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최근 루이 알튀세르의 제자 중 하나인 에티엔 발리바르에 따르면, 1917~1968년의 기간에 유럽 공산주의 진영은 두 개의 거대한 노선으로 분할되어 논쟁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계급 대 계급’ 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면 다른 하나는 ‘인민전선(popular front)’ 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 ‘계급 대 계급’ 노선은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두 계급간의 대결은 점차 격화되어 필연적으로 내전으로 치닫게 되고 결국 이 싸움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승리로 귀결된다는 관념에 기초한 노선을 말한다. 물론 현재 자본주의 사회 내에는 두 계급에 정확히 속하지 않는 중간적 계급들이 있지만, 이들은 계급투쟁이 발전함에 따라 점차 분해되어 프롤레타리아트 안으로 흡수될 수밖에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노선의 가장 대표적인 이론가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죄르지 루카치(특히 <역사와 계급의식>)로 그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즉자적 계급에서 자기 자신의 조건에 대해 의식적인 대자적 계급으로 이행함으로써 사회주의를 열어내는 역사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맑스 자신에게서 이런 입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텍스트는 <공산주의자 선언Communist Manifesto>이다).
다른 한편, ‘인민전선’ 노선은 모순들의 복수성과 복잡성에 대해 사유하면서 자본주의 사회 내에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모순만이 아니라 다양한 다른 모순들이 있으며 따라서 이질적인 세력들의 연합으로서의 인민전선을 형성함으로써만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을 유효하게 조직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여기에 대표적인 이론가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안토니오 그람시인데, 특히 그는 저발전된 이태리 남부의 문제(‘서발턴’이라는 유명한 표현이 여기에서 유래한다)를 부각시키면서 모순들의 복잡성과 불균등성을 사유하고자 시도했으며, 자본주의의 경제적 상황이 자동적으로 혁명으로 귀결되지 않는다고 바라봤다. 따라서 그는 혁명적 해법을 다시 사유했으며, 모순들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인민전선의 형태를 특권화 했던 것이다.1)
발리바르에 따르면, 대립하는 이 두 가지 노선 가운데 ‘계급 대 계급’ 노선의 계보에 속하는 후대의 이론가가 이태리의 마리오 트론티라고 볼 수 있다면, ‘인민전선’ 노선의 계보에 속하는 후대의 이론가가 알튀세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그람시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1968년 저서 <맑스를 위하여>에 수록되어 있는 “모순과 과잉결정”이라는 장에서 그람시를 자신의 이론적 선구자로 상찬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의 과잉결정(overdetermination) 개념은 그람시가 봤던 모순들의 복잡성을 사유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그람시의 입장이 모순들의 복잡성을 너무나 강조한 나머지 그 모순들의 접합이 왜 전체적인 차원에서 여전히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람시에게서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어떻게 ‘최종심급’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알튀세르는 그람시를 대신할 수 있는 인민전선의 이론가를 추구하게 되는데, 이때 알튀세르가 찾아낸 것이 바로 또 다른 인민전선의 이론가이자 그러한 노선에 입각하여 혁명을 성공시킨 실천가로서의 마오쩌뚱이다. 알튀세르는 마오의 텍스트들 가운데 유일하게 <모순론>에만 관심을 기울였는데(예를 들어 그는 <실천론>을 서구의 실용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영향 받은 텍스트로 저평가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맑스주의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완전히 혁신된 상이 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마오의 <모순론>을 읽어보면, 마오는 모순의 보편성과 절대성에 대해서만 주목하는 것의 과오를 지적하면서 모순의 특수성과 상대성에 주의를 기울이자고 주장하면서, 혁명과 같은 “거대한 사건은 발전과정에 많은 모순을 포함하고 있”으며, “예를 들어, 중국의 자산계급민주주의혁명 과정에는 중국사회의 피압박계급과 제국주의 사이의 모순, 인민대중과 봉건제도 사이의 모순, 무산계급과 자산계급 사이의 모순, 농민 및 도시의 소자산계급과 자산계급 사이의 모순, 각각의 반동적 지배집단 사이의 모순 등이 있어 그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고 주장한다. 모순들의 복잡성에 대한 이런 인식에 기반하여 그가 개념화하는 것이 바로 기본모순, 주요 모순 및 부차적 모순, 모순의 주요 측면 및 부차적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마오는 이때 기본모순 자체는 하나의 사회구성체 내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지만, 주요 모순은 기본 모순이 아니며, 게다가 주요 모순은 부차적 모순과 구체적인 정세 속에서 자리를 바꾸는 전위(displacement)의 운동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는 “중국과 같은 반식민지국가에서는 주요 모순과 부차적 모순의 관계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제국주의가 이러한 나라에 침략전쟁을 일으켰을 때”, “이때 제국주의와 이러한 나라 사이의 모순이 주요 모순이 되고, 이러한 나라의 내부 각 계급 간의 모든 모순(봉건제도와 인민대중 간의 주요 모순을 포함하여)은 모두 일시적으로 부차적, 종속적인 위치로 떨어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또 다시 상황이 변화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제국주의가 무력을 통한 억압을 꾀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적 수단을 통한 온건한 억압을 행하는 경우, “반식민지국의 지배계급은 제국주의에 투항하고 양자는 동맹을 맺어 인민대중을 공동으로 억압”하는바, (제국주의와 동맹한) 지배계급과 인민대중 간의 내부 모순이 오히려 주요 모순의 위치로 올라서게 된다.
알튀세르는 바로 이런 마오의 <모순론>에서 기본모순이라는 ‘최종심급’의 상과 주요모순 및 부차적 모순의 ‘과잉결정’의 상을 발견했고, 경제주의에 대해 급진적인 비판을 가하면서도 다원주의라는 역편향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찾아냈던 것이다. 알튀세르는 경제적 환원론을 비판하기 위해서 최종심급과 지배적 심급을 구분하고(이 둘을 일치시키면 환원주의에 빠진다), 또한 모든 사회구성체는 지배관계를 갖는 구조(structure à dominance)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사실 마오가 이미 다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오는 “어떠한 발전과정에 많은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 중의 하나는 반드시 지도적,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주요 모순이며 다른 것들은 부차적, 종속적 위치에 놓이게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마오의 논의를 좀더 정밀하게 가공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을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오늘날 여전히 ‘최종심급’이라는 개념을 유지할 수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으며, 그람시와 마오 사이에서 마오를 택한 알튀세르의 선택이 또 다른 곤란들을 가져온 것은 아닌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마오 2】
최원 _ 단국대 철학과
1) 맑스 자신에게는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는 발전을 거듭할수록 복잡해진다는 사유가 담겨 있는 다수의 텍스트가 있는데, 무엇보다 <자본> 1권이 공산주의로의 혁명적 이행을 메시아주의적인 방식으로 논하는 32장 이후에 갑자기 식민지 문제를 논하는 33장을 추가하며 마무리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눈여겨 봐야하며, 또한 중간에 착취의 엔지니어러로서의 공장감독관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자본주의가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시사했다는 점을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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