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나의 첫 중국 방문은 1993년에서야 이루어졌다. 수교 직후의 일이다. 그 해 난징의 난징대학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것이 첫 번째 중국경험이었다. 그 회의에서 얻은 것도 적지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국 사회의 일부라도 알아보자는 욕심으로 틈틈이 난징과 그 일대를 돌아다녔고, 기념으로 고양이를 수놓은 비단자수품을 하나 사게 되었다.
그림 1. 1993년에 난징에서 구입한 자수 고양이 일부.
난징 시내의 어느 상점에 들어가 기념품을 고르는데, 주인이 난징 자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고양이 양면 자수품을 권하였다. 당시 그 상점에서 제일 큰 제품이었고, 비용도 상당하였지만 일단 마음에 쏙 들었다. 고양이의 섬세한 털이나 각기 다른 색으로 표현한 눈동자, 흰털, 토실토실한 몸매가 두드러졌다. 거기에 수염을 포함하여 코, 입, 귀에 옅은 연주황색을 넣고, 목 뒤에 짙은 붉은 색의 리본을 매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색에 변화를 준 것도 좋았다.
이러한 고양이 모습을 양면으로 표현한 것도 흥미로웠다. 양면자수란 앞면과 뒷면의 자수 모양이 똑 같은 것을 말한다. 고양이가 수놓아진 유리판을 돌리면 뒷면에도 앞면과 같은 고양이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자수 액자도 중국풍이서 좋기는 하였으나, 조립식 받침대의 각 부분이 엉성하여 조금의 힘만 가하면 해체되는 바람에 옥의 티였다. 당시의 가격으로 아마 150위안 가까이 주었던 것 같다. 큰돈이었다.
중국방문 첫 기념품이었고, 모양도 좋아서 귀국한 뒤 집에서 대접을 잘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자수품을 덮고 있던 유리에 몇 개의 금이 가 있었다. 며칠 뒤 밝혀진 바로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두 아이가 장난을 치다 깨뜨렸다고 자백하면서 진실이 드러났지만, 한번 파경된 자수품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2006년 1년 동안 상하이에 거주하면서 우리는 깨진 자수품을 수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다녔으나 신통한 대답을 듣지는 못하였다. 또 상하이에 처음 들어올 때, 그것을 가지고 오지 못했기 때문에 수리하고자 하는 마음 뿐, 실행에 옮길 수도 없었다. 다행히 아내 친구가 상하이에 올 기회에 그것을 들고 오면서 본격적으로 수리를 해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수리를 수소문 하던 중, 자수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쩐후(鎭湖)라는 작은 도시를 알게 되었다. 그곳은 자수와 정원으로 유명한 수저우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서남쪽으로 약 한 시간 정도 가는 읍 규모의 작은 도시였다. 바로 옆에 커다란 타이후(太湖)가 있는 이 소도시는 전통적인 농촌 자수업을 산업화시키기 위해 중국 정부가 새로이 개발한 수공업단지였다.
그림 2 . 쩐후에 위치한 자수 작방의 내부 풍경.
이 쩐후에서 우리는 중국 자수의 새로운 양상을 보게 되었다. 곧 상점에 진열된 상품만이 아닌, 만들어지는 과정과 시설, 만드는 사람들까지 만나게 된 것이다. 근대 중국 농촌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큰 소득이었다. 많은 작방(제품을 만드는 작업장)들, 그곳에서 일하는 수녀(수를 놓는 여성)들, 수많은 형태의 생산품을 구경하는 것이야 말로 살아있는 공부나 다름없었다. 수공예품도 여러 등급이 있었고, 이는 곧 수녀들의 등급이기도 하였다. 예술가의 경지에 오른 수녀가 있는 반면, 단순 노동으로서의 수녀도 있었던 것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수녀들 사이에서 수를 놓는 남자도 있었다. 솜씨가 여느 수녀들 못지않았다. 그렇지만 이곳의 남자들 거개가 액자를 만들거나 물건을 포장하거나 운반하거나 하는 일을 하는 것과 견주어 보면 수남이란 부차적인 존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인 농사일에 따른 분업구조와는 다른 특이한 동네였다.
우리는 여러 곳을 탐문하였지만, 깨진 유리를 교환해 주는 작방은 거의 없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던 것이다. 이 자수품은 비단 위에 양면 수를 놓고 난 뒤, 자수품을 중앙에 두고 그 양면에 두 개의 유리를 포개어 액자를 만드는 과정이 매우 세밀한 공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깨진 유리를 떼어내고 다시 유리를 붙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부분 수를 놓은 비단이 상한다고 한다. 제품이 완전히 망가진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경비야 그렇다 쳐도 그런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수리를 해 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 우리의 사연을 들은 어느 작방 여주인이, 힘들지만 해보자라고 응낙을 했다. 그 분도 자신의 제품을 '작품' 으로 만드는 수준 높은 공예사였다. 대신 다시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는 고양이의 집을 몇 센티 정도 줄여야 하며, 예전의 액자도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쨌거나 몇 번을 방문해서 얻은 소득이었으니, 예전과 같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고양이에게 깨진 집을 버리고 새집을 지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비용 역시 새 제품을 사는 것만큼이나 들것 같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대수는 아니었다.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가 새로 수리한 자수품을 보니, 예전의 분위기와 달랐다. 액자가 작아지는 바람에 고양이가 좀 움츠러든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액자도 내 취향과는 달랐던 것이다. 예전의 액자는 갈색 톤에 약간 여유롭고 고풍이 나는 조각이 들어 있었으나, 새 것은 검은 색에 조각조차 화려해서 좀 거북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주인은, “요즘의 액자는 이런 트렌드다. 예전 것은 이미 사라져서 구할 수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더 좋지 않은 상황도 이야기해 주었다. 수공 자수품조차 너무 상업화되어, 마치 공장에서 뽑아낸 듯한 제품들이 시장을 휩쓸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고양이 자수품은 앞으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곁들였다. 쩐후 시가지를 돌아다니면서 고양이 자수품들을 살펴보았지만, 우리 집 고양이만큼 수준 높은 수공예품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림 3. 수리된 난징 자수 고양이
2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자수 산업의 형태나 품질, 생산과정, 상품화 등에서 강남 지역의 자수품은 전통시대 뿐만 아니라 개혁개방 직후와 비교해 보아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요한 점은 명청 시대에 양자강 중하류에서 발전한 농촌지역의 수공업 관행이 인민공화국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림 4. 예술 수준으로 제작된 쩐후의 양면자수품
【현장에서 마주친 관행 16】
유장근 _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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