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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4월호
바다 위 알라신을 믿는 중국인들 _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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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이슬람화, 특히 말레이반도, 수마트라, 자바 및 부속 군도, 브루나이, 필리핀 남부 일부지역의 이슬람화는 13세기 후반을 그 시작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마트라 북부, 지금의 아체(Aceh)지방에 성립한 파사이(Pasai) 술탄국을 최초의 이슬람 왕국으로 보고 있다. 이후 15세기 초 동서교역의 핵심으로 떠오른 믈라카(Melaka)의 왕이 개종한 것을 계기로 동남아시아 도서부 전역으로 전파되기에 이른다. 동남아시아의 이슬람화는 당시 이슬람교가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배경과 함께 이전 남아시아 지역에 이슬람화가 진행되어 델리술탄왕국, 무굴제국이 성립하였고, 그로 인해 인도계 이슬람 상인이 동남아로 진출하였다는 직접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문명적 현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일반적인동남아의 이슬람화 과정에서 베트남 남부지역은 일종의 예외지역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참파(Champa)왕국이 있었던 베트남 남부지역에는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현재 11세기 초일 것으로 추정되는 이슬람 무덤과 다양한 서아시아 양식의 도자기들이 발굴되었다. 이 시기 참파왕국은 이미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게다가 현재 베트남 남부지역에 퍼져있는 참(Cham)족들 중 일부는 여전히 이슬람교도들이다.

 

베트남 남부 참파왕국의 비교적 이른이슬람화는 중국의 영향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7세기 이미 해로를 통해 중국에 진출한 이슬람 상인들의 주요 기항지가 참파왕국이었다. 또 한가지 요인은 이슬람인의 활동으로 형성된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7세기부터 15세기까지 중국 동남부 지역 광주(廣州), 천주(泉州) 지역에 이미 이슬람인들의 거주구역이 형성되어 있었던 영향이 크다. 거주구를 형성한 이슬람인들의 영향을 받아 개종한 중국계 이슬람교도들 혹은 그 혼혈 후예들이 상인이 되어 동남아로 진출할 때 기항하던 항구가 주로 참파왕국의 동부해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이슬람화된 중국상인들의 해외진출 과정에서 참파왕국 역시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10세기 이전으로 보기도 한다.

 

당(唐)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광주 상인들의 해상 실크로드 진출로 인해 당시 광주에는 수많은 외국상인들이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중 상당수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건너온 이슬람 상인들이었다. 10세기 이후 천주가 동방항로의 대항으로 떠오르면서 이슬람 상인들이 거주구를 형성하였고, 몇 기의 모스크가 지어지기도 했다. 그중 하나인 청정사(淸淨寺)가 여전히 천주지역에 남아있다. 그 영향으로 복건 남부지역은 10세기 이전 일찍부터 이슬람 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명(明)대 정화(鄭和)가 대항해를 준비할 시기에 아랍인 선원들을 천주에서 모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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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복건성 천주의 청정사 내부 전경. 육상 실크로드를 통해 서안(西安)에 조성된 모스크인 청정사가 중국화된 이슬람교를 보여준다면, 천주의 모스크는 같은 명칭임에도 서아시아 모스크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른 한편으로 당시 동남아시아에는 단순히 상인으로 왔다가 현지의 이슬람 지배계층과 혼맥을 통해, 혹은 사업상의 기회를 획득하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중국인들도 있었다. ‘동남아에서 이슬람화된 중국인의 출현이다. 15세기를 전후한 시기 유럽-서아시아-남아시아-동남아시아-동북아시아로 이어지는 해상실크로드를 장악하고 있던 세력은 이슬람 상인들이었다. 이슬람 상인들은 동서를 잇는 교역로를 항해하면서 형성한 교역네트워크에서 상행위를 할 때 이슬람 법률에 기반한 상관행을 그대로 유지하였는데, 이는 당시 이슬람 세력이 세계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고, 이슬람 상인들의 상업 및 금융 기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발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 말레이 지역과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오랑라웃(Orang laut)이라 불리던 로컬 해상민족들과 중국인 상인들의 경우 이슬람 상인들의 상관행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현실적 고민이 그들을 이슬람교로 개종하게 만든 직접적 요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표적인 지역이 현재 인도네시아 자바섬 북부 해안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항구도시들이다. 데막(Demak), 수라바야(Surabaya), 켄달(Kendal) 등 자바 북부 해안지역은 동서교역의 중심이자 1400년대 초 이슬람으로 개종한 믈라카와 향신료의 주요산지인 몰루쿠 제도(Maluku Islands: 향신료 제도)를 연결해주는 중개지역으로 이슬람 상인들 중심의 항구도시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특히 정향, 육두구로 대표되는 동남아의 향신료는 당시 서아시아의 이슬람 상인들이 베네치아 상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수출하던 매우 중요한 물품이었다. 자바 북부 해안지역은 이러한 향신료를 싣고 믈라카로 돌아가는 선박들이 주로 기항하는 길목에 자리하였다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복건, 광동으로부터 건너온 중국인 상인들 역시 주요 거점인 자바섬 북부지역에 자리잡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상당수가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몇몇 중국인 상인들은 지배계층과의 혼맥을 통해 이슬람화하면서 당시 자바 북부 이슬람 세력의 지배계층을 형성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16세기 즈음이 되면 이 지역의 이슬람 세력은 아랍/인도/말레이/중국인 이슬람 상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교역을 매개로 다른 종족의 상인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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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 자바지역 마타람 술탄국 세력도

 

자바 북부에 형성된 다종족 이슬람 세력들은 1572년 큰 사고를 치게 되는데, 바로 당시 자바 중·북부지역과 발리섬을 장악하고 있던 강력한 자바인들의 왕국인 마자파힛(Majaphahit) 왕국을 멸망시킨 것이다. 마자파힛 왕국은 동남아시아의 고대를 형성했다고 평가받는 힌두/불교를 중심으로 건설된 국가였고, 현재 국민국가 인도네시아의 원형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자바왕국이다. 데막의 이슬람 상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자바 북부 항구도시들간의 이슬람 연합세력이 결국 힌두/불교 중심의 자바왕국을 패배시키고 자바지역을 장악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중부 자바에는 마타람(Mataram) 술탄국이, 서부에는 반튼(Banten) 술탄국이 형성되어 자바섬의 이슬람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살아남은 일부 소수의 마자파힛 왕가의 인물들이 발리섬으로 피신하여 힌두문명을 그대로 유지하였는데, 그런 이유로 현재까지도 발리섬은 인도네시아 내에서 유일하게 힌두교를 믿고, 희미하나마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는 지역이다.

 

중국에서 이슬람화된 중국인동남아에서 이슬람화된 중국인간의 교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 바로 명대 1405년에 시작된 정화의 남해대원정이다. 정화의 원래 이름은 마화(馬和)로 중국 운남성 곤명(昆明)출신이다. 성인 마는 무하마드에서 따온 것으로 원래부터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난 이슬람교도라고 알려져 있다. 명을 건국한 주원장(朱元璋)의 운남공략 당시 사로잡혀 거세당한 채 환관이 되어 연왕(燕王) 주체(朱棣)에게 보내진다. 이후 연왕의 정변에서 큰 공을 세워 황제로부터 정(鄭)이라는 성을 하사받아 정화가 되었다. 1405년부터 시작된 7차례의 남해 대원정은 공적으로는 원(元)을 물리치고 중화제국을 건설한 명의 조공체제를 확대하려는 목적이 있었고, 정화 개인적으로는 이슬람교도로서 원정을 성지인 메카(Mecca)로까지 보내고 싶은 욕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숨겨진 이야기로는 당시 조카인 건문제를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영락제가, 공식적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졌지만 달아났다고 추정되던 건문제가 남해방향으로 갔다는 정보를 듣고 추적하기 위해 원정을 계획했다고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정화는 동남아의 믈라카를 거쳐 자바에도 머물게 되는데, 당시 자바지역에 있던 중국계 이슬람교도들을 만났을 뿐 아니라 자바지역과 믈라카 주변 말레이 세계의 이슬람화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5, 16세기를 전후한 시기 코란을 몸에 지니고 메카를 향해 절하던 선상(船上)의 중국계 이슬람교도들이 남중국해를 오가며 교역 네트워크를 형성하였고, 그 유산은 여전히 잔존하여 중국 복건 남부지역의 모스크와 자바지역 중국계 이슬람교도들을 통해서 그 일부나마 엿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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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수마트라 북부 아체지역 아체 박물관에 보관된 차크라 돈야 종(cakra donya bell). 수마트라 북부 아체지역은 동남아 도서부 중에서 가장 먼저 이슬람화된 지역이자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가장 강성의 이슬람교도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지역이다. 정화는 남해대원정 당시 아체지역 파사이 술탄국에 이 종을 선물했다고 한다. 겉에는 아랍어와 중국어가 함께 새겨져 있다.


【동남아화교화인 관행 13】


김종호 _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1] 복건성 천주 청정사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Qingjing_Mosque_-_DSCF8699.JPG#/media/File:Qingjing_Mosque_-_DSCF8699.JPG 

[사진-2] 마타람 술탄국 세력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taram_Sultanate_in_Sultan_Agung_Reign.svg#/media/File:Mataram_Sultanate_in_Sultan_Agung_Reign.svg 

[사진 3] 수마트라 아체지역 차크라 돈야 종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kra_Donya.JPG#/media/File:Cakra_Dony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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