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그림 1. 공자(B.C 551 - 479)
공자(BC 551-479)는 사가들에게 두 가지를 평가받는다.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은 가문이 아닌 덕과 능력을 기준으로 선출되어야 한다. 정치의 진정한 목적은 백성들의 행복과 복리를 도모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능력과 도덕을 겸비한 현능인(賢能人) 즉 ‘군자’(good man)를 길러내는 것,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이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대동사회를 만드는 것, 이것이 공자의 교육론(敎學)과 통치론(政治)의 핵심내용이다. 교육의 목적은 인자(仁者)를 배출하여 백성에게 인정을 베푸는 것이다. 인자란 역시 능력만이 아니라 도덕이 겸비된 사(士)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도덕은 타자성을 포함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대와 책임이 곧 타자성이다.
공자의 문제의식을 조금 비약하면 한국이나 미국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메리토크라시 즉 능력주의와 정의의 문제와 연결된다. 원래 ‘Meritocracy’라는 말은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소설가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1958년에 쓴 ‘The rise of the Meritocracy’에서 처음 소개된 개념이다. 여기서 영은 메리토크라시를 찬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고를 위해 사용했다. 능력주의가 판을 칠 때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가 된다. 능력주의에 근거한 사회는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마이클 영의 핵심주장이다.
그림 2.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메리토크라시와 관련하여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이 있다. 원제는 ‘능력의 폭정’(The Tyranny of Merit)이다. 능력에만 의존한 분배는 공정하지 못하기에 폭정이라 표현한 것이다. 샌델은 결국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를 묻는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에 성공한자는 운이 좋았고 따라서 실패한 모두에게 겸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일대 교수 대니얼 마코비츠(Daniel Markovits)의 저서 ‘엘리트 세습’(The Meritocracy Trap)에서도 능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중산층의 몰락과 엘리트의 자기착취로 귀결된다고 주장한다. 엘리트는 교육을 통해 세습된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공자가 신분이 아니라 능력과 도덕을 기준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춘추시대이다. 춘추시대는 예악은 붕괴되고 힘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었다. 공자는 도가 살아있는 서주시대로의 복귀를 꿈꾸었다. 주나라 질서의 회복이라는 공자의 꿈이 유학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된 셈이다. 공자는 새롭게 시대를 인식하면서 전해져오던 여러 서책들을 새롭게 해석했다. 유학이 철학적 의미를 띠고 새롭게 출발하게 된 것은 공자로부터이다.
道, 學, 政은 공자 인문주의의 핵심 키워드 인(仁)을 구현하기 위한 주요 개념이다. 주나라 문화의 깊은 의미를 회복하려는 공자의 관심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의 길을 추구한다. 도가 무너지고 주나라의 질서를 재건하고자 했을 때 공자는 사변철학에서 답을 찾지 않는다. 그 답은 배움이었고 배움은 자기 쇄신을 위한 것이었다. 자기쇄신을 통해 올바른 정치를 하려 했다. 공자는 “인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는 폐단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또 자기인식(學)과 관련하여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공자는 교육을 할 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인교육’을 실행하려면 그 시대 리더가 될 士들과 밀착된 소통은 필수였다. 따라서 그의 교육 방식은 극히 개인적이었다. 개개의 인물됨에 따라 맟춤식 교육이었다. 그렇기에 학생들이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각각의 사정을 충분히 관찰한 후 거기에 어울리는 대답을 했다. 공자는 자신이 어렸을 적에 ‘미천한 신분’이었던 것을 숨기지 않았다. 공자는 학생이 빈한한 출신이어도 능력만 있으면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능력이 발현되기까지의 가능성까지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젊어서 힘든 시절의 개인의 경험을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공감의 토대로 활용하는 데 멈추지 않고 제자들로 하여금 품격의 단계로 나아가게 만들려 노력했다. “가난하더라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 것”을 넘어,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갖추는 경지”를 말하는 것은 그 노력의 결과였다. 책임윤리의 한 단면이다.
섭공(葉公)이 정치를 물었을 때 공자는 “선정을 베풀면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찾아온다”고 대답했다. 안을 쇄신하면 밖도 끌어들일 힘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안을 쇄신하는 것이다. 안과 밖은 따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자는 항상 능력만을 말한 적이 없다. 능력이 덕과 함께 있지 못하면 오만으로 빠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관리의 선발과 승진에도 이 양자가 함께 겸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사실상 과거제도는 공자의 이 아이디어를 기초로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춘추시대 공자의 개혁구상은 ‘도덕적 능력주의’라는 제도와, 예악의 근본을 이루는 핵심가치 仁에 기반한 원대한 문화 구상이었던 셈이다.
공자는 춘추시대까지 내려오던 여러 ‘관행’들을 새로운 시대에 요청되는 지식으로 재해석했다. 군자를 신분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지식인론으로 재해석하는 등 ‘창조적 복고’를 주장한 인물이다. 역사적 인물로서 공자는 체제이데올로기 유학과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이 말이 유법체제로 존재했던 유학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공자는 무엇보다도 사회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것도 문화 차원의 변화이다. 공자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문화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묵자가 사회, 장자는 개인, 한비는 국가에 관심이 있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문화는 경제, 사회, 정치, 교육의 베이스가 되는 가장 넓고 깊은 곳에 위치한다.
청제국의 붕괴로 2000여년동안 내려오던 제도와 문화가 모두 무너진 지 이미 100년이 넘었다. 그 때부터 중국의 100년은 헌정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아왔다. 21세기 공자가 다시 태어난다면 권력의 집중 현상에 대해 뭐라 말할까.
조경란 _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https://www.google.com/
그림 2: 와이즈베리 저자 마이클 샌델 2020년 12월 01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