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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8월호
네온사인이 사라진 홍콩의 밤거리 _ 정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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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마다 도시를 대표하는 모습이 있다. 서울은 광화문 광장이나 명동 거리, 남산 타워 등을 떠올릴 것이고, 뉴욕이라면 자유의 여신상이나 타임스퀘어, 센트럴 파크 등을 떠올릴 것이다. 홍콩은 빽빽한 건물 위를 스치듯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카이탁 공항(啓德機場)의 비행기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카이탁 공항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홍콩의 대표 이미지는 침사추이(尖沙咀)에서 바라보는 홍콩섬의 야경, 몽콕(旺角)의 화려한 밤거리 등일 것이다. 특히 어두컴컴한 밤거리에 마치 자수를 놓듯이 화려하게 장식한 네온사인 간판은 홍콩이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이미지이다. 왕가위(王家衛) 감독의 영화 속에서 현란하게 빛나는 홍콩의 밤거리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홍콩에 다녀온 이들에게는 잊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이다. 이렇게 홍콩을 대표하는 경관 가운데 하나인 네온사인 간판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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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네온사인 간판 철거 전후의 홍콩 밤거리 

   

이렇게 갑자기 홍콩에서 네온사인 간판이 사라지게 된 이유는 2010년 옥우서(屋宇署)에서 실시한 강력한 간판 규제정책 때문이다. 일단 규격 위반으로 신고된 간판은 철거하거나 보수하여야 하는데, 그 절차가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며, 5년마다 검증을 받아야만 한다. 때문에 많은 간판들이 철거되고 LED간판으로 교체됐다. 간판에 대한 이러한 규제는 표면적으로는 안전을 내세우고 있다. 구체적인 간판 규제 내용을 살펴보면 특히 소형 돌출형 간판에 대한 규제가 두드러진다.

    

옥우서의 정의에 따르면, ‘돌출형 간판이란 건물 외벽에 고정하는 간판과 외벽에서 600이상 돌출된 간판을 말한다. 옥우서에서는 돌출형 간판의 설치에 대해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외벽에서 4.2m 이상 돌출되지 않아야 하며, 간판과 인도와의 수직 거리는 최소 3.5m가 되도록 하며, 차도와의 수직 거리는 5.8m(트램 궤도의 경우 최소 7m)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건축물조례(建築物條例)」에 따르면 수직 설치 간판은 건축 공정에 해당하므로 반드시 옥우서의 사업계획 승인과 동의를 얻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2010년에 「소형공정관리감독제도(小型工程監管制度)」를 실시했는데, 위험도가 낮거나 복잡하지 않은 간판은 수직으로 설치하거나 이동 혹은 철거하는 작업의 경우 완료 후 14일 이내에 작업 완료를 통지하고 사진을 제출하면 된다. 외벽에서 150mm 이내, 지상에서 3m 이내의 간판은 지정 면제 작업(指定豁免工程)’에 해당하여 사전에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고 전문 작업자가 작업하지 않아도 된다.

     

행정 명령을 어길 경우, 최대 징역 1년에 벌금 HKD $200,000에 해당한다. 위반 사항이 계속되면 매일 HKD $20,000의 벌금이 부과된다. 20139월 이전에 제작된 작은 규모의 위험도가 낮은 간판에 대해서는 자발적인 간판검증계획(招牌檢核計劃)을 실시하여 소유자가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안전을 검증받게 하며, 검사를 받은 간판은 5년간 유지할 수 있다. 설치 전에 승인을 받지 않은 간판은 검사 후에도 여전히 위법에 해당하는데, 위험하지만 않으면 옥우서에서 일방적으로 철거하지는 않으나 소유자가 5년 후에 반드시 재검을 받거나 철거해야 한다. 옥우서는 위법 간판에 대해 신고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홍콩의 모든 간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https://www.map.gov.hk/gm/map/)를 구축해서 해당 건물, 간판의 크기, 검사 여부, 검증 날짜, 실제 사진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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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 건물 외벽 간판 수직 설치 규정                          사진3. 돌출형 간판 위치 규정

             

네온가스로 채워진 유리관을 구부리고 전기를 통하게 하여 빛을 내는 네온사인은 1920년대에 상업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본토에서 난민이 몰려들어 50년대에 홍콩 인구가 600,000에서 2,100,000으로 폭증했다. 이와 함께 홍콩의 경제가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네온사인은 광고 표지판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완차이(灣仔)와 침사추이(尖沙咀), 센트럴(中環)과 야우마테이(油麻地) 등의 거리는 네온사인 간판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70년대의 오일쇼크에도 사라지지 않고 80년대와 90년대에는 더욱 번성하여 수많은 공장과 기술자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LED 간판의 등장으로 네온사인은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어 오늘날에는 10여 곳의 가게와 20여 명의 기술자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80년대에는 전 세계에서 말보로 담배의 가장 큰 네온사인 간판이 홍콩에 있었다. 영어 · 아랍어 · 일본어 등으로 장식된 수많은 네온사인 간판이 있었으나 그중 대다수는 중국 본토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번체자 간판이었다.2)

    

홍콩 옥우서의 돌출형 간판에 대한 규제는 사전 승인을 받은 것, 위험도가 낮은 소형, ‘지정 면제 사업 대상간판의 세 종류만 존치할 수 있도록 했다. 2014년부터 주기적으로 간판을 철거하고, 철거 명령을 내리는 한편 2013년의 자체 검증 계획을 병행 실시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까지 5년간 약 5,103건의 철거 명령이 내려졌고, 16,711개의 간판이 철거되거나 수리됐다.3)

    

현재 홍콩에 남아 있는 네온사인 간판의 수량을 파악할 수 있는 공식 통계는 없다. 2011년 통계가 마지막인데 당시에는 무려 12만 개의 간판이 있었다. 홍콩의 상징적인 네온사인 간판을 수거해 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테트라 네온 익스체인지(Tetra Neon Exchange)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네온사인 간판은 약 400개 정도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마저도 빠르게 사라지는 분위기다. 이 단체는 2023년 들어서만 10개의 네온사인 간판을 수거했다. 또 비영리단체가 약 60개의 네온사인 간판을 기증받아 신계(新界) 윈롱(元朗)의 시골 공터에 보관하며 전시회를 열 날을 기다리고 있다.4)

    

네온사인 간판 철거에 대해 홍콩인들은 아쉬움과 함께 보존하고 기념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먼저 민간 비영리 단체인 M+2013년 일부 철거된 네온사인 간판 가운데 다섯 점을 수집하여 그 가운데 두 점을 M+의 복원보관센터에서 전시했다. 2014년 야간 버스 투어, 워크샵 등을 개최하고 온라인 전시회인 neonsigns.hk(探索霓虹)을 개설하여 전시하고 있다. 2017년에 Kevin Mak King-huai(麥憬淮)Ken Fung Tatwai(馮達煒)가 간판 보존 단체인 Streetsignhk를 설립하여 약 20개의 네온사인 간판을 수집했다. 홍콩 정부와 홍콩 무형문화재(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fice)은 시의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으며, 네온사인의 제조 기술을 추가 프로젝트로 고려하고 있다.5)

 

저녁 무렵 어슴푸레하게 황혼이 질 즈음에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여 어두운 밤거리를 밝히는 네온사인 간판은 도시민들에게 도시 공간 속에 있다는 안전감을 준다. 개인의 일상 경험을 구성하는 도시 공간 속 표지 가운데 간판이 만들어내는 거리 풍경은 도시와 개인을 감정적 · 심리적으로 끈끈하게 이어주는 가장 구체적인 이미지이며 귀속감의 근원이다.

   

특히 홍콩의 도시 이미지는 사이버펑크(Cyberpunk)를 주제로 하는 수많은 미디어에 의해 차용됐다. 대표적으로 「블레이드러너」와 같은 미래 세계를 그린 영화에서 보이는 도시 이미지는 다름 아닌 홍콩의 밤거리 모습이었다. 온통 네온사인 광고판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건물들, 그 거리의 아래쪽, 청킹맨션(Chungking Mansions)을 연상시키는 복잡한 주거지, 각종 인종들이 뒤섞여 국적과 인종을 구분하기 어렵고 심지어 인간과 기계조차 구분할 수 없는 세상. 사이버펑크의 모델 도시라고 할 수 있는 홍콩을 상징하는 것은 바로 네온사인으로 치장된 밤거리일 것이다. 미래사회의 황홀경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홍콩의 밤이었다. 번체자의 복잡한 한자 필획으로 구성된 네온사인 간판이 구축하였던 홍콩 밤거리 풍경은 홍콩이라는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적 상징물이자, 그들의 역사적 기억의 표지였을 것이다. 홍콩만의 독특한 경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홍콩인의 정체성은 도시 경관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재편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혼종적 문화의 구체적인 표상이 사라진 2024년의 홍콩은 그 장소를 상실한 장소가 되어 중국의 흔한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정찬학 _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1) https://www.bd.gov.hk/tc/building-works/signboards/signboard-control-system/index.html
2) https://www.nytimes.com/2023/12/09/world/asia/hong-kong-neon-signs.html

3) https://www.chinadaily.com.cn/a/202312/15/WS657b8f1fa31040ac301a7dd5.html

4)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3/apr/08/fading-glory-the-fight-to-save-hong-kongs-beloved-neon-signs

5) https://www.chinadaily.com.cn/a/202312/15/WS657b8f1fa31040ac301a7dd5.html


* 참고자료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 『장소와 장소상실(Place and Placelessness)』김덕현·김현주·심승희 역논형, 2005.

최병두, 「역사적 경관의 복원과 장소 정체성의 재구성」, 『공간과 사회』 22권 4, 2012.

郭斯恆, 『霓虹黯色-香港街道視覺文化記錄三聯書店(香港), 2018.

https://www.mplus.org.hk/en/exhibitions/conserving-neon-culture/

https://www.neonsigns.hk/

https://www.tetraneonex.com/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3/apr/08/fading-glory-the-fight-to-save-hong-kongs-beloved-neon-signs

사진 2, 사진3. https://www.bd.gov.hk/tc/building-works/minor-works/minor-works-items/index_mwcs_items_c6b.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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