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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11월호
‘시진핑 문화사상’과 ‘중국(中國)’으로의 복귀 _ 이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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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준교수님 원고 사진.png




지난 924, 베이징에서 전국세계문화유산공작회의(全國世界文化遺産工作會議)’가 개최되었다. 문화관광부(文化和旅游部) 부부장(副部長)이자 국가문물국(國家文物局) 국장인 리췬(李群)이 참석한 이 회의의 핵심 결론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견지하고 시진핑 문화사상을 관철하여, 중국의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 작업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시진핑이 최고 지도자로 등극한 제18차 당대회 이후의 세계문화유산 관리 성과에 대한 자찬(自讚)이 빠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사실, 중국이 세계문화유산의 등재와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은 국내 언론에서도 종종 보도되기에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 이것이 도대체 시진핑 문화사상과는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세계문화유산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무슨 사상과 상관없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 아닌가? 아니, 도대체 시진핑 문화사상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물론, 역사를 전공하는 필자의 전공 분야가 아니기에 필자가 과문한 탓도 있을 것이다. 모르면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이번 원고를 작성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한번 간단히 조사해보았다.

 

시진핑 문화사상2023107일과 8일에 걸쳐 베이징에서 개최된 전국선전사상문화공작회의(全國宣傳思想文化工作會議)’에서 처음 정식으로 제기되었다. 이제 막 1년이 지난 셈이다. 다만, 문화 방면에 관한 시진핑의 여러 발언과 지시 등이 시진핑 문화사상의 근거로 제시되고는 있지만, ‘신시대(新時代)’의 문화건설에 대한 시진핑의 새로운 관점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한 강조가 주로 이루어질 뿐,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에 대한 간단하고 명료한 설명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시진핑 문화사상의 핵심 요소를 정리한 글을 <光明日報>에서 발견하여, 그 내용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겠다.

 

14기 전인대 상무위원이자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이기도 한 전잔민(甄占民)시진핑 문화사상의 핵심 특징을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의 방법론을 견지하면서, ‘대역사관(大歷史觀)’대문화관(大文化觀)’대시대관(大時代觀)’을 통해 현재 중국의 문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대역사관대문화관대시대관등 세 가지 관점이야말로 시진핑 문화사상의 논리적 근간이라고 보았다.

 

먼저, ‘대역사관이라 함은 중국의 역사를 특정 시기나 국가, 지역 등에 국한되지 않은, 세계와 인류사회의 발전이라는 더 포괄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인식하는 것이다. 더욱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세계의 역사가 그동안 발전해온 맥락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 ‘당사(黨史)’신중국사(新中國史)’개혁개방사사회주의 발전사중화민족 발전사등을 대역사관의 관점에서 인식하는 것, ‘중화문명을 전체 인류 문명의 발전이라는 맥락 안에 위치시키는 것, 이러한 것이 이른바 대역사관의 관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역사관의 관점으로 보면, ‘중화문명5,000년 역사도 중국 특색 사회주의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원리가 중국의 구체적 현실과 중화(中華)의 우수한 전통문화와 결합한 결과가 바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이기 때문이다. 신문화운동 이래, 특히 마오쩌둥 치하에서 극복의 대상이 되었던 전통은 이제 새로운 시대새로운 문화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자원이 되었다.

 

다음으로, ‘대문화관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라 토대상부구조의 상호작용을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경제건설이라는 중심 공작을 추진할 뿐만 아니라, 이와 함께 의식형태공작을 강화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식형태를 나타내는 문화는 국가의 근본이며, 문화적 자신감이야말로 한 국가와 민족의 발전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역량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선진 문화혁명 문화를 발전시키고,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함으로써, 당과 국가, 각 민족 전체의 단결을 위한 사상적 토대를 공고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당과 인민을 창조적인 이론으로 무장시키고, 학문과 예술 방면에서 중국의 자주적인 지식 체계를 구축하며, 현대 문화산업 체계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개혁ㆍ개방 이래로 주로 경제건설을 국가건설의 핵심 과제로 설정해왔다면, 이제는 문화공작도 그만큼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시대관은 시대의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문화의 발전 방향을 옳은 길로 이끈다는 것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해야 하는 상황, ‘100년 이래 미증유의 세계적 변국(變局)’이라는 상황에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화발전의 방향을 제시하고, 시대와 보조를 함께 하며 시대의 앞길을 개척한다는 구상이다. ‘발은 중국에 붙이면서, 눈은 세계를 향하고, 가슴에는 천하를 품는자세로 시대의 중대한 문제들에 대하여 총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는 포부이다. 이제 중국은 국제사회의 선두에서 인류가 직면한 난제들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위의 세 가지 내용을 종합해보자. 다소 무리한 요약일 수는 있겠으나, 필자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시진핑 문화사상의 중심 내용은 결국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인류사회 전체의 세계사적 발전의 맥락에서 인식하고(‘대역사관’), 이를 바탕으로 중국을 다시 세계의 중심(‘中國’)에 위치시킴으로써 미래의 세계적 과제의 해결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대시대관’). 그리고 이러한 과제의 실현을 위하여, 인민의 문화적 정체성과 자신감을 확립함으로써 국가 발전의 정신적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대문화관’). ‘문화의 역량을 중심으로 세계의 중심에서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은 여러 면에서 전통 시대 중화제국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의 계승을 강조하는 모습은 이러한 연상작용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현재 중국에서는 문화 관련 사안에서는 대부분 거의 습관처럼 시진핑 문화사상을 내세우는 모양새다. 서두에서 언급한 전국세계문화유산공작회의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러한 시진핑 문화사상이 과연 얼마나 실질적인 내용과 효과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판단하기 이른 감이 있다. 다만, 실효성을 떠나, 중국공산당이 추구하고 있는 중국적 표준의 정립을 향한 노력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내용의 정당성과 합리성은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새로운 대안적 표준에 대한 모색은 그 자체로 유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주적인 지식 체계’, 즉 독자적 학술이론과 방법론을 찾겠다는 중국의 선언은 한국 학계에서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일당독재 체제라는 중국의 정치 현실을 고려할 때, 중국에서 모색하고 있는 자주적인 지식 체계가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러한 선언 자체가 서구의 이론과 방법론에 경도된 한국의 학계에 던지는 시사점은 크기 때문이다.

 



이원준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부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자료

全国世界文化遗产工作会议召开”, <中国旅游报> 2024.09.27.

中华文化发展的新范式”, <中国社会科学网-中国社会科学报>, 2024.08.14.

甄占民, “习近平文化思想贯穿大历史观大文化观大时代观”, <光明日报>, 2024.05.27.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lrl.kr/hB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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