해서 정력적 소진을 멈추어야 한다. ‘반중 정서’의 상승은 양국의 발전적 미래를 감안하더라도 결코 수수방관할 일은 아닌 성싶다. 소국의 대국적 면모를 기대한다.
송승석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방송통신대 장호준 교수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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