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한 사회에서 어떤 단어가 새로 만들어지고 널리 사용된다는 사실만큼이나 어떤 단어가 절대로 사용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왕의 이름을 함부로 휘갈겼다가는 목숨마저 잃을 수 있었던 왕조시대 유교 문화권의 피휘(避諱)가 대표적이다. 피휘는 황제와 군왕의 절대 권력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이름이 실체와 동일하다는 원시적 사고가 왕조시대에 잔존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많은 고대 부족들은 이름을 육체•영혼과 동일시하거나 최소한 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 보았다. 오늘날과 달리 이름은 무차별적으로 호명되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이 필요한 경우에만 호명될 수 있도록 은밀히 숨겨놓아야 할 열쇠에 가까웠다. 함부로 본명을 부르는 것은 육체와 영혼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어도 될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었다. 아명(兒名)처럼 육체와 영혼을 건드릴 수 없는 가짜 열쇠, 가짜 이름을 갖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이름뿐만 아니라 발화된 단어와 기재된 글자를 현실에 근접시키는 행위는 지금도 남아 있다. 굳이 이름이 아니더라도 붉은 펜으로 무언가를 쓰는 행위 자체를 우리는 아직도 꺼려한다. 피휘와 더불어 명(名), 자(字), 호(號)의 복잡한 호명체계, 그리고 역사에 수시로 등장하는 문자옥(文字獄)을 보면, 중국 문명은 언어와 실체의 연결에 더 민감했던 것일 수 있다.
현재의 중국이 꼭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7월 1일 중국의 포털사이트 텅쉰망(騰訊網)이 시진핑 주석의 공산당 창당 95주년 활동을 보도하면서 “시진핑이 중요한 연설을 발표했다(習近平發表重要講話)”라는 문장에 오타를 냈다. ‘발표(發表)’ 대신 성조는 틀리지만 발음이 같은 ‘파뱌오(發飆)’로 보도가 나간 것이다. 한 끗 차이지만, 불행하게도 이 ‘파뱌오’는 뜻이 그리 좋지 못한데다 영도자의 진중한 공식일정에 등장하기에는 어감이 너무 가볍다. 버럭 성을 내거나 엉뚱하게 딴소리를 한다는 뜻이다. 2005년부터 시행된 「인터넷 뉴스정보 서비스 관리 규정」에 따라 중국도 우리처럼 포털사이트는 뉴스를 직접 생산하지 못한다. 이번 보도도 「신화통신」의 보도를 옮기던 과정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의도가 있거나 특정인의 실수가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의 오류로 추정된다.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가벼운 한 글자의 실수가 가져온 결과는 제법 무거웠다. 텅쉰망 편집장 왕융즈(王永治) 등 주요 관련자가 면직되고 주요 인터넷 사이트들의 뉴스 보도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었다. 단 한 글자가 공산당과 영도자의 영혼과 육체에 손상을 주지는 않았겠지만, 몇몇 인터넷 종사자들의 직위에는 치명타를 가했다.
이러한 인터넷 문자옥이 처음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2015년에는 “시진핑이 연설 중 말했다(習近平在致辭中說)”라는 문장에서 ‘연설(致辭, Zhici)’을 ‘사임(辭職, Cizhi)’으로 잘못 써 “시진핑이 사임 중 말했다”로 잘못 보도한 관련자들 역시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집권 초기,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이름이 ‘시진핑(習進平)’으로 잘못 표기되곤 했는데, 몇몇 책임자가 잘렸다는 소식이 해외 중화매체를 통해 전해지곤 했다.
중국 당국의 가혹해 보이는 이러한 조치보다 최근 더 놀라운 점은 문제를 일으킨 어구를 인터넷에서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번 ‘파뱌오’ 사건처럼 풍파를 일으킨 어구들은 종국에는 사라질지라도 짧은 시간 동안은 중국 네티즌들의 적당한 놀이감이 되곤 했다. 특히 중국판 트위터라고 할 수 있는 개인들의 웨이보(微博)까지는 미처 민감한 단어가 다 처리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아마 문법적으로 이상할지라도 “중요한 연설을 하며 성을 냈다(發飆重要講話)” 같은 어구가 잠시 유행되거나 새로운 조어의 탄생을 유도했을 법하다. 하지만 이번 ‘파뱌오’ 사건을 연결시킬 수 있는 어구나 재치 있는 신조어는 찾을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술적인 부분이야 알 수 없지만 비상시 게시판 복원을 위해 자동적으로 임시 생성된다는 캐시(cache) 파일을 우연히 딱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삭제되었지만, 운 좋게 살아남은 이 파일에는 7월 22일자 댓글이 달려있다. 사건이 발생한 7월 1일부터 스무날 넘게 몇몇 게시판에서 ‘파뱌오’에 대한 게재와 삭제가 반복되었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 중국은 2014년 「인터넷 안전·정보화 영도소조」를 새로 신설하고 시진핑 주석이 직접 조장을 맡을 만큼 인터넷 관리에 열을 쏟고 있는데, 거대한 중국의 네트워크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모양새다. 덕분에 신조어가 될 뻔한 단어들은 이제 더 이상 신조어가 될 수 없다. 아마 “發飆重要講話”라는 어구는 당분간 21세기 피휘로 남게 될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習進平’이라는 좀 오래된 오타는 아직도 그럭저럭 꽤 찾아낼 수 있다.
【신조어로 보는 중국문화 2】
조형진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hkdsels.net/2014/04/03/%E4%B8%AD%E5%9C%8B%E7%B6%B2%E7%B5%A1%E7%9B%A3%E6%8E%A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