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바다가 있는 곳에 화인이 있고, 화인이 가는 곳에 마조가 있다(有海水處有華人, 華人到處有媽祖)”
베트남 호찌민시 제5군(이전 쩌런)은 한때 세계 최대의 차이나타운이 있던 곳으로 유명했다. 베트남 통일 직전 쩌런에는 70여만 명의 화인이 거주하던 곳이었지만, 베트남의 사회주의화와 중월분쟁 등으로 인해 다수의 화인이 해외로 탈출하면서 이전과 같은 모습은 퇴색했다. 하지만, 여러 곳의 화려한 화인회관(華人會館)은 예전의 영화로운 차이나타운의 모습을 대변해 준다.
사진1-1. 베트남 호찌민시 수성회관의 천후묘(天后廟) 사진1-2. 수성회관 입구
화인회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회관 건축물 자체로 베트남의 국보로 지정된 곳이 바로 수성회관(穗城會館, Hội Quán Tuệ Thành)이다. 수성회관은 쩌런으로 이주한 광동성 출신 화인의 동향회관이다. 18세기 초반 세워진 수성회관의 입구는 조금 초라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원추형의 향이 천장 여기저기에 매달려 뿜어내는 연기는 회관을 ‘천상의 세계’로 만든다. 회관 안에는 여러 신상이 모셔져 있었으며 그 앞에서 두 손 모다 기도하는 신자나 여행객이 많았다. 특히 회관의 정중앙에 모셔진 ‘천후성모(天后聖母)’의 제단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광동성 출신 화인의 동향회관이면 친목을 도모하는 사무실이나 회의실 공간 정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전혀 달랐다. 사실 중국 국내뿐 아니라 해외 화인의 동향회관에는 거의 다 민간신앙의 신들을 모신 묘(廟)가 설치되어 있다. 묘는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생활하는 화인의 고달픔을 위로하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동향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거나 고향의 전통문화를 보존·계승하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수성회관이 모시는 신은 ‘천후성모’만이 아니다. 관우, 토지신, 관음 등 다양하다. 화인회관은 여러 신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러 신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거나 권위가 있는 주신(主神)이 존재한다. 수성회관의 주신은 마조로 불리는 천후성모이다. 수성회관은 동향회관의 명칭이지만 묘의 명칭은 주신의 이름을 따서 천후묘(天后廟)혹은 마조묘라 부른다. 쩌런의 다른 동향회관도 마찬가지다. 해남도 출신 동향회관인 경부회관(瓊府會館, Hội Quán Quỳnh Phủ), 복건성 복주 출신 동향회관인 삼산회관(三山會館, Hội Quán Tam Sơn), 호찌민시 제1군 소재 광동성 출신 화인의 동향회관인 광조회관(広肇會館, Hội Quán Quảng Triệu)은 모두 마조를 주신으로 모시는 천후묘의 별칭을 가지고 있다. 쩌런 지역 이외에도 화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거의 천후묘가 존재한다. 같은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다.
사진2. 호찌민시 광조회관의 천후묘
동북아시아에도 천후묘가 발견된다. 일본 3대 차이나타운의 하나인 ‘나가사키신치중화가’는 19세기 개항 이후 새로 형성된 뉴 차이나타운이다. 그 이전에는 17세기 말 도쿠가와 막부가 중국과 일본 간 무역을 중계하는 화인을 위해 ‘토진야시키(唐人屋敷)’를 개설해 거주하도록 했는데 올드 차이나타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이곳에 거주하는 화인은 복건성 출신이 가장 많았고 절강성 출신도 적지 않았다.
사진3. 나가사키 복건회관 내 천후당
복건회관이 1868년 ‘팔민회관(八閩會館)’으로 정식 발족했는데 회관 내에 마조를 모신 천후당(天后堂)이 설치되었다. 절강성 출신 화인은 복건회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별도의 천후당을 설치해 신앙했다. 요코하마중화가는 2006년 요코하마 개항 150주년을 맞이해 새로 호화로운 대형의 마조묘(媽祖廟)를 창건했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산동동향회관에도 규모는 작지만 마조묘가 있었으며, 의선당과 거선당 내에 마조의 신상이 모셔져 있다.
사진4. 요코하마중화가의 마조묘
그런데 왜 화인은 마조묘를 만들어 마조를 모시는 것일까? 마조는 송대 복건성 미주도(湄洲島)에 실존했던 무녀(巫女) 임묵(林默, 960년〜987년)을 가리킨다. 임묵은 생전과 사후에 여러 이적(異蹟)을 보여 신으로 받들어지게 되는데, 중국 각 왕조는 마조를 부인, 비, 천비, 천후까지 여신으로서 가장 높은 지위의 봉호를 하사했다. 그리고 마조는 국가 사전(祀典) 제도에 편입되어 성대한 제사가 치러졌다.
마조는 복건성 지역 민간신앙의 하나로 시작되었지만, 복건성 출신이 중국 각지로 이주하면서 마조묘도 잇따라 세워졌다. 홍콩, 마카오, 대만에도 세워졌으며 해외 화인이 거주하는 곳에도 마조묘가 들어서 동아시아 전체로 퍼져나갔다. 화인은 바다를 건너 동남아시아와 일본 등지로 이주해 해상교역을 담당한 관계로 해상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해상안전을 지켜주는 마조는 화인에게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중국정부는 2006년 6월 마조신앙과 문화의 표출인 ‘마조제전(媽祖祭典)’을 중국의 ‘국가비물질문화유산’의 목록에 편입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2009년에 마조 신앙과 풍습은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중국정부가 마조 신앙과 풍습을 ‘중국적 표준’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중국 국내와 해외 화인을 연결하는 주요한 문화유산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화교·화인의 ‘세계’ 5】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박계화, 「명청대 마조(媽祖) 신앙의 표준화에 대한 고찰」, 『세계역사와 문화연구』제71집, pp.59-96.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은 모두 필자가 직접 촬영하여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