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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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의 관행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화요리를 비롯한 음식 문화다. 세계 어느 차이나타운을 가도 중화요리식당이 있고 대부분은 화교나 화인이 경영한다. 고베의 차이나타운인 난킹마치의 중심지에 늘 장사의 진을 치는 가게가 있다. 바로 ‘라오샹지(老祥記)’이다. 이 가게는 ‘부타만’(豚饅頭)이라는 한 가지 메뉴만 판매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돼지만두’가 될 것이다. 손님이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의자는 십여 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포장해서 차이나타운의 쉼터나 집에 가져가서 가족과 함께 먹는다.
라오샹지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중국 절강성 닝보(寧波) 출신의 차오송치(曺松琪)가 1915년 난킹마치에서 가게를 열었다. 현재의 주인은 그의 손자인 차오잉성(曺英生)으로 3대째가 된다. 그는 난킹마치상점가진흥조합의 이사장을 지냈다. 차오송치가 중국 톈진(天津)지방의 톈진바오즈(天津包子)을 일본풍으로 ‘부타만(豚饅頭)’이라 이름 지어 판매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내에 ‘부타만’이라는 명칭이 퍼지게 되었다.
사진 1 100년 역사의 ‘부타만’ 전문점 라오샹지
맛도 일본인에 맞게 돼지뱃살의 다짐육과 냄새를 없애는 파를 넣고 간장으로 맛을 냈다. 일반적으로 만두의 피(皮)는 이스트균으로 발효하지만 라오샹지에선 누룩곰팡이를 사용한다. 그래서 피는 독특한 탄력이 있다. 라오샹지의 ‘부타만’에는 육즙(肉汁)이 듬뿍 들어있어 향긋한 냄새가 나며 감미로운 맛이 일품이다. ‘부타만’을 먹을 때 육즙이 넘쳐흐르지 않도록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부타만 한 개의 가격은 90엔(약 천원)으로 일본의 고물가로 볼 때 저렴한 편이다. 부타만 가격은 1920년대 후반은 4개 10전, 일본의 패전 직후는 3개 20엔으로 당시의 물가로 볼 때도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개점 당시의 라오샹지를 찾은 손님은 고향의 맛을 찾아 온 화교와 중국 선원들이었다. 지금은 일본 전국에서 뿐 아니라 전세계의 외국관광객이 꼭 들르는 명소가 되었다.
사진 2 라오샹지의 ‘부타만’
70년대 이전의 라오샹지는 지금보다 더 좁고 허름했다. 많은 손님이 오기 때문에 라오샹지의 미닫이문의 문고리가 닳아 구멍이 생긴 것이 신문에 소개되면서 손님은 더욱 증가했다고 한다. 현재의 가게는 새로 단장을 했지만 점포 내에 당시의 미닫이문을 장식해 두고 있다.
일본 패전 전까지 라오샹지를 비롯한 화교만이 ‘부타만’을 만들어 판매했지만 최근에는 일본인도 ‘부타만’ 시장에 참가하고 있다. 라오샹지 이외 고베의 ‘부타만’ 전문점으로는 春陽軒(1925년 개업), 太平閣(1946년 개업), 四興樓(1950년 개업) 등이 있다.
四興樓의 역사는 패전직후 암시장과 관련이 있다. 四興樓의 창업주는 난킹마치 근처의 산노미야의 허름한 막사에서 암시장에서 거래되던 설탕을 사용하여 뭔가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설탕, 돼지뱃살, 양파를 넣어 그들만의 ‘부타만’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부타만’을 취급하는 가게는 증가하여 고베의 ‘부타만’ 문화는 완전히 정착되었다.
2011년 ‘부타만’ 발생의 땅 고베를 홍보하기 위해 제1회 고베부타만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11월 11일을 ‘부타만의 날’로 하고 난킹마치에서 새롭게 창작한 ‘부타만’ 네 종류를 한정 판매했는데 이날 일본 전국에서 1만 명이 모여들었다. 다음해 참가 가게 수는 12개로 늘어났으며, 고베 이외에 요코하마중화가, 나가사키신치중화가의 ‘부타만’ 전문 가게도 참가했다.
【세계 화교화인의 역사와 관행 4】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참고문헌
吳宏明·高橋晉一編著, 『南京町 神戶華僑』, 松籟社, 2015
이정희, 「일본의 차이나타운 연구-고베 난킹마치를 중심으로」, 『중앙사론』 40, 2014.12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