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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해외 중국학 연구동향
11월호
중국-미얀마 국경지역 조사·연구 성과 소개(8) _ 리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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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20244월호부터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이 중국 윈난대학 인류학과(雲南大學人類學系)와 함께 수행한 중국 남서부 국경지역 공동연구 사업의 연구성과 보고서에 대한 번역·요약을 연재한다. 중국-라오스, 중국-베트남 국경 문제에 관련된 해당 연구사업의 지난 1단계 연구성과는 이미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경 마을에서 본 국가라는 단행본1)으로 출간된 바 있다. 중국-미얀마 국경에 대한 현재 2단계의 연구성과는 중국어판 연구성과 보고서의 형태로 중국학술원에 소장되어 있다. 해당 연구성과를 널리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특히 국경 및 초국경 이동 관련 분야의 연구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성과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여 <관행중국> 웹진을 통해 공개한다. 이번 호는 제4<국경마을의 경계 인식과 경계 관념()>의 후반부 내용을 지난 호에 이어 번역하여 소개할 것이다.

 

 

[내용요약]

 

장 국경마을의 경계 인식 및 관념()

-전통적인 징포족 벙두(崩堵) 통치 하의 경계 개념- (2)

 

3. 러퉈 벙두의 통치 방식

귀족 혈통을 지닌 러퉈씨 부족은 일정한 특권을 누렸는데, 특히 벙두 관내의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그를 자유롭게 배분·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벙두의 수령으로서 러퉈씨 부족은 자신 치하의 백성을 부양해야 할 책임도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책임은 토지 배분을 중심으로 생산 활동을 관리하는 것과 종교 활동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러퉈씨 부족의 수령은 부하를 위임하여 이 두 가지 활동을 조율함으로써 벙두 제도 하의 통치가 이루어졌다.

 

1) 생산 활동의 관리

먼저, 생산 활동의 관리를 살펴보자. 농업 위주의 지역에서 농지는 생산 활동의 기초적인 요소이다. 벙두의 수령은 관할 지역 내 모든 토지의 명목상 소유자이자 관리자로, 관내 모든 토지의 분배, 조정, 관리 책임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자유롭게 관내에서 논을 개간할 수 있었으며, 다만 개간 전에 수령에게 이를 보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했다. 수령의 허가를 받은 후, 이 토지는 주민들이 대대로 상속할 수 있었지만, 매년 수령에게 일정한 선물을 바쳐 존경을 표해야 했다. 이미 토지를 분배받은 주민들은 서로 간에 토지를 저당하거나 교환할 수 있었으나, 벙두의 경계를 넘는 토지거래 행위는 허용되지 않았다.

 

관내 원주민 외에도 외부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도 러퉈씨 부족에 귀의하고 징포족의 성씨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토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이민자들 중에는 적지 않은 한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마이워촌에 거주하는 윤씨 가문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윤씨 가문의 어르신인 YNB는 연구자에게 윤씨 가문이 러퉈씨 부족에 귀의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우리 윤씨 집안은 원래 량허현(梁河縣)에서 온 한족이었는데, 나중에 룽촨으로 이사 왔지. 처음 왔을 때는 산에 살던 징포족만 있었어. 그래서 우리도 나중에 징포족이 됐지. 우리 윤씨 집안의 징포 성씨는 ()’인데, 그건 우리가 징포족에 귀의할 때 러퉈 수령이 내려준 거야.

마이워에 처음 왔을 때는 발 디딜 곳도 없었어. 마을 사람들이 우리한테 그러더라고, ‘여기서 살고 싶으면 러퉈 벙두를 찾아가야 한다고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러퉈 벙두를 찾아갔지. 그때 수령이 자오산이었는데, 우리 가족을 자기 집에서 살게 해주고, 집안일을 도우라고 했어. 1년이 지나니까 우리한테 나가서 집을 짓고 살라고 허락해줬고, 땅도 한 덩어리를 지정해서 주더라고. 몇 년 후에는 우리 집안이 러퉈 집안의 세금, 그러니까 선물이나 지대 같은 걸 걷는 일을 맡게 됐지, 그의 부하가 된 거야. 그 후에는 우리 집안에 성씨를 내려줄 때, 소 한 마리를 잡아 모든 마을 사람들한테 잔치를 벌였어. 자오산이 마을 사람들 앞에서 우리 할아버지한테 징포 칼인 언투(恩突)’랑 화약총을 주더라고.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우리 집안이 러퉈 집안의 세금과 선물을 걷는 일을 하게 됐다는 걸 알게 됐지. 그 이후로 우리 관씨 집안과 러퉈 집안은 뗄 수 없는 사이가 됐어.”

 

러퉈 수령은 관내 주민과 외부에서 귀의한 이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지대를 징수하는 것 외에도 관할 지역을 떠난 자나 후손이 없는 농가의 토지를 회수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명목상 벙두서앙(崩堵舍昂) 내의 모든 토지가 수령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회수된 토지에 작물이 심겨 있다면, 그 작물 역시 자연스럽게 수령의 소유가 되었다. 수령은 회수한 토지를 스스로 경작할 수도 있고, 다시 다른 주민들에게 분배할 수도 있었다.

 

또한, 외부 이민자들이 윤씨 가문처럼 러퉈씨 가문에 귀의하여 가신으로 일한 경험이 없다면, 토지를 분배받은 후 일반적인 선물 외에도 추가로 보답 성격의 대가를 지급해야 했는데, 이를 회례(回禮)’라고 불렀다. 러퉈 수령은 토지를 분배한 후, 이 이민자들에게 훗날 술통과 술잔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추가로 납부해야 할 회례를 잊지 말라는 의미였다.

 

이와 더불어, 다른 벙두 관내의 산림에서 나무를 벌목하려면 해당 벙두 수령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수령에게 선물을 바쳐야만 비로소 벌목이 가능했다.

 

러퉈 수령은 토지 분배와 지대 징수 등을 통해 농업 생산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것 외에도 직접적으로 농업 생산에 개입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러퉈 수령은 정기적으로 사람을 보내 잡세를 징수했으며, 이를 현지에서는 관조(官租)’라고 불렀다. 주로 곡물, 기름작물, 콩류 등의 현물로 납부되었다. 또한, 원유두와 방사오두에서는 대규모로 아편을 재배하였기 때문에, 그 수령은 아편 재배 농가로부터도 현물세 형태로 세금을 징수했으며, 수령에게 납부된 아편은 관연(官煙)’이라 불렸다.

 

농업 외에도 수렵은 징포족 주민들의 전통적인 생산 방식 중 하나였다. 수렵 과정에서 말이나 사슴· 멧돼지 같은 대형 동물을 잡았을 경우, 러퉈 수령에게 뒷다리 하나를 바쳐 식용으로 제공해야 했다.

 

생산 활동의 관리에서 벙두 수령은 여러 특권을 누리는 동시에, 가난한 주민들을 돕는 의무도 이행해야 했다. 실제 상황에서는 이러한 의무가 벙두 가문의 세력이 약화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예를 들어, YNB가 서술한 원유두의 러퉈 가문이 다른 가문에게 억압당한 이야기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 예전에는 집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큰일을 치를 때 꼭 소를 잡았지. 그런데 소가 없는 가난한 집은 벙두 집안에 소를 빌리러 가곤 했어. 벙두는 항상 소를 키우고 있기도 하고, 또 소를 안 빌려주면 그게 무슨 수령이겠나? 빌려주기 싫어도 빌려줘야 했지. 예전에 원유두 쪽에 공()씨 집안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었는데, 공씨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나서 공씨 집안이 원유두의 수령 집안에 소를 빌리러 갔어. 근데 그 수령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빌려줄 소가 없더라고. 그래서 수령이 오히려 공씨 집안에서 소를 빌리고, 다시 공씨 집안에 그 소를 빌려줬지. 그러자 공씨 집안이 수령에게 계약을 요구했어. 매년 3~4월 아편을 수확할 때 나오는 관연으로 솟값을 갚으라고 말이야. 그런데 아편 수확철이 되어도 원유두 수령은 여전히 솟값을 갚지 못했어. 그러자 공씨 집안 사람들이 수령이라는 사람이 소 한 마리도 못 갚으면서 무슨 수령이냐고 협박을 했지. 수령은 어쩔 수 없이 자기네 제일 좋은 논을 공씨 집안에 넘겨줬고, 그 덕에 공씨 집안은 땅도 더 넓어지고 세력도 훨씬 커졌어.”

 

2종교 활동의 관리

귀신 신앙은 징포족의 전통적인 종교 신앙이었다. 징포족은 귀신에 대해 기원과 공양의 정성 여부가 농업 생산의 수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다. 벙두 정권의 수령은 동시에 신권도 장악하여 징포족 주민들이 귀신에게 정성을 다하도록 관리했다.

 

벙두 관내 마을들은 봄철 파종 등 중요한 농사 단계나 생활이 순조롭지 않은 경우, 제사를 지낼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제사를 위해 특별한 장소가 준비되었는데, 징포족들은 이 장소를 룽상(龍尚)’이라 부르고, 한족은 관묘(官廟)’라 불렀다. 이것은 한족의 개념 속의 사당()’과는 전혀 다르다. 제사 의례는 징포어로 가오룽상(搞龍尚)’고 하며, 전문적인 성직자가 이를 주관했다. 성직자는 징포어로 둥싸(懂薩)’라고 불렸다.

 

자오산두의 러퉈 가문 소속 둥싸는 멍가오(蒙高)’라는 씨족이 담당하며 세습으로 계승되었고, 동시에 러퉈 수령의 부관 역할을 맡았다. 멍가오 씨족은 러퉈 가문에 봉건적 종속 관계에 있었으나, 귀족 신분을 얻은 성씨였다. 현지 사람들은 러퉈 가문이 있는 곳에 멍가오 가문도 있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이는 이 봉건적 종속 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룽상(龍尚) 의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러퉈 수령의 허가가 필요했고, 수령은 멍가오 가문의 둥싸를 보내 이를 수행하게 했다. 과거 자오산두의 룽상 의식 장소는 광잉마을의 옛터에 있었다. 그곳에는 많은 나무 말뚝이 땅에 박혀 있었고, 주민들은 이 말뚝 근처에서 용변을 보거나 다른 불경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이 금지됐다. 매년 봄철 파종 전에, 밭에 아직 농작물이 심기지 않았을 때, 러퉈 수령은 멍가오 가문의 둥싸를 포함한 지위가 높은 둥싸들을 보내 제사를 주관하게 했다. 제사의 대상은 천신과 산신이었다.

 

2. 벙두 간의 관계

벙두 간에는 상호 독립적인 관계가 유지되었지만, 벙두의 세력 범위가 넓고 좁은 차이가 있으며, 그 경제 상황 또한 강약이 있었다. 따라서 백성들 간에 이익 분쟁이 발생할 때, 종종 더 큰 세력을 가진 벙두 수령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럴 때, 그들을 통치하는 세력이 작은 벙두 수령은 대체로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세력이 큰 벙두 수령이 다른 벙두 치하의 백성들이 보낸 소의 다리 등 선물을 받아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실질적으로 다른 벙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였다. 이러한 수령들은 종종 주변 여러 벙두의 연합 공격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징포족 벙두 사이에서는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강권이 나타나기 어려웠다.

 

벙두 정권은 이른바 관가(官家, 벙두 수령의 가문)’에 대한 봉건적 종속 관계로 유지되었다. 만약 한 산 위에 거주하는 인구가 일정 한도를 초과하면, 일부 사람들은 다른 산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산 위에 이미 다른 사람이 거주하고 있을 수 있다. 만약 거주자가 다른 민족, 예를 들어 한족이나 리쑤족이라면, 관가는 그들을 강제로 징포족 성씨로 바꾸게 하고, 징포족으로 귀화시켜, 윤씨 가문을 대하던 방식과 유사하게 수령 가문과의 봉건적 종속 관계로 포섭하였다. 만약 이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그들은 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추방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원래 그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다른 벙두 치하의 징포족이라면, 그들을 새로운 수령에게 귀의시키는 것은 두 벙두 간의 갈등을 초래할 원인이 되었다. YNB에 따르면, 벙두 제도에는 자신이 통치하지 않는 곳은 간섭해서는 안 되며, 한 성씨가 관리하는 지역은 다른 성씨가 관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이 원칙에 따라, 벙두 수령은 이미 다른 벙두 수령에게 귀의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유혹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을 어기는 경우는 여전히 종종 발생했다.

 

어떤 사람이라도 원래 귀의한 수령을 배신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했다. 이는 주로 벙두 간의 세력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누구나 더 강력하고 재력이 풍부한 벙두에 귀의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고, 수령의 재산을 분배받을 때 더 큰 이익을 얻고자 한다. 또한, 일부 벙두 수령이 백성들을 가혹하게 대하거나 재정적인 여유가 없어 충분한 분배를 하지 못할 경우, 백성들의 배신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벙두 제도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벙두 간의 대규모 갈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만약 수령의 부하 귀족이 다른 수령에게 귀의한다면, 이는 벙두 간의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러한 귀족들은 YNB의 선조처럼 일정한 징세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YNB에 따르면, 과거 한 벙두 수령의 부하가 다른 벙두 수령과 몰래 결탁하여 징수한 물품을 은밀히 옮긴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 사건은 두 벙두 간의 전쟁을 유발했다고 한다.

 

룽안촌 주변의 세 러퉈씨 벙두 내에서도 귀의를 변경하는 현상이 발생하지만, 이것이 세 벙두 간의 갈등까지 초래하지는 않는다. 그 주된 이유는 세 벙두 수령 모두 러퉈 씨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력 범위와 경제력이 약한 원유두는 종종 다른 성씨의 괴롭힘을 받았고, 이때 두 세력이 큰 벙두가 나서서 도움을 주곤 했다. 앞서 언급된 자오산두가 원유두에게 소를 선물한 이야기는 세 벙두 간의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돕는 관계를 잘 보여주는 증거다. 실제로 YNB의 서술에 따르면, 홍수 피해 발생 후 자오산두가 원유두에게 소를 선물했을 뿐만 아니라, 방사오두 또한 다섯 석()의 곡식과 몇 바구니의 콩을 보내 원유두가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왔다.

 

세 벙두는 외부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도 단결하여 협력하곤 했다. 예를 들어, 자오산두는 강역이 넓고, 산기슭 평원 지역의 생산 여건이 좋았기 때문에 주변 다른 벙두의 질투를 자주 받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과의 적대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적대 관계에 대응했을 때 세 벙두가 항상 협력하고 있었다. YNB가 전했던 자신의 조상이 서쪽의 무리씨 벙두에게 잡혀간 후, 세 벙두가 협력하여 구출한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협력 관계를 잘 보여준다.

 

방사오두의 서쪽 끝에 난싼하(南傘河)’라는 강이 있어. 어느 날 자오산 수하에 있던 ()’이 난싼하 서쪽에서 잡혀갔어. 자오산두랑 원유두 수령들은 너무 다급해서 새벽부터 방사오두에 찾아가서 의논을 했어. 난싼하 서쪽은 다른 벙두들 지역인데, 그 중에 웨(), 파이(), 그리고 무란(木然)씨의 벙두가 있었지. 방사오두에서 알아보니까 자오산을 시기하던 한 벙두 수령이 자오산을 제거하려고 했는데, 그 음모가 관에게 알게 되어서 관을 납치한 거였더라고. 결국, 세 집안이 50명 넘는 사람을 모아 구리로 만든 총포, 긴 칼, 활과 화살을 챙겨서 관을 찾으러 갔지. 그 이튿날 밤에 마침내 관을 되찾아 왔어.”

 

이 이야기를 통해 세 벙두가 혈연 유대에 기반하여, 긴밀한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로 결속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위의 서술에서 알 수 있듯, 벙두 간의 전쟁은 일종의 무력 충돌이나 무력 시위에 가까웠으며, 주로 상대방에게 내부 결속을 과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적대하는 양측은 종종 암살이나 납치 같은 음모를 통해 상대 벙두의 수령이나 수령의 부하인 중요한 귀족을 제거하여 상대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수법을 사용했다.

 

세 벙두 간의 긴밀한 관계로 인해 주민들의 상호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웠고, 벙두 간에는 공동 농업 생산의 관행이 있었다. 그중 우거룽(吾戈攏)’은 농번기(파종, 모내기, 수확, 탈곡 등)에 시행되는 공동 노동 관행이었다. 이 관행은 이후의 품앗이(換工)와 유사하지만, 노동에 대한 보수는 계산되지 않으며, 도움을 받는 주인은 대접할 술과 음식을 준비하기만 하면 된다. 농번기의 공동 노동뿐만 아니라 결혼식, 장례식, 집을 짓는 일 등에서도 우거룽의 상호 협조 방식이 적용되었다. 세 벙두 내에서 이러한 관행은 일정한 강제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참여하지 않는 가구는 도덕적 비난을 받았다. 또한, 수령은 치하의 백성들에게 우거룽을 통해 특정 마을을 돕도록 요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방사오두 산하의 한 마을 인구가 적었을 때, 원유두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해당 마을을 돕도록 독려했다. 이후 원유두 산하의 마을이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방사오두의 그 마을이 자발적으로 돕기도 했다.

 

농한기에는 세 벙두가 함께 주최하는 오락 활동과 축제도 있었다. 그중 규모가 큰 행사는 징포족의 전통 축제인 마나우(Manau, 目瑙縱歌)’였다. 마나우를 주최하는 벙두의 수령은 각 농가에 초대장을 보내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 함께 모이도록 초대했다. 또한, 수령은 다른 두 벙두의 수령과 백성들도 초대하여 함께 축제에 참여하도록 했다. 초대를 받은 두 벙두의 수령도 소의 다리, , 음식 등을 준비해 축제에 참석했다.



리페이 _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참고자료

1) 왕위에핑·장정아·안치영·녜빈 지음, 2022, 『국경 마을에서 본 국가』, 인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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