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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11월호
단오절 이야기 _ 김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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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단오절은 춘절, 청명절, 중추절과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단오는 설날, 추석과 더불어 3대 명절의 하나로서, 수릿날이라고도 불렀다. 일본에서는 이 날을 사내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명절로 간주하며, 베트남에서는 질병을 물리치는 날로 여기고 있다. 이처럼 단오는 중국에서 기원하였지만 이후 주변 여러 나라로 전파되어 수용되는 과정에서 현지의 문화와 환경에 맞게 변형되어 발전하면서 아시아인들의 큰 명절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세상 만물과 우주의 운행을 음양오행에 따라 이해해 왔다. 숫자로 보면 홀수는 음양 가운데 양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월과 일의 수가 모두 양과 겹치는 11(설날), 33(삼짓날), 55(단오절), 77(칠석날), 99(중양절)은 우주의 양기가 가득찬 날로서, 음양의 조화가 깨어진 불길한 날이 되는 셈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길한 정월과 흉한 5이라는 말이 있다. 5월은 악월, 독월, 흉월이라 불렸으며, 특히 55일은 흉함 중의 최고라 하여 많은 금기가 있었다. 중국의 풍속통의(風俗通義)에는 속설에 55일에 자식을 낳으면 아들은 아버지를 해치고, 딸은 어머니를 해친다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사기(史記)“5월에 태어난 아이는 부모를 해롭게 할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중국세시풍속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인 형초세시기1)도 음력 5월을 사악한 기운이 만연한 달로 간주하여 악월(惡月)이라 하였으며, 다음과 같이 다양한 금기를 소개하였다.


“5월에는 상()과 자리를 햇볕에 말리는 것을 꺼리며, 지붕을 덮는 것도 삼가한다....일찍이 산야지방에 사는 유식이라는 사람이 5월에 자리를 햇볕에 말렸는데, 어느 날 어린아이 하나가 자리 위에서 죽어 있다가 어느새 사라져 버린 일이 있었다. 그 후 유식의 딸아이도 죽었다....5월에 지붕 위로 올라가면 대머리가 된다....세속에서 5월에는 옥상에 올라가지 않는데, 그것은 지붕 위에 올라가 그림자를 보면 자신의 혼이 몸에서 떠나기 때문이다.”


음력 5월은 한여름에 해당되어 초목이 왕성하게 자라고 온갖 벌레와 독충, 뱀 등이 창궐하는 시기로서,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단오절 풍속은 자연히 질병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전해져 왔다. 중국 민간에서는 청명에는 버드나무를, 단오에는 쑥을 지닌다라는 말이 전해온다. 초여름에 비가 많이 내려 습하고 병충해가 생겨 병에 걸리기 쉬운 시기에, 쑥과 창포 등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따라서 단오절이 되면 집집마다 대문 위에 창포와 쑥을 걸어 사악함을 피하고자 하였으니, 이로 인해 단오절을 창포절(菖蒲节)이라고도 불렀다. 창포는 휘발성이 강한 방향유를 함유하고 있어 정신을 맑게 하며, 살균작용도 한다. 묵은 쑥을 약에 넣으면 냉기를 제거하고 이질을 멎게 한다. 마른 쑥을 불에 태우면 그 냄새로 모기를 쫒으며, 쑥잎가루는 침구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약제로 활용된다.

 

형초세시기를 살펴보면, 단오절은 본래 욕란절(浴蘭節)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즉 난초 잎을 끓여낸 물로 목욕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들에 나가 풀을 밟는 놀이를 하며, 쑥을 뜯어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어 문 위에 걸어두고 독기를 없앤다고 하였다. 또한 창포를 아로 새기거나 가루로 만들어 술에 타서 마셨다. 이 날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쑥을 뜯었는데, 이 쑥으로 뜸을 뜨면 효험이 있다고 여겼다.


중국에서 단오라는 이름은 위진시대의 풍토기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여기서 단오는 무더운 여름의 시작이니, 단은 시작을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여름이 시작되는 5월의 초닷새인 55일이 단오절이 된 것이다. 단오는 원래 중하(仲夏)가 있는 달의 첫 번째 오일(午日), 즉 오월(午月) 오일(午日)이다. 후대 사람들이 간지 대신 숫자로 시간을 기록하면서 오일(午日)5일로 대체되었지만 단오라는 이름은 유지해오고 있다.


단오절은 단양절(端陽節)이라고도 부르며, 용주경기를 한다 하여 용주절(龍舟節),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이자 충신인 굴원을 기리는 뜻에서 굴원절(屈原節), 시인절(詩人節), 수자 5가 겹친다는 뜻에서 중오절(重五節) 등으로 불린다. 이 밖에도 천중절(天中節), 용절, 창포절, 오월절(午月節), 오일절(午日節) 등 수많은 별칭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단오를 수릿날, 수뢰날 등으로 불렀다.

 

단오절의 기원과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이 가운데에도 전국시대 초나라 굴원(屈原)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생겨났다는 설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 굴원은 초나라 회왕(B.C.328-299)에게 제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자고 진언하였으나, 결국 간신들의 모함으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유배의 길로 들어섰다. 진나라의 공격으로 초나라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굴원은 비분강개하여 기원전 278년 음력 55일에 62세의 나이로 호남의 멱라수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였다.


사람들은 비통한 마음에 배를 타고 굴원의 시신을 찾으려 했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대나무 통에 찹쌀밥을 넣어 강물에 뿌리고 북을 치며 용주(龍舟, *용머리 모양의 배)를 저어 물고기를 쫓아 굴원의 시신을 먹지 못하게 하였다. 이후 굴원을 기념하여 이 날을 단오절로 정하게 되었다.

 

당나라 시인은 초나라 사람들이 굴원의 죽음을 비통해하니, 천년이 흘러도 그 마음이 계속되는구나라고 하였다. 송나라 소식도 물가에 북소리가 어찌 이리 요란한가. 물에 모리를 조아리며 굴원을 추모하는구나. 굴원이 세상을 등진지 천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배 안 가득 울려 퍼지는 곡소리가 지금까지 이어지는구나라고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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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경기는 단오절의 주요한 풍속으로서, 전 중화권에서 매년 음력 55일을 전후해 대대적으로 개최된다. 굴원의 시신을 건지기 위해 용선을 타고 강을 따라 갔던 것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용주는 용 모양의 목선으로, 징과 북을 울리며 선두를 다툰다. 형초세시기에 따르면, “음력 55일에 배를 띄워 경주하는 풍습이 있는데, 초나라 굴원이 멱라수에 빠져 죽은 날을 애도하는 뜻이다. 이 배들은 빠른 속도를 얻기 위하여 가볍게 제작되는데, 이 배를 비부(飛鳧, *나는 오리), 수거(水車, *강을 건너는 수레), 수마(水馬) 등으로 불렀다.”


용주경기는 노를 젓는 사람의 기술과 체력이 승패를 결정한다. 20명 내외가 힘을 합쳐 노를 저어 나가고, 맨 앞 용머리에 있는 사람이 목적지의 깃발을 빼어들면 우승하게 된다. 호남지방에서는 64미터의 큰 배에 66명이 승선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세계연맹도 결성되어 있으며, 2020년도 광주아시안게임에서 용주경기가 정식 경기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굴원의 고향인 호북성 자귀현에서는 음력 55일을 초단오, 515일을 대단오, 525일을 말단오라 하여 모두 세 차례 명절을 지낸다. 단오절 기간에 사람들이 굴원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주변 강에서 용주경기가 거행된다. 이를 위해 며칠 전부터 용선을 다듬고 페인트칠을 하며, 행사가 시작되면 덕망이 높은 연장자가 용선에 용머리를 달고 용안을 점안한다. 그리고 닭과 양의 피를 마시고 그릇을 깨뜨려 용주경기의 시작을 알린다.

 

단오절에 먹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종자(粽子, 쫑즈)를 들 수 있다. 종자는 물고기가 굴원의 시신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나무통에 밥을 넣어 강에 던져준 음식에서 유래하였다. 음력 55일 단오가 되면 찹쌀을 씻어 댓잎으로 싼 종자를 만드는데, 삼각형으로 묶은 후 쪄낸 음식이다. 종자는 통종(筒粽)이라고도 하며, 지역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종자의 소는 북방지역의 경우 대추를 많이 사용하는 반면, 남방 지역에서는 팥, 절인 고기, 계란 노른자 등을 사용한다.

 

단오와 관련된 풍속과 금기는 하루 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어 왔다. 중국의 단오절은 대략 전국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 시대 단오절은 주로 불길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뜻에 주안점이 두어졌다. 황실에서는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부엉새 국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부엉새는 자기 어미도 잡아 먹는다 하여 악조로 여겼기 때문에, 부엉새 국을 먹음으로써 악인이 되지 말라는 의미를 가진다.

 

위진남북조 시대는 정치적으로 분열된 격변기로서, 북방 유목민족들의 침입으로 중원의 한족들이 대거 남쪽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이 강남지역으로 들어가 다른 문화와 상호 융합하면서 단오절 자체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용주경기를 들 수 있다. 당시 용주경기는 대체로 중국 남방에서 전해온 풍속이었는데, 남북문화의 융합을 통해 용주경기가 전 중국에 걸쳐 단오절의 주요한 행사로 자리잡게된 것이다.

 

단오에는 구관조 새끼를 잡아다 말을 가르치는 풍습도 있었다. 형초세시기에 따르면, 단오에 맞추어 구욕(鴝鵒, *구관조)을 잡아 말을 가르치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구관조의 혀 끝을 조금 자르면 앵무새처럼 말을 잘하게 된다고 한다. 음력 5월이 되면 구관조의 새끼는 깃털이 완전하게 나게 되며, 이 때 사람들이 새둥지로 올라가 구관조 새끼를 잡아다 길렀다. 이 때 반드시 먼저 혀끝을 조금 자른 후에 비로소 말을 가르쳤다.

 

단오는 특히 아이들의 금기일로 인식되었다. 집집마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단오 피하기라는 풍습이 있었다. 단오날 젊은 부부가 한 살이 되지 않은 아이를 외가에 맡겨 불운을 피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가고시마에서도 이와 유사한 풍습이 있었다. 모친이 한 살이 되지 않는 여자 아이를 업고 밖으로 도망가는 것을 묘사한 유녀제(幼女祭)라는 군무가 있다.

단오에는 홍색, 황색, 백색, 흑색, 녹색의 오색 실을 아이들의 손목이나 발목에 묶어주는데, 이를 온갖 병마를 물리친다는 의미의 벽병(辟兵)이라 하였다. 아이들의 건강을 비는 마음으로 오색실을 손목이나 발목에 묶어 잡귀를 쫒아 무병장수를 기원한 것이다. 사내 아이는 왼쪽에, 여자 아이는 오른쪽에 매었다.

 

중국에서 단오절은 장사하는 상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빚을 갚고 결산하는 날이었다. 중국에서는 빚은 5월 단오절과 8월 중추절에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관습이 있어, 이를 절기 결산이라 불렀다. 단오와 추석은 1년 중 가장 중요한 결산일이었으며, 결산 이후 계약을 연장하거나 기존 계약을 종료하기도 하였다.


반대로 빚을 진 채무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절기를 무사히 넘기기를 소망하였다. 상점에 고용된 사람들은 저녁 연회 전에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명절이나 절기는 그리 아름다울 수 없었다. 따라서 명절을 보내는 일이 관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 하여 이를 명절 통과하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단오절에는 향주머니를 매다는 풍습도 있다. 귀신을 물리치고 돌림병을 막기 위한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장식의 의미도 강했다. 향주머니는 진사(辰砂)2), 웅황, 향약 등을 비단으로 싸서 만들었다. 이 밖에 건강을 위해 매화, 국화, 복숭화, 사과, 연꽃 등이 있는 향낭을 즐겨 찼다. 여러 개를 오색 실로 매어 옷에 달면 아름답기도 하고, 진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밖에 단오절에는 웅황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으며, 특히 장강유역에서 매우 성행했다. “웅황주를 마시면 병마를 쫓아 낸다는 말처럼, 웅황주는 질병을 물리치는 효과가 있다. 직접 담근 술에 소량의 웅황을 넣어 단오절에 마신다. 술을 마실 수 없는 아이들에게는 이마나 귀, , 손바닥 등 여러 곳에 웅황주를 발라 소독하고 병을 예방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모기에게 물리지 않도록 하였다. 웅황은 비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광물질로서,본초강목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깨끗하고 투명한 것은 웅황이고, 겉이 검은 것은 훈황(熏黃)이라고 하는데, 피부가 헐었을 때 이를 낫게하는 효능이 있다. 살균작용을 하며, 습해지는 증상을 없애고, 가래를 삭이며, 벌레를 죽인다. 복통을 멎게 하고, 부스럼, 뱀에 물렸을 때나 코 안에 종기가 났을 때 효과가 있으며, 나쁜 사기를 없앤다. 또 악창이나 큰 종기, 치질, 굳은 살, 버짐 등에도 효험이 있다. 힘줄이 끊어졌거나 뼈가 부서진 것을 낫게 하고, 해독작용을 한다. 주로 외용약으로 사용하는데, 가루를 내서 환부에 뿌리거나 개어서 바른다. 내복약으로는 가루를 내어 물에 풀어 잡물을 제거한 후 말려서 달임약에 넣어 쓴다. 임산부와 허약한 사람에게는 쓰지 않는다.”

 

예로부터 불길한 달인 5월에는 약초를 섭취하여 신체를 보하는 전통이 있었다. 형초세시기이 날이 되면 배 경주를 하고, 보약을 먹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근대시기 호북성 감리현의 기록에서도 단오에 약초를 캐고, 쑥잎을 걸어 몸을 보호했다라고 하였으며, 영산에서는 단오에 약초를 캐어 보약을 달였다고 한다. 이러한 풍습은 다른 나라로 널리 퍼져 나가, 베트남에서도 단오에 보약을 먹는 풍습이 생겼다. 약초는 정오에 캐낸 것이 가장 효과가 크며, 더위나 전염병, 음기가 쇠해 생긴 병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중국문화오디세이 11


김지환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1) 형초세시기는 전국시대 초나라 풍속과 연중행사를 적은 책으로 중국세시기의 효시이다. 남북조시대 양나라 종름이 편찬한 것으로서, 일본에 8세기경 전래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세시기인 동국세시기(1849), 동경잡기(1669) 등에도 형초세시기의 인용구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 황화수은이 포함된 광석의 일종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ahwh.wenming.cn/wmzt/ddly/ddjdsp/201412/t20141208_1490212.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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