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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7월호
왜 중국의 농민들은 도시의 사회보장 자격을 '구매'해야만 했을까? _ 김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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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 충칭시에 거주하는 수십여 명의 농민들이 연금 수령 자격을 박탈당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재산과 소득이 기준보다 크게 늘어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금지급이 중단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렇다면 중국의 농민들은 어떠한 이유로 연급 수급 자격을 박탈당한 것일까? 남방주말(南方週末)의 보도에 따르면 충칭시의 몇몇 농민들은 더 많은 금액을 주는 도시 노동자 연금에 가입하기 위해 도시에 있는 공장과 허위로 노동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연금 자격을 박탈당했다.1)

       

도시 공장과의 허위 노동관계로 적발된 농민들의 대부분은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거나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온 농민들로, 이들은 13만 위안(한화 약 2,460만 원)부터 많게는 20만 위안(한화 약 3,780만 원)까지의 돈을 지불하고 브로커를 통해 도시 노동자 연금에 가입했다. 가난한 농민들에게 13~20만 위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몇몇 농민들은 주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기까지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다만 퇴직 이후(중국의 퇴직 연령은 남성은 60, 여성은 55세로 매우 이르다.) 수십 년 동안 꼬박꼬박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국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이들은 농민들이 도시 노동자의 연금에 가입하기 위해 큰 돈을 지불하려 했다는 점에 대해 큰 의문을 가질 것이다.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연금은 모든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충칭시의 농민들은 돈을 주고 도시의 사회보장 자격을 구매하려 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의 복잡한 연금제도를 알아야 한다.

    

- 중국의 연금제도

      

중국의 연금제도는 공적연금, 기업연금, 개인연금으로 구성된 '세 기둥 연금 체계'를 따른다. 첫 번째 기둥인 공적연금은 국가가 관리하는 연금으로 한국의 국민연금과 비슷하다. 현재 공적 연금에 가입되어 있는 중국인들의 수는 약 105천만 명에 달하며 사실상 대부분의 국민들을 포괄하고 있다. 두 번째 기둥인 기업연금은 2004년에 시작되었으며 기업의 재량에 따라 자율적으로 가입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의 약 18000만 개의 사업체 중 14만 개 기업이 기업연금에 참여하고 있으며, 기업연금에 가입되어 있는 이들의 수는 2024년 기준 3,144만명이다.2) 세 번째 기둥은 개인이 스스로 노후를 대비하는 개인연금으로 중국에서는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2018년 상하이, 쑤저우 등 일부 지역에서의 시범적인 도입 이후 2022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현재 약 6,000만 명의 사람들이 개인 연금에 가입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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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개인의 노후를 보장하는 중국의 연금은 세 가지 기둥 연금체계를 따른다.

     

현 중국의 연금체계가 대부분의 중국 인민들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21세기 중국 사회보장제도가 이룬 성과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물론 누군가는 중국 빈곤층의 삶이 여전히 열악하다며 이를 부정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지난 십수 년 동안 중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엄청난 발전을 해왔다. 가령, 당장 20여 년 전인 2000년에는 연금 가입자 수가 13,600만 명에 불과했다. 10여 년 전인 2010년으로 돌아가 봐도 당시의 연금 가입자 수는 35,900만명이었다.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대부분의 인민들을 연금에 가입시키고 이들이 노후를 미약하게나마 책임지려 했다는 점에서 뛰어난 성과임은 분명하다. 실제로 2016년 중국 정부는 연금, 건강 보험 및 기타 형태의 사회적 보호의 전례 없는 확장에 대한 공로로 국제 사회 보장 협회(國際社會安全協會 ISSA - International Social Security Association)에서 사회보장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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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중국 기초연금 가입자 수 추이. 2010년대 들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가입자가 늘어났다.
2000
년에는 연금에 가입한 이들의 수가 13,617만명이었지만 2010년대
그 수가 가파르게 늘어
2022년에는 10억 명이 넘는 이들이 연금에 가입해 있다.

                

- 변한 것 없이 크기만 커진 중국의 연금제도

       

흔히 한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는 해당 제도가 얼마나 많은 인구를 포괄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보장 범위(coverage)’와 얼마나 많은 혜택을 주는지는 나타내는 관대성(generousity)’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만약 한 국가가 소수의 인원들에게만 풍족한 복지혜택을 제공한다면, 이 국가는 관대성은 높지만 보장 범위가 좁은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국가이다. 반대로 모든 국민들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하지만 매우 작은 혜택만을 제공한다면 그 국가는 보장범위는 넓을지언정 복지의 관대성이 낮은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기준을 통해 중국의 현행 연금제도를 분석해본다면 어떨까? 2010년도 이후 중국 연금제도는 보장범위의 확대에만 방점이 찍히고 관대성과 같은 질적인 부분에서는 개선이 전혀 되지 않은 발전을 거쳐왔다. 단적인 예로, 중국의 소득 대체율은 200070%대에서 201940%대까지 하락했다. 소득 대체율이 40%라는 말은 직장에 재직할 당시 10,000위안의 월급을 받던 이가 퇴직 이후에는 소득의 40%4,000위안 밖에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 중국은 보장 범위에서는 큰 성과를 이루었으나 관대성 측면에서는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의 연금제도에는 차별이라는 더 큰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중국 인민들이 퇴직 이후 받을 수 있는 연금 혜택은 도시 주민인지 농민인지에 따라’,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직종(국유기업/민영기업)에 따라천차만별의 차이가 나고 있다. 상기한 중국 연금제도의 첫 번째 기둥인 공적연금을 보자. 중국의 연금체계 중 가장 많은 이들이 가입된 공적연금은 도시에 직장이 있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도시 근로자 연금과 도시에 직장이 없는 도시 주민과 농민들에게 제공되는 도시·농촌 주민연금으로 나뉜다. 도시 호구를 가지고 있고,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이들은 도시 근로자 연금의 혜택을 받지만, 도시에 살더라도 근로자 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주민이나, 농촌의 농민들은 도시 농촌 주민의 혜택을 받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받는 금액의 차이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점에 있다. 이론적으로만 따져본다면 베이징의 국영기업에서 일하던 퇴직자와 빈곤 농촌 지역의 농민이 퇴직 이후 받을 수 있는 금액은 70배 이상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차별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건국 초기부터 중국의 연금제도는 차별의 역사라 불릴 만큼 소수에게만 그 혜택을 제공해 왔다. 국가와 단위로부터 연금 혜택을 받던 도시민들과 달리 농민들은 어떠한 연금 혜택도 누릴 수 없었으며 이와 같은 차별은 개혁개방과 함께 단위체제가 해체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2009년 비로소 신농촌사회양로보험4)이 시작되며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농민들에게 연금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2011년에는 도시주민기본양로보험을 실시해 마찬가지로 기존 혜택에서 소외되어 있던 일반 도시 주민들에게도 그 범위가 확대 되었지만5) 이는 새로 가입된 농민들이 기존 도시의 근로자들이 누리고 있던 연금에 통합된 것이 아니라 도농이원제도의 연장선상에서 도농이원적인 연금제도가 만들어진 것에 불과했다. 이후 중국의 공적연금제도는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직공기본양로보험(城鎮職工基本養老保險)과 도시에 직장이 없는 도시 주민과 농민들에게 제공되는 도농거민기본양로보험(城鄉居民基本養老保險)이라는 이원적 형태를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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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앞서 말한 중국의 연금제도의 발전을 표로 정리하면 위와 같다.

         

하지만 같은 농민이 받는 도시·농촌 주민 기본양로보험도 자신이 어떤 성(), 어떤 도시에 속해있는 농민인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연금액에서 큰 차이가 난다. 가령, 베이징 호구를 가지고 있는 농민이라면 퇴직 이후 매달 최소 924위안의 돈을 받을 수 있지만6)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호구를 가지고 있는 농민은 고작 148위안만을 받을 수 있다.7) 물론, 중국 정부는 계속해서 이와 같이 파편화된(fragmented) 연금제도를 일원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제한적인 재정 하에서의 연금제도 일원화는 기존 혜택을 보고 있는 이들의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말과 같기에 쉽사리 시행하기 어렵다. 이에 황셴(Huang xian)은 차별이 유지된 채 혜택 대상만을 늘린 중국의 사회보장 시스템을 계층화된 복지 시스템이라고 칭한다. 말인즉, 중국 정부가 차별을 유지하면서 미약한 혜택의 복지를 전 국민에게 확대하면서 엘리트 집단과 기존에 소외된 집단 모두의 만족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8)

          

하지만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사건이 말해주듯 중국의 주민들은 차별적인 연금제도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지역에 따른 극심한 차이는 상대적 박탈감을 부르며 이는 사회안정을 크게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부가 건국 이후 수십년 동안 조장하고 유지해온 도농이원적 사회보장제도는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권을 평등하게 누려야 할 국민이 되려 다른 지역의 사회보장 자격을 구매하는 촌극을 불러왔다.

          

중국의 회색 코뿔소, 연금문제

          

흔히 큰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오랫동안 방치하여 위험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회색 코뿔소'라고 한다. 현대 사회의 연금 문제는 모든 국가가 풀어야 할 주요 숙제 중 하나이지만 여기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차별이라는 문제가 더해진 중국의 연금 문제는 그야말로 회색코뿔소와 같다. 2023년 기준, 60세가 넘은 중국의 노인 인구는 297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1.1%를 차지하며 중국의 노인들만으로 나라를 하나 세워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인구 대국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이며 중국 사회과학원은 2035년이 되면 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게다가 오늘날 저출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선진국에 진입한 이후에 고령화를 맞이한 것과 달리 지금의 중국은 ‘(나라가) 부자가 되기도 전에 늙고(未富先老)’ 있다. 중국은 연금의 불평등이 불러올 사회 혼란에 더해 연금 고갈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듯, 도농이원체제 하에서 농민들의 피땀 위에 세워진 경제적 성과는 그 한계에 다다랐고, 그 후유증은 서서히 중국을 위협하고 있다.



김명준 _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동아연구소 박사과정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1) https://www.infzm.com/contents/273196?source=133&source_1=1

2) http://finance.people.com.cn/n1/2024/0603/c1004-40249257.html

3) https://www.gov.cn/lianbo/bumen/202406/content_6956354.htm

4) 중국은 연금을 양로보험(養老保險)이라고 부른다. 본고에서는 일반적으로 연금으로 표기하며 정책의 명칭을 이야기할 때에만 양로보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5) 위 두 연금체계는 2014도농거민기본양로보험(城鄉居民基本養老保險)’으로 일원화된다.

6) https://www.bjfsh.gov.cn/ztzx/2024/wlfw/xxzx/ylzn/202403/t20240304_40073570.shtml

7) 哈尔滨财政局关于下达2023年城乡居民基本养老保险市级财政补助资金的通知, https://lrl.kr/xqrJ

8) Huang Xian, 2020, Social Protection under Authoritarianism, Oxford University Press, https://lrl.kr/o19J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필자 정리

사진 2. https://lrl.kr/kP0U

사진 3. 필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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