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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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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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 변경에 관한 이론적인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잠시 시선을 동북으로 돌려 본다. 오늘날 중국 동부와 서부 국경 안팎의 변경은 성격이 다르다. 2017년 11월 21-23일 동안 아무르 강(헤이룽 강, 즉 흑룡강) 너머의 변경 도시 블라고베셴스크(Благовещенск) 숙소에서의 경험은 동-서와 어제-오늘을 비교하며 반추하게 하는 일이었다.
현지 조사 대상 중에는 시베리아의 순록 유목민도 있으므로, 상하이에서 하얼빈을 거쳐 아무르 강을 건너 러시아 아무르 변경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헤이허(黑河)를 거쳐 배로 블라고베셴스크로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상하이의 한국인 지인이 아무르강이 얼었음을 상기해주었다. 그래서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에둘러 블라고베셴스크에 도착한 후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오는 어떤 아파트식 숙소에 짐을 풀었다.
중국의 인민공사식 구식 아파트 구조를 꼭 닮은, 아니 그 원형이었을
블라고베셴스크 변경의 아파트- 숙소에서 내려다 본
우리 방의 인물들을 소개해보자.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러시아인 ‘주인’ 바실리, 다음은 조선족이지만 조선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중국 상인 김金(진, 40세)과 몸집이 극히 푸짐한 홍콩 친구 입(葉, 33세), 그리고 마지막이 중국 과일 장수 훙(洪, 44세)이다.
첫 번째로 놀란 일은 우리들이 공유하는 침대 여덟 개짜리 방에 ‘주인’ 바실리를 제외하면 러시아인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이 방은 김의 개인 창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훙까지 들어온 것으로 보아 이 집은 평소에는 중국 국경무역 상인들이 쉼터인 듯하다. 김은 통관 문제로 인해 장기 투숙 태세를 마친 상태였다. 첫 대화부터 나의 무지가 드러났다.
나- 겨울에는 물건을 어떻게 들여오나? 아무르강이 얼었는데.
김- 강이? 아직 배가 다니는데?
나- 어? 그러면 연중 계속 국경 통과가 가능해?
김- 내 경험으로는 1년에 3일 문을 닫아.
나는 얼음이 얼 시기에 쇄빙선이 동원되어 배 운행을 보장하다가, 급기야 강이 완전히 얼면 차량으로 자유롭게 오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내 시선은 아직 한 없이 지루하게 수속을 기다리고 겨울 동안 열리기를 기다려야 하는 서북 육상 변경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상하이의 한국인이나 중국인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나- 통관이 왜 안 되지?
김- 우리는 전혀 몰라. 그저 의례 그렇게 하는 듯해. 연중 시기는 특정할 수 없고, 한두 번 통관을 시키지 않아. 짧으면 열흘 아주 길면 한 달. 그래도 끝까지 막지는 않아.
아무르주 변경의 창고마다 중국산 소비재가 그득하니, 러시아에서 물량 조절을 하는 걸까? 혹은 중국 상인들을 길들이는 걸까? 어쨌든 양국의 자유로운 교역을 반기는 것은 중국이지 러시아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지금 헤이허와 블라고베셴스크를 연결하는 대교가 시공에 들어갔다. 그러나 러시아는 일을 서두르지 않는다. 김이 말한다.
“통쟝(同江)에 다리를 놓을 때도 그랬지. 반반씩 하기로 했지만 러시아가 좀체 움직이지 않으니 결국 중국이 나서서 완공했어.”
중국은 정부든 상인이든 동북으로 나가고 싶어 하니 다리도 남쪽에서, 배도 남쪽에서 출발한다. 극히 특이한 인물 입은 왜 국경을 넘어 왔을까? 핵심만 이야기하면, 그는 특이한 ‘인종주의자’로서 반드시 백인과만 섹스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14년을 산 홍콩인으로 직업은 영어과외 교사였다.
입- 홍콩 여권으로 러시아에서 두 주 지낼 수 있어. 두 주 지나면 헤이허로 잠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나- 여기 얼마 동안 있을 건데.
입- 반년 동안.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 때까지 내 짝을 찾아야지. 홍콩 여자는 글러 먹었어.
입은 결혼 상대를 찾는다고 하지만 낮에는 계속 잠을 자고 밤이면 김이 소개해준 사창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여자를 대하는 그의 특이한 ‘인종주의’와 비대한 몸집(신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소위 현대 여성들이 좋아할 체격은 아니었다)으로 보건대 어쩌면 그가 변경으로 ‘탈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아시아인과 한 번도 섹스를 하지 않았음을 자랑했다. 물론 러시아에서의 섹스는 예외 없이 돈을 매개로 한 것이었다. 홍콩에 러시아 여성들이 넘치지만 자기 수입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한다. 그는 러시아어를 한 마디도 못했지만, 구글 번역기는 같은 어족인 영어와 러시아어를 감탄스러울 정도로 정확하게 옮겼다. 입은 여전히 러시아인과 결혼할 꿈을 가지고 있다.
둘째 날 훙이 들어왔다. 훙 역시 이 숙소가 처음은 아닌 듯했다. 그는 숙소에 들어오면 팬티만 입고 옷을 다 벗는다. 20년 전 베이징에서 보이는 꽝빵즈(光膀子)를 이국에서 보니 반갑기도 했다(나 또한 더울 때 옷을 벗는 것을 선호한다). 이참에 복장을 이야기하면 김은 윗옷은 입고 아래는 바지만 벗고 내복은 입는다. 입은 반바지만 입고 있다가 거실로 나갈 때는 반팔 옷을 입었다. 훙에게 물었다.
나- 취급 품목이 뭐요?
훙- 과일.
나- 과일? 러시아인들을 정말 과일 좋아하잖소. 사업 잘 되겠어요?
훙- 이제 사업 접어야 할까 봐. 경쟁이 너무 심해.
나- 경쟁? 누구끼리?
훙- 우리, 중국사람.
나- …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물건도 있나요?
훙- 없을 걸, 아마. 20년 동안 못 봤어.
훙은 전통적인 무역상이었다. 물론 러시아 극동지방에 깔린 과일 박스 위에는 러시아어 표기도 없이 온통 한자다. 오이에서 사과는 물론 배추 따위의 채소까지 모두 중국에서 들어온다. 그러니 이곳에서 오직 중국 상인들 끼리 경쟁하는 것이다. 개별 상인들이야 손익이 다르겠지만 중국 국가 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소비재와 식품으로 러시아 극동의 의식주를 틀어쥐고 있는 셈이다. 김은 훙보다 시류를 잘 읽는 편이라 핸드폰을 거쳐 화장품으로 전환했다. 연간 순 수익이 백만 위안(1억7천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만만치 않은 소득이다.
우리의 바실리는 어떤 사람일까? 블라고베셴스크로 들어온 서방인 중 절대 다수가 코자크 군인들이었으니 그 후예일 가능성이 크다. 바실리는 어쩐 내력인지 중국 내 관계(官界) 인물들을 상당히 알고 있다고 했다. 김이 바실리에 대해 말했다. “중국 쪽 관계에 만만찮은 사람들을 꽤 알고 있어. 내가 통역을 담담하고 있지. 바실리도 장사를 해.” 나는 그저 바실리를 인맥이 꽤 있는 사람이구나 짐작만 했다.
젓가락과 포크, 쌀밥과 식빵, 차와 보드카가 있는 변경 숙소의 식탁
저녁이면 ‘아줌마’가 와서 청소를 해준다. 그녀는 거의 완벽한 러시아어를 구사했다. 김은 20년 경험을 통해 러사아어를 터득했지만 그의 러시아어는 일종의 크레올 언어였다. 훙도 마찬가지, 그들은 성수격을 대략 무시한 특유의 러시아어를 구사했다. 내가 그녀를 보고 감탄하며 김에게 말했다.
“러시아어를 정말 잘 하네. 일 해주는 아줌마인가?”
김이 대답했다.
“아줌마? 주인이야.”
나는 저의기 놀라 물었다.
“그럼 바실리는?”
그 아줌마가 주인이고 바실리는 고용인이었다. 바실리는 그날 한꺼번에 몰려온 러시아인들에 받은 돈 계산을 잘 못했다가 ‘아줌마’에게 살짝 혼이 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바실리의 사업은 그다지 번창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바실리는 나와의 작은 약속도 두 번 다 이행하지 못했다). 김과 바실리의 관계까지 파악하기에 시간은 너무 짧았지만 김은 바실리가 필요한 듯했다.
동북에서 중국 정부는 국경 너머의 민간 상인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분명했고, 대개 물건을 사러 들어오는 러시아 상인들을 반긴다.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서북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아무르강 위로 대교가 완성되면 물자 이동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고, 그러면 속도와 관련된 업종들이 들어올 것이다. 중국 당국은 교통로를 통해 러시아 극동의 에너지와 원자재가 들어오기를 원하고 러시아는 중국의 값싼 소비재 없이 극동 지역을 운영하기도 어려우니 서로 손해 볼 일은 아니다. 대체로 살벌한 서북 변경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렇게 국경 너머의 변경의 허술한 모습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서로 부대끼며 정이 들수록 불안함도 따라왔다. 김이나 입이나 홍, 그리고 바실리는 모를 것이다. 1900년 바로 이 도시에는 더 많은 중국 변경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저 시커먼 강물에 몰살당했다는 사실을. 의화단 운동 이후 강을 건너간 중국인들을 축출한다는 구실로 코사크 용병들이 중국인들을 강으로 몰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조리 빠뜨려 죽였다는 사실을. 그 수가 적게는 3천 많게는 5천이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하등 인종 취급을 받던 슬라브인이 황화(黃禍), 즉 황인종에 대한 두려움 아닌 두려움을 체화하여 바로 이곳에서 인종학살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그 후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실제로 ‘황화’를 경험하고 분풀이격으로 혼란에 빠진 중국 국가를 끈질기게 겁탈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변경은 피아가 순식간에 바뀌는 공간이며, 제국(혹은 국가권력)이 알력을 겪을 때 힘이 부딪히는 말단 단층이다. 그러니 양국에 동과 서, 어제와 오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허나 국가는 애초에 외부인의 권고를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훙에게라도 “러시아에서는 그래도 옷을 입으세요.” 한 마디 할 걸, 혹은 어린 입에게 “니가 홍콩 여자를 싫어하듯 홍콩 여자도 너를 싫어할 걸” 핀잔이라도 줄 걸 그랬다. 지나친 불안감은 변경인의 직업병인가보다.
【변경에서 바라본 중국 4】
공원국 _ 작가 / 중국 푸단대 인류학과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