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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12월호
<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 ‘중국 없는 중국학’을 넘어 새로운 비판적 중국연구로 _ 정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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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대중적 공간에서부터 정치권과 학계에 이르기까지 친중(親中)과 반중(反中)이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러한 삼엄한 현실에서 중국은 세계의 일부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이와는 다른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볼 것을 촉구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메이드 인 차이나 저널’(The Made in China Journal)의 공동 편집자들인 이반 프란체스키니와 니콜라스 루베르가 함께 집필한 <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이다. 이들은 서구의 근대를 기준으로 중국에 대한 환상과 환멸을 반복하는 중국 없는 중국학을 비판하면서 중국을 세계의 구성 요소로 인식하는 방법으로서의 중국학을 촉구한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의 입장을 수용하고,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이 지구적 역사, 과정, 현상, 추세와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중국에 미치는 영향과 역으로 중국이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또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의 상호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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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 표지

   

이를 위해 이들은 우선 그간 중국을 타자로 간주해왔던 암묵적인 세 가지 프레임을 재구성하고, 중국을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로 이해하기 위한 대안적 분석틀과 방법론적 접근으로 글로벌 차이나’(Global China)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들이 비판하는 첫 번째 프레임은 통상 예외주의라고 불리는 것으로 중국은 권위주의적 체제이기에 본질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으며, 이 두 체제 사이에는 어떠한 연계점이나 상호 침투, 유사점이 있을 수 없다는 시각이다. 그리고 두 번째 프레임은 산파술적 접근법으로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경제적·사회적 관여로 중국의 자유화와 민주화로의 이행을 견인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마지막으로 그쪽이야말로주의’(whataboutism)라고 불리는 세 번째 프레임은 중국에 대한 모든 비판을 위선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국가의 잘못을 반대 논리로 지적함으로써, 서로의 비판을 상쇄하는 핑계로 삼아 논점을 흐리는 방식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세 가지 프레임은 모두 중국을 외부화되고, 분리되고, 자기충족적인 타자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중국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어렵게 하며, 궁극적으로 서로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만을 생산한다고 비판한다. 중국의 동역학을 이해하려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특수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지만, 중국도 분명히 세계의 일부이기에 세계 속의 중국중국 속의 세계를 모두 조명하는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을 향한 비판도 물질적·담론적 차원에서 중국과 지구적 자본주의의 동역학을 뒷받침하는 공모 관계와 상호 연관성을 설명하는 맥락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론적 전환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기 위해 현재 중국을 둘러싼 논의의 주요 쟁점인 노동권, 디지털 감시 및 사회적 신용 시스템, 신장 위구르족 및 기타 소수민족에 대한 대량 억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및 중국의 해외 투자 전략, 학문의 자유 문제를 둘러싸고 얽혀있는 지구적 관계들을 차례로 검토한다.

   

먼저 중국의 노동문제는 그동안 열악한 노동환경 및 끔찍한 착취를 통해 지구적 차원에서 노동조건을 악화하는 바닥으로의 경주를 부채질했다는 비난에만 초점이 맞춰짐으로써, 중국이 지구적 자본주의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전개된 다양한 국제적 압력과 이에 대한 협상 및 적응의 측면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들은 중국의 노동법과 노동계약법 등의 정책 수립과정에서 중국 당-국가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의 주중 상공회의소나 글로벌 기업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관여하고 개입함으로써 자본축적에 더욱 적합한 노동체제를 형성했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구조적 한계로 인해 무력해진 중국 노동조합(중화전국총공회)과 국제적 지원을 받는 노동 NGO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행동주의에 대한 탄압은 사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발생한 노동조합의 관료화와 집단으로서의 노동자의 힘의 쇠퇴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저자들은 중국의 노동문제를 전적으로 중국만의 현상으로 보는 대신, 다양한 행위 주체들이 관여하는 지역의 동역학과 지구적 추세 간의 연관 관계와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더욱 세심하게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다음으로 중국의 권위주의적 체제 특성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감시와 사회적 신용에 기반한 통제 사회의 출현이라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선도하고 있으며, 점차 서구 사회도 감염시킬 것이라는 상상과 공포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즉 첨단 기술을 활용한 감시와 사회적 신용 시스템의 발전은 중국만의 독특한 사례가 아니라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 거버넌스의 광범위한 확장을 의미하며, ‘신용도와 공식 시장 참여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경제적 관계를 설계하려는 지구적 차원의 디지털 자본주의의 진화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덜 디스토피아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며, 오히려 이러한 기술을 통해 불평등과 예속을 고착화하는 이들 체제의 합리성, 관행, 잠재적 결과를 명확히 밝혀야만 이에 올바로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감시 기술의 이점을 극대화한 신장 위구르의 강제 수용소도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과 관련한 국제 사회의 반테러 담론을 광범위하게 차용하고 있으며, 보다 직접적으로는 서구 자본주의와 물질적 측면에서 공모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구체적 증거들을 통해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중국 신장 수용소는 국가 권력과 감시 기술 관련 민간 및 국유 기업의 제휴와 MIT를 비롯한 해외 유수의 대학 및 국제 학술 기관의 연구 개발 지원이라는 --협력을 통해 종족화-인종화를 강화하고, 착취와 강탈의 대상으로 노동자를 ()배치하려는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결과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감시와 통제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이 초래한 지구적 차원에서의 사회경제적 영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 맞서는 조직화를 시도할 더 나은 조건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들은 최근 중국 대외전략의 핵심인 일대일로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가 해당 국가에서 노동 착취와 환경 파괴, 그리고 막대한 부채를 초래했다는 것에만 집중함으로써, 더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국내적(중국 국내 및 해당 국가 국내 모두) 및 국제적 추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따라서 이들은 중국 당국이 추진하는 위로부터의 글로벌 전략만이 아니라, 복수의 행위자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아래로부터의 글로벌 차이나의 적응, 협상, 협력의 복잡한 과정에도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일상에서 이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글로벌 차이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여기에 실제로 누가 어떤 영향을 어떻게 미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공자학원을 비롯해 막대한 자금지원을 바탕으로 한 중국 정부의 국제 학계에서의 영향력 행사(검열, 담론 독점, 교수 및 연구인력 채용 과정 개입 등)를 신자유주의화된 대학이라는 말기 질환의 또 다른 심각한 증상으로 해석한다. 즉 예산 감축으로 인한 외부 자금과 등록금에 대한 높은 의존,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직원과 교원의 양산, 이윤 지향적 출판사에 대한 학계의 종속, 수많은 순위와 평가에 따른 경쟁과열과 위계화 현상 등 오늘날 학문 지형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대학 모델이 이러한 중국의 영향력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에 대한 단순한 비난보다는 이를 가능하게 만든 근본적 원인과 메커니즘을 올바로 인식하고 이에 저항함으로써, 어떻게 이러한 폐허에서 벗어날 것인지를 모색하는 일이 더욱 시급한 과제로 제기된다.

     

이처럼 이 책의 저자들은 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라는 보다 맥락화된 지구적, 역사적, 관계적 관점에서 중국을 재해석하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 현상의 특수성뿐만 아니라 중국의 지구화를 뒷받침하는 과정, 즉 세계체계 속에서 중국과의 얽힘이 증가하면서 생겨나는 연결점과 유사점, 지속과 진화, 단절 등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들이 제시하는 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는 완결된 이론 체계가 아니며, 대안적 접근법을 적용하여 전개한 구체적 사례분석도 더 많은 쟁점에 대한 논의를 통해 계속 확장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방법론적 시각과 태도는 최근 중국 당국이 보인 행보(노동운동 탄압,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과 구금, 감시와 통제 강화 등)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상황이 광범위한 지구적 추세와 어떻게 내재해 있고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를 함께 사유하는 일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중국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중국 없는 중국학을 넘어, 지구적 생산과 소비 체제에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된 공모자(혹은 어쩌면 수혜자)로서의 책무가 새로운 비판적 중국연구를 열어내는 또 하나의 출발점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규식 _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자료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이반 프란체스키니, 니콜라스 루베르 저/하남석 역, <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 시장주의와 반공주의를 넘어, 비판적 중국 연구의 새로운 시각>, 한겨레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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