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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3월호
사라진 사람들 _ 김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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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가 맹위를 떨치던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지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또 그러한 실종자들을 찾고, 기억하려는 모든 시도 역시 차단되고 억압되었다. 일부의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잊혀져가던 실종자들은 마침내 독재정권이 붕괴된 이후 다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부활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2018년 말엽 언론에서는 중국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명단을 언급하면서 중국당국을 비난했다. 대중과 가족들의 시선 속에서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 가운데는 판빙빙(范冰冰) 같은 유명 연예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판빙빙은 다시 대중 앞에 등장했으나, 아직 많은 사람들의 행방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 가운데 북경대 출신으로 광동성 선전에서 발생한 佳士事件(Jasic Incident)1)에서 활동했던 마르크스주의 노동운동가이며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유에 신(岳昕)과 중국의 발전이 만들어낸 어둡고 소외된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해왔던 사진작가 루광(盧廣)의 실종은 특별히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유에 신이 ‘노동자 없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이기 때문이고, 루광은 중국의 예술가들이 현실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검열의 실상을 드러내는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북경대학을 2018년에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유에 신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누구도 역사의 물결에 저항할 수 없다. 우리는 외세가 아니며 학생혁명가도 아니며 다른 어떤 정치적 요구를 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은 Jasic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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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출전 : 트위터@yuexinmutian, 아래 줄 중앙이 유에 신



유에 신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2018년 4월, 1990년대 베이징 대학에서 발생했던 문학계 교수의 성추문 사건에 대해 조사결과의 공개를 요구하는 8인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부터이다. 베이징 대학의 미투운동에 불을 붙인 이 사건은 그러나 운동의 확산을 우려한 당국의 개입으로 실질적 성과 없이 마무리되었다. 대학졸업 후 그녀는 선전지역의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같은 해 8월 이미 구류되어있던 Jasic기업의 노동자들과 남경대, 인민대의 학생들과 함께 체포되었으며, 현재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유에 신은 亞洲週刊과의 인터뷰에서 조숙했던 자신의 중학교시절을 회고한 뒤, 성장하면서 노동자, 농민의 생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언론자유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기자들의 대립으로 발생했던 2013년의 <南方週末> 사건은 그녀를 활동가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개혁개방의 선두주자였던 광동지역을 지배하는 논리는 이른바 <광동모델>로 불리는 정치가 왕양(王洋)의 경제성장 제일주의 정책이었다. 성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나 지식인들에게 이 정책은 사회복지와 관련된 문제들을 무시하고 오직 경제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성장의 그늘에서 가혹한 노동환경, 낮은 임금, 탈법적 노동자관리 등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적 삶의 문제가 노동자들의 저항운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자, 많은 학생들은 노동자들의 저항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유에 신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정부의 개입으로 이 운동이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으나, 노동자들과 연대한 활동가들의 행동에 대한 국제적 반향은 확대되었다.


슬로바키아의 철학자 지젝Slavoj Zizek은 영국의 <인디펜던트지>에 기고를 통해서 이러한 중국정부의 행태를 비판했으며, 촘스키Noam Chomsky 등도 중국에서의 학술회의에 참석하기를 거부하는 등 중국정부에 항의했으나 중국정부는 2018년 12월 26일 마오쩌뚱의 생일날, 북경대 마르크스 연구회를 이끌었던 치우 잔쉬안(邱占萱)을 체포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른 실종자, 1961년 저장성에서 태어난 루광은 고향에서 노동자생활을 하던 1980년 처음 카메라를 얻은 후부터 열정적인 사진작가가 되었다. 1993년 이후 칭화대에서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도 했던 그는 당대 중국이 직면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의 일련의 진지한 사진작업은 2004년 세계 보도사진협회(World Press Photo)로부터 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그는 2018년 11월, 지역 사진작가들을 만나기 위해 신장지역을 방문하던 도중 갑자기 사라졌으며, 뒤에야 당국은 그의 부인인 쉬 샤오리(徐小莉)에게 그가 카슈가르(喀拾) 공안에 체포되었음을 확인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아직도 그가 왜 체포되었는지 전혀 통보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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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루광의 사진. 영하성의 오염된 황하 뚝 위의 양치기.

2013년 Prince Claus Award 수상작. 출전 : ICP


다만 신장 위그르 자치구 지역의 치안이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의 그의 어떤 행동이 당국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관측만이 떠돌아다닌다. 사실 <개발과 오염>이라는 그의 사진 주제는 “중국몽”을 말하며 중국의 밝은 미래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당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그는 오염된 물 때문에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거나, 온통 잿빛으로 변한 하늘을 생생하게 기록하거나, 오염된 대지 위에 다시 오염물질을 쏟아내는 공장굴뚝을 포착하는 등, 긴 호흡으로 연작을 발표하는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사진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현재는 미 국무성의 초청으로 뉴욕에서 활동). 그런데 작품 활동에 전념하던 그가 잠깐 방문한 고국에서 가족들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체포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적당한 이유를 들어 기소하거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석방하거나 할 것이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중국의 국가체제 전체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작품을 검열하기 위해 작가를 검열하는” 중국 검열정책에 대한 의혹을 확장시키고 있다.


유에 신이나 루광의 실종은 공안당국에 의한 체포로 확인되기는 하였으나, 어디서 어떤 죄목으로 어떻게 조사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사라지는 사람’들의 존재는 류샤오보의 사망 이후 한동안 연금상태에 있었던 그의 부인의 경우에도 그랬듯이, 결국은 중국 사법제도의 자의성을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효과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장쩌민 이래 법치를 내어 건지 20여년이 지났으나, 국가권력 자체가 스스로 법치의 정신을 훼손하면서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지점이 바로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에게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던 전략적 핵심이었다는 사실을 중국 공산당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태승의 六十五非 9

김태승 _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1) 佳士科技라는 회사에서 발생한 사건. 회사의 영어명이 Jasic Technology Company Ltd. 그래서 Jasic사건으로 불린다. 유에 신의 발언은 그를 지원해 온 참조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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