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6월호
사라진 빈곤선과 소환되는 공동체 _ 김주영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

2013년 홍콩에서 처음 시작된 빈곤선에 따른 빈곤 인구 집계가 2022년부터 발표되지 않고 있다. 중위소득의 50%를 빈곤선으로 설정하여 그 이하를 빈곤 인구로 헤아려왔던 홍콩에서 이 기준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빈곤을 자산이 아닌 소득 기준으로만 측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그 배경이었다. 특히, 날로 늘어가는 고령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홍콩에서 일부 노인이 대출 없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소득이 없어 빈곤 인구로 분류된다는 문제의식이 크다.

  

2021년 기록된 빈곤선에 대한 입법부의 질의응답서는 2019홍콩빈곤상황보고서를 언급하며 약 39만 명의 빈곤 노인 중 최대 30%가 주택소유주로, 그 가치를 월별 연금 지급액으로 환산해 빈곤선보다 높다면 빈곤 인구로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자녀의 지원도 노인의 빈곤을 다면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요인 중 하나로 포함되었다. 2020홍콩빈곤상황보고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며 전술한 지표를 포함해 통계를 내면 노인 빈곤의 실질적인 비율이 낮아진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인식은 정부가 빈곤선을 정하고 이에 따라 빈곤 인구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3년부터 있었던 것으로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빈곤선의 개념을 재논의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이 팬데믹으로 인해 시민들의 생활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시기에 이루어진 것은 적절한 시점이라고 볼 수 없다.

    

image01.png

그림 1. 마지막으로 발행된 2020홍콩빈곤상황보고서」 


소득이 빈곤을 측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노인의 부동산을 소득과 동일하게 인식하고 자녀의 지원을 빈곤선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에는 동의하기 어렵다.1) 자녀의 지원은 상시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며, 더 높아진 집값과 생활비, 더딘 임금 상승에 분투해야 하는 자녀가 빈곤해질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의 부동산 대출을 함께 갚아나가는 홍콩 청년이 노인이 되었을 때, 이들이 가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소유한 주택의 가치를 연금으로 환산하는 방식도 실거주 부동산이라면 무의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2월 공식 발표는 아니지만 정부가 제시한 새로운 빈곤선은 한부모 가정, 노인, 분할주택 거주자2)를 주요 대상으로 소득, 생활환경, 고용, 임대료 등 다방면의 모니터링을 통해 빈곤을 집계할 것으로 윤곽이 드러났다.3) 정부가 빈곤 완화를 위한 정책 개입의 주요 대상으로 전술한 세 집단을 선정한 것이다. 빈곤 인구 공개에 대한 질의에 정부는 단일지표로 인한 빈곤 통계가 적절하지 않다는 답변을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연내 공개 예정이라는 빈곤선이 어떠한 지표로 구성되어 있는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일각에서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4) 빈곤 인구 집계를 통해서 전반적인 빈곤 현황을 파악하고 정책목표를 수립할 수 있었던 기존 빈곤선의 이점과 달리, 특정한 대상의 빈곤을 전체 가구와의 비교를 통해 파악함으로써 전체적인 빈곤의 지형을 파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거 빈곤은 부동산이 비싼 홍콩에서 오랫동안 문제로 인식되어왔지만, 분할주택 거주자만의 현안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분할주택이 홍콩에서 열악한 거주 공간이라는 사실은 자명하지만, 그렇다고 유일한 주거 빈곤의 상징은 아니다.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저소득층이라는 점에서 생계의 위협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비좁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공공임대주택의 현실은 이들이 주거 빈곤에서 실제로 벗어났는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도심의 한적한 다리 밑에서 텐트나 판자 등으로 공간을 만들어 거주하는 노숙인은 정책 개입이 필요한 또 다른 대상이기도 하다.

     

image02.png

그림 2. 공공주택이 빼곡하게 들어선 틴수이와이(Tin Shui Wai) 전경



정부가 분할주택 거주자 중에서도 어떠한 대상에 특히 주목하는지는 2023년부터 시작한 공동체 거실 프로젝트’(Community Living Room Project)를 통해서 가늠해볼 수 있다. 작년 12월 빈곤층이 집중 거주하는 지역으로 유명한 삼쉬포(Sham Shui Po)에서 처음 문을 연 공동체 거실은 일상생활 공간이 부족한 분할주택 거주자들이 세탁, 요리, 아이들의 공부 등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다. 보통 분할주택은 침대와 협소한 최소한의 생활공간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아이의 성장에 부적절한 공간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공동체 거실은 아이들이 있는 가구에서 활용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들에게 더욱 초점이 맞추어진 정책으로 보인다. 공동체 거실에서는 아이들의 공부를 도울 수 있는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있어 고립된 분할주택에서의 생활에 활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 프로젝트에서 공동체는 긍정적으로 의미화되며 분할주택의 부족한 편의시설을 보완하는 복지시설로 홍보된다. 각자의 생계 모색에만 몰두했던 사람들이 공동체 거실에서 모여 서로 돕기 시작했다는 이용자의 인터뷰가 홍콩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홍콩의 정신으로 해석되는 것도 공동체의 긍정적인 의미화와 맞닿는다.5) 그러나 이 공동체는 저소득층을 입증해야 하는 복잡한 서류 준비와 심사 절차, 가족 구성원 중 최소 1명은 홍콩 거주민이어야 하는 폐쇄적인 조건으로 성립 가능해진다.

    

빈곤층의 삶의 질 향상은 중요한 과제이기는 하나, 정부 정책이 임시적인 방편으로서 다소 미시적인 삶에 집중하는 방향이 타당한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정부가 사람들이 함께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공동체를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높은 주택 임대료를 낮추는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시민들이 괜찮은 자신만의 집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지 않을까.

   

그러나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홍콩의 부동산 문제는 정부와 개발 이익을 독점해 온 몇몇 기업이 오랜 시간 동안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여러 이권이 개입된 오늘날 해결이 요원해 보인다. 여기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시민사회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은 정부가 주거 빈곤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빈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올해 홍콩 내 다른 지역에서 3개의 공동체 거실이 추가로 문을 열 계획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빈곤 경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새롭게 발표될 빈곤선이 혁신적인 빈곤 경감 방안을 제기하는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빈곤의 범위가 축소되고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지엽적인 개입에 의미를 부여하며 효과를 상찬하지 않을지 염려된다. 빈곤선은 자취를 감추고 공동체가 강조되는 홍콩에서 빈곤을 만들어낸 구조적 모순에 대한 질문은 길을 잃은 것 같다.



지금 여기홍콩 14


김주영 _ 전북대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1) https://www.info.gov.hk/gia/general/202101/27/P2021012700604.htm

2) 홍콩에서 분할주택(Subdivided flat)은 주거 빈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 가구가 거주할만한 공간을 임의로, 비합법적으로 분할하여 여러 가구를 거주할 수 있게 한 형태의 열악한 거주 공간을 의미한다.

3) HKFP, “Hong Kong to redefine how poverty is measured after 2-year delay in releasing number of poor in population” 2024.2.20.

4) South China Morning Post, “Hong Kong’s ‘community living rooms’ not enough to tackle poverty, welfare chief told” 2024.5.13.

5) Xinhwanet, “Enjoying family life in Hong Kong's first community living room” 2024.1.29.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와 표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Census and Statistics Department

그림 2. 필자 직접 촬영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