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지난 이야기다. 양제츠의 방한이 8월 말이었으니 이미 오래전 일이다. 11월 25일 왕이 외교부장이 방한하였는데 양제츠의 방한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뜬금없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양제츠가 왜 방한하였는가"가 아니라, "왜 양제츠가 방한하였는가" 이다. 양제츠의 방한은 이번 왕이 외교부장의 방한과 마찬가지로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관심이 가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왜 양제츠가 왔는지에 대하여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양제츠는 외교부장까지 역임한 외교관이다. 외교관의 외사업무와 관련된 외교적 방문은 의문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보도에서도 양제츠를 ‘외교담당 정치국원’이라고 하면서 양제츠의 방한에 대하여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양제츠의 현직은 중국공산당의 정치국위원이다. 과거 외교부장과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역임했기 때문에 정치국원으로서 외교를 담당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제츠는 2018년 이후 정부에서 어떠한 공식적 직위도 맡고 있지 않다. 자 그러면 여기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외교란 국가와 정부의 일이다. 그럼에도 국가와 정부에서 아무런 공식적 직위가 없는 양제츠가 외사업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중국은 공산당이 이끄는 국가이기는 하지만 국가 간의 관계인 외교를 국가와 정부에서 아무런 직위도 없는 사람이 담당하는 것은 아무래도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특사의 경우에는 그럴 수 있겠지만 보도의 어디에도 양제츠가 특사라는 언급은 없었다. 물론 중국에서 국가와 정부에 특별한 직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고 당직만을 가진 사람이 외사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특정한 조건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다. 사회주의국가 간에는 국가 간의 관계와 더불어 당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대통령이나 정부관계자가 중국을 방문할 때는 국가주석이나 국무원 총리 혹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 정부와 국가의 직무를 수행하는 지도자만 만나지만, 북한의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할 때는 당 업무만을 수행하는 상무위원을 포함하는 모든 정치국상무위원을 만나는 것이 그것과 관련된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중국의 체제에서 양제츠의 방한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와 정부에서 아무런 직위가 없는 당의 정치국 위원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특사 자격으로 방문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신문의 보도대로라면 특사가 아니라 ‘외교담당 정치국원’ 양제츠가 방한한 것이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특사 자격으로 왔지만 신문에서 편의상 ‘외교담당 정치국원’으로 표기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경우라도 특사 자격을 표기하지 않고 ‘외교담당 정치국원’만을 표기한 것은 외사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당직만을 맡고 있는 외사 업무 최고 책임자가 대외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당직만을 맡고 있는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직접 외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최소한 개혁 이후에는 없는 일이었다. 개혁 이후 중국 정치개혁의 핵심의 하나가 ‘당정분리’였기 때문이다. 당이 영도를 맡고 실행은 정부가 하는 것이 일반원칙이었다. 그런데 양제츠의 방한은 그와는 반대로 당직만 맡고 있는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외사업무를 직접 수행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진핑 시기 이루어진 ‘당정일체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양제츠의 방한은 한중 관계와 관련해서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정치체제의 변화와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체제에서 개혁 이후 이루어진 정치개혁의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가장 일반적인 평가가 집단지도체제의 약화를 포함하는 분권화에서 집권화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당 영도의 강화와 당정일체화라고 할 수 있다. “당정분업만 있을 뿐이지 당정분리는 없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함으로써 ‘당정분리’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는 것을 당장에 명문화하고 헌법에도 당의 영도를 명문화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혁 이후 명시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후퇴하고 있던 ‘당-국가체제’의 재강화라고 할 수 있다. ‘외교 담당 정치국원’ 양제츠의 방한은 바로 그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변화는 중국의 내부적 변화일 뿐만 아니라 대외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핵심 변수의 하나이다. 단순히 양제츠의 방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미중 충돌이 이념대결로 치닫고 있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바로 그러한 중국의 ‘당-국가체제’의 강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응한 미국의 냉전적 대응전략이 중국의 ‘당-국가체제’ 강화에 의하여 정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등장할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전략이 트럼프 정부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중국의 부상에 대응한 미국의 대응과 중국의 ‘당-국가체제’의 강화는 상수라는 점에서 대결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냉전적 대중국 전략과 더불어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당-국가체제’의 재강화와 이념에 대한 강조가 이후 세계와 한반도에 암운을 드리우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안치영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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