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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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천안문 성루에 올라 전 세계에 선포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습니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그 당시 상황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소소한 궁금증이 생긴다. 그 당시 마오쩌둥과 더불어 천안문 성루에 오른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1978년 12월에 있었던 11기 3중전회는 중국 개혁개방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 11기 3중전회에서는 어떤 논의가 이루어졌길래 이런 평가를 받을까? 과연 11기 3중전회는 개혁개방의 출발점이었을까? 이런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자료가 중화인민공화국 국사 데이터베이스(中华人民共和国国史数据库)이다.
이 자료는 문헌 분량으로 총 300여 권에 달하며, 10만 여장의 삽화를 수록하고 있다. 시기상으로 1921년 7월부터 1990년대까지 생산된 자료들이다. 중국공산당 창당 이래 각 시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중요한 자료를 갖추고 있다. 이 자료는 중앙당안관(中央檔案館)이 소장하고 공개된 적이 없는 당안뿐만 아니라, 대만과 국외에서 출판된 관련 저서와 자료도 활용하고 학계에서 새로 발견된 사료들까지 흡수하여 만들어졌다.
1983년부터 20여 년에 걸쳐 10만 명이 참여하여 만들어진 이 자료는 각 분야의 전문가, 학자들뿐만 아니라 실제 업무를 맡았던 인물들이 편집과 집필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가 있다. 주룽지(朱鎔基), 천윈(陳雲), 쉬샹첸(徐向前), 류화칭(劉華淸), 리란칭(李嵐淸), 딩관건(丁關根)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집필 과정에서 고증, 교차검증, 연구를 추가하여 잘못된 개념이나 견해 등도 수정하였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마오쩌둥이 건국 당시 중앙인민정부 위원 전원을 이끌고 천안문 성루에 올랐다고 알려졌는데 사실 확인을 거쳐 오류를 수정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이 당시 펑더화이(彭德懷)를 비롯해 예젠잉(葉劍英), 린뱌오(林彪), 시중쉰(習仲勳) 등 56명의 위원들이 당시 베이징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중화인민공화국 국사 데이터베이스는 중국공산당과 국가 중앙기관의 주요 문서와 자료를 관리하는 중앙당안관과 중화인민공화국사를 전문적으로 편찬·연구하는 당대중국연구소(當代中國硏究所)가 정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