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촌락연구 시각에서 본 현지자료의 수집과 해독 _ 류자오후이 씀, 김판수 역
1. 머리말
클리포드 기어츠에 따르면,
“인류학자는 촌락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 촌락 안에서 연구를 수행한다.”
1960년대 이후 촌락연구에서의 민족지 방법은 다음과 같은 인식론적 곤경에 처해 있었다. 첫째 기능주의 이론의 속박, 둘째 서구 개념의 토착 개념 대체, 셋째 오리엔탈리즘적 인식이 그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중국을 연구하는 일부 인류학자와 역사학자는 함께 화남(华南)지역 촌락에 대한 ‘역사인류학’ 연구를 진행해왔고, 이러한 ‘문헌자료’와 ‘구술자료’의 결합을 통해 오늘날 중국 전통촌락 연구의 ‘패러다임 혁명(范式革命)’을 가능케 했다. 이와 관련하여 본 논문에서는 두 가지 문제를 다룬다. 첫째는 민간역사문헌과 현지조사 자료의 비교이다. 둘째는 인류학적 의미의 1차 현지조사 자료와 민족지의 ‘진실성’ 문제이다.
2. 촌락 안에서의 인류학과 역사학
촌락사회 변천에 대한 연구는 2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방법론상의 민족지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인식론상의 현대성 경로이다. 특히 전자는 20세기 이후 중국 향토사회에 대한 해석과 분석의 주요 방법이다. 역사인류학의 화남지역 촌락 연구는 주로 민간사회가 종교와 의식(仪式)을 통해 일상사회의 제도적 관리 등을 응집시키는 문제를 다룬다. 또 모든 지방 종교가 국가를 모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국가를 대체하고 있는 문제를 밝힌다. 이는 역사인류학이 ‘민사관(民史观)’의 영향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인류학자가 역사문제를 다룰 때, 조사자료를 일종의 사료로 운용하는 경향 또는 조사 과정에서의 체험을 사료 이해의 열쇠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역사인류학자가 현지 조사와 해석에서 다양한 어려움에 처해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인류학은 역사적 현장을 ‘사료’가 아닌 ‘현지’로서 인식하고 계속 현지로 되돌아간다. 역사학자와 달리 역사인류학의 현지조사 자료는 어떻게 ‘구사료’ 또는 ‘신사료’를 수집해야 하는지에 있지 않고, 어떻게 구체적 문헌사료를 그 시기의 사회구조와 권력생태(生态) 속에 ‘환원(还原)’시킬 것인가에 있다.
에반스 프리차드에 따르면, 인류학자의 시각에서 역사인류학은 두 개의 유형이 있다. 하나는 역사민족지, 즉 당안자료와 현지의 구술사자료를 이용하여 어떻게 과거가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연구하거나, 과거의 통시성과 공시성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역사적 인류학 연구(anthropology of history), 즉 특정 족군에 관심을 집중하여 과거의 구조가 어떻게 현재의 해석에 활용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또 과거는 어떻게 오늘날 새롭게 창조되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상술한 역사학과 인류학의 비교 분석 중, 우리는 역사학의 인류학적 경향이든 인류학의 역사학적 경향이든, 각 분과학문적 방법을 거울 삼아 최종적으로는 각 학문의 ‘방법론 본위’로 되돌아가려 하고, 또 각 학문의 ‘근본적 문제(元问题)’에 기반하여 해석하고 분석한다는 것이다.
3. 구술사와 ‘문자사(文字史)’로서의 현지자료
링건촌(岭根村)은 저장성 린하이시(临海市) 동청진(东塍镇)에 속해 있고, 링건, 샤완(沙湾), 와이산(外山) 3개의 자연촌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인구는 743개 가구 2,269명이다. 그 중 링건촌의 인구가 1,983명으로 가장 많으며 왕씨 인구가 1,202명을 차지하고 있다. 링건촌은 전형적인 강남의 종족 촌락이다. 왕씨 족보에 따르면 왕씨의 1대 조상(开基祖) 왕호(王皡)의 세 아들이 각각 분파했고, 이후 분파를 거듭하며 새로운 집들을 계속 건립해왔다. 각 분파의 맏이(房头) 중심의 집거지가 만들어져, 현재는 링건촌의 물리적 공간에 리왕(里王), 샤디엔(下店), 와이왕(外王), 상신우(上新屋) 4개의 집거지가 형성되었다. 1대 조상의 저택에서 떨어져 나온 분파를 중심으로 볼 때, 이러한 집거지들은 분명한 지리적 특징을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리왕은 링건촌 1대 조상 저택의 소재지이고, 링건촌의 모든 역사적 가치의 근원이다. 특히 리왕은 링건촌의 ‘소황성(小皇城)’ 전설을 품고 있어, ‘리왕소황성’으로 불린다. 이들이 리왕의 1대 조상 땅의 공간서사 및 소황성 전설에 대해 서술하는 것은 주로 종족, 풍수, 인구, 환관 및 그 배후에 숨겨져 있는 촌락의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 속에 숨겨진 뜻(话外之音)’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4. ‘재구성된(重构的)’ 공간서사에서 ‘꾸며진(杜撰的)’ 역사 이야기로
“『왕씨택거기(王氏宅居记)』는 명나라 시기인 1535년 예부상서 친밍레이(秦鸣雷)가 왕씨를 위해 지은 것이다. 링건촌이 풍수적으로 매우 훌륭하기 때문이다.
실제 링건촌의 인문공간은 전통 촌락사회의 ‘천인합일’의 풍수관념을 뚜렷하게 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촌락의 풍수에 따라 출중한 인재들이 자주 출생해왔다는 등의 ‘小村出大人物’, ‘将军村’ 인식은 현재 촌락 사람들에게도 잘 전해지고 있고, 반복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21세기 오늘날 링건촌은 ‘역사문화명촌’ 및 ‘민국장군촌’ 등을 주제로 향촌문화여행지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전통문화적 자료 등에 기초하여 현대사회에서 재생산된 결과이다. 우리는 오늘날 ‘중국촌락여행’이 개발되는 곳곳에서 ‘꾸며진’ 역사 이야기가 가득함을 발견할 수 있다.
살린스(M. Sahlins)에 따르면, 이러한 이야기는 허구이면서도 동시에 진실성을 갖고 있다. 이는 역사 과정을 거치며 일종의 새로운 ‘역사적 진실’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링건촌의 소황성 이야기 분석을 통해, 우리는 그 ‘진실성’이 ‘허구적 역사’ 및 ‘여행이 이루어지는 현실’과 동일한 구조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5. 결론
이 글에서 필자는 인류학적 ‘이론서사’ 패러다임(范式)을 통해 촌민의 사회심리와 문화실천을 해석하지 않고, 촌민 스스로의 시각으로부터 ‘해석적 패러다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링건촌의 역사민족지 연구를 통해 우리는 촌민들이 어떻게 자신의 ‘민간고사(民间故事)’를 교묘하게 그들의 ‘공간서사’의 틀 속으로 끼워 넣고 있는지를 밝혔다. 즉, 촌민들은 소황성 이야기에 대한 서술 중 정부가 편찬한 역사를 ‘과장하여 꾸미고’ 또 그들 스스로 만든 ‘구술사’를 ‘듣기 좋게 꾸미고’ 있다. 사료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 문화유물 및 문화실천과 관련이 있고, 나아가 ‘역사’적 맥락의 변천과 관계가 있다. 링건촌의 민족지연구의 방향은 분명 인류학 연구 본위의 경향을 보여준다. 즉 동시대의 사회구조 속에서 역사적인 사회존재를 분석하고 있고 구체적인 문화실천 속에서 촌락의식의 변화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류자오후이(刘朝晖) 씀 _ 절강대학교 인류학연구소 교수
김판수 요약·옮김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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