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역자의 말]
지난 155호부터 <해외 중국학 연구동향> 코너에서 홍콩 농업3.0 실천에 관한 초우시총(周思中, Sze Chung Chow) 선생의 저서, 『석양의 빛: 누가 홍콩에 채소밭이 없다고 했을까?』 1)의 내용을 장별로 요약·번역하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번 2024년 1월호는 5장 <유기농 채소밭 모델, 그 소비시장과 경영 상황>의 내용을 요약·번역하여 소개한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5장의 내용은 홍콩 전통 채소재배업의 유기농 전환과 연관된다. 채소 유통 및 도소매 분야에서 홍콩 현지 재배 채소의 비중이 급락하여, 수입 채소의 품질 안전성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어느덧 유기농 채소밭이라는 차별화된 경영 모델이 부상했다.
유기농 채소밭에 부여된 사회적 의미는 유기농 채소의 고수익성을 누리는 이익 추구 행위에서 출발하여 도시 소비자와 농업 생산자의 연대를 거쳐 홍콩 본토적 가치와 정체성이 부각되는 ‘본토의식(本土意識)’의 상징물로 변신했다. 이번 호에서는 홍콩 유기농 채소밭의 발전사를 중심으로 요약·번역할 것이고, 다음 호에서는 유기농 채소밭에 정보통신기술이 도입되는 과정, 그리고 홍콩 본토의식 형성 과정에서 유기농 채소밭의 역할에 관한 사례를 다룰 것이다.
[내용요약]
저자는 5장의 서두에서 ‘유기농업(有機耕作)’의 개념을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유기농업은 화학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농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유기농업에는 다른 작물 품종 간의 윤작(輪作)이나 간작(間作), 그리고 토양 생태시스템의 육성 등과 같은 농업 기술적 측면도 포함된다. 그러나 기술적 측면보다 실천 차원의 유기농업은 지난 100여 년 동안 화학비료, 농약 및 기타 화합물을 기반으로 한 소위 ‘관행농업(常規農業)’에 대한 대안적 접근에 중점을 두고 있다.
홍콩의 경우, 한 세기 전만 해도 유기농업은 홍콩 농업의 유일한 선택이었으며, 관행농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시기는 약 반세기에 불과했다. 따라서 저자는 1990년대 이후 홍콩의 채소 재배업이 유기농업으로 전환된 것은 단순히 관행농업에 대한 대안이라기보다는 홍콩의 특수한 사회·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요인이 홍콩의 유기농업 전환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저자는 홍콩의 유기농 채소밭 발전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재정리했다.
1) 수익성 사업으로서의 유기농 채소농장의 출현
홍콩의 유기농업은 ‘초이섬 농약 오염 사건(毒菜芯事件)’에 대한 민간의 대응책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유기농업을 처음 도입한 주체는 홍콩의 현지 채소 재배 농가가 아니었다. 당시 이들은 주로 홍콩 정부가 농약의 안전한 사용과 토양 및 수질에 대한 정기적인 검사에 중점을 둔 '신뢰할 수 있는 농장 계획(信譽農場計劃)'에 참여했다. 그 대신에 홍콩에 유기농법을 도입한 것은 채소 상인들이 주도하는 규모화된 채소 농장이었다. 이 농장들은 퇴비와 생물성 비료의 사용을 선도했고, 광저우(廣州) 소재 농업 대학 및 연구 기관의 생물학적 병충해 방제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홍콩 유기농 농업의 선구자가 됐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기농 채소 농장은 가족 단위의 자급자족형 채소밭 경제가 아닌 고투자와 고위험성이 병존하는 시장 지향적 경제이기 때문에 생산 및 유통 비용이 상당히 높았다. 이러한 유기농 채소 농장에서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흔히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사용했다. 또한, 이 농장들은 비용과 위험요인을 분산하기 위해 고객군 확대 전략을 채택했으며, 일부 농장은 100가구 이상과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유기 농장 모델은 높은 투자, 위험성 및 비용으로 인해 2000년 이후 점차 사라졌고, 가족 단위의 채소밭이 다시 유기농 실천의 주력군이 되었다.
사진1. 유기농 채소밭의 한 구석2)
2) 공동체 중심 유기농 채소밭의 시작
1990년대의 유기 농장 실천에서 ‘공동체 지원 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CSA)’이 이미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수백 가구와 채소 공급 계약을 체결한 농장은 실제로 이른바 ‘채소 꾸러미(box system)’를 활용하여 생산 측면의 비용과 위험요인을 선불로 지불한 소비자 가정에 분산시켰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 관련 실무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채소 꾸러미 방식은 명백히 시장에 기반한 경영방식일 뿐이었으며, 실제 공동체적 유대감 형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시장 중심이 아닌 공동체에 기반을 둔 진정한 유기농 실천은 200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됐으며, 특히 ‘카두리 농장 및 식물원(Kadoorie Farm and Botanic Garden, KFBG, 이하 카두리 농장이라고 약칭함)’과 같은 사회복지기구가 주도했다. 이들 사회복지기구가 직접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유기농장과 유기농 채소밭은 당시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의 ‘지속가능한 발전 기금(可持續發展基金)’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사회복지 기구는 농업 생산과 시장 운영에 전문성이 없으므로 당시 사회복지 기구가 직접 운영하던 많은 유기농장은 정부 지원이 종료된 후 운영이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 기구와 시민들의 긴밀한 네트워크 덕분에 채소 업계에 새롭게 진출한 일부 신규 농부와 소규모 유기농 채소밭은 사회복지 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유통망 확대 및 생산 비용을 절감 및 분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와 동시에 시민도 과거 값비싼 유기농 채소보다 저렴한 대중적 유기농 채소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3) 유기 인증 시스템의 도입
홍콩의 유기농 인증 시스템도 2000년을 기점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홍콩 어농호리서(漁農護理署)는 유기농 채소 산업을 지원하고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고, 유기농 채소 농장이나 채소밭에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는 ‘유기농 전환 계획(有機轉型計劃)’을 추진했다. 이와 동시에 민간 차원의 유기농 인증 시스템 도입 관련 주장과 연구도 등장했다. 홍콩의 시장 지향적 유기농 채소 산업의 경쟁 과열화와 짝퉁 유기농 채소 문제를 우려한 일부 민간인사와 전문가들은 홍콩유기농업협회(香港有機農業協會, HOFA; 이후 홍콩유기생활발전기금[香港有機生活發展基金, SEED]으로 개칭)를 결성하여, 2년 정도에 걸쳐 홍콩 현지 상황을 고려한 제3자 유기농 인증 기준을 개발해 왔다. 정부 차원에서 선수(유기농업 발전 지원)와 심판(유기농 인증 기준 설정)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은 이들 민간인은 홍콩 정부를 설득하여 유기농 인증 기준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도록 했고, 유기농 연관 각 주체의 지원을 받으면서 유기농 인증 업무를 수행하는 홍콩유기농자원센터(香港有機資源中心, HKORC-Cert)가 설립됐다.
역설적인 것은, 홍콩 유기농 자원 센터의 설립과 유기농업 실천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지원하던 조직이나 단체에서 생산자 회원(채소 농장 또는 채소밭)에 대해 유기농 인증을 의무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홍콩의 유기농 인증 기준이 처음 개발됐을 때, 이 기준이 단순히 제품의 유기농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소통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견해가 홍콩 유기농 운동 과정에서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일관되게 확인되고 실천됐다는 사실은 2000년대 초반 홍콩 유기농 운동에서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 간 공동체적 유대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방증이다.
4) 농민장터 판매·유통 모델의 등장
사회복지 기구가 주축이 된 유기농업 운동 플랫폼, 제3자 유기인증 시스템, 정부 주도의 유기농업 기술 및 재정 지원 등 유리한 조건을 바탕으로 홍콩의 유기농업은 점차 자체적인 유통 및 판매 플랫폼을 구축해 나갔다. 앞서 언급한 채소 꾸러미와 이후 등장한 온라인 판매 플랫폼을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유통 및 판매 플랫폼은 이른바 '농민장터(農墟, famer's market)'이다. ‘허(墟)’라는 글자는 광둥 방언과 고대 중국어에서 모두 전통적인 정기시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앞의 장에서 언급한 ‘새벽시장(天光墟)’이라는 단어에서도 ‘허(墟)’가 사용된다. 따라서 홍콩의 유기농 운동은 국제 유기농 운동에서 유행하는 농민장터(famer's market) 모델을 홍콩의 전통 시장 개념과 정교하게 결합시켜 자체적인 유통 및 판매 플랫폼을 개발했다.
농민장터의 초기 형태는 2000년경 홍콩 유기농업협회를 비롯한 일부 사회단체들이 농민 장터 모델을 실천하기 위해 카두리 농장의 주차장을 이용하여 만든 임시 직거래 장터에서 시작됐다. 이 장터의 원래 목표는 유기농 업계 내의 상호 교류를 촉진하는 것이었다. 장터가 열린 지 2년 후, 카두리 농장의 어느 은퇴 관리자는 이 모델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채소통영처 산하의 채소연합사(菜聯社, 채소생산자협동조합 연합회)에 연락하여 협동조합에 가입한 유기농부 회원들의 판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의 이름으로 농민장터를 인수하도록 채소연합사를 설득했다.
채소연합사가 장터를 인수한 후 장터의 공시 명칭을 ‘대포대화농민장터(大埔太和農墟, Tai Po Tai Wo Farmer's market)’로 명명했다. 대포대화농민장터는 신계(新界, New Territories)의 주요 유기농 채소 생산지와 가깝고 도시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옛 대포채소생산자협동조합(大埔蔬菜产销合作社)의 납품장에 설립되었다. 이 농민장터는 2005년에 공식적으로 개장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30개 이상의 점포들이 입점해 있다.
사진2. 대포대화농민장터 정문3)
대포대화농민장터 설립 후 홍콩 유기농 운동 기구들은 홍콩섬 지역의 구의원들과 함께 홍콩섬에 다른 두 개의 정기 장터를 설립하는 데에 힘을 보탰다. 채소연합사도 신뢰할 수 있는 농장 계획에 참여한 농가에 초점을 맞추어 자체 농민장터를 열었다. 그 외에도 여러 종교 단체, 사회복지 단체, 대학 연구소와 학생회 등이 각각 자체 농민 직거래 장터를 개설했다. 현재 홍콩섬에는 같은 단체가 서로 다른 날짜에 운영하는 두 개의 농민장터가 있는데, 구룡(九龍, Kowloon) 지역에는 한 곳뿐이고 신계 지역에는 5~6곳이 있다(최근 토지 개발로 인해 일부 장터가 문을 닫았거나 곧 문을 닫을 예정임).
이들 장터는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교통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농부들의 납품 편의를 위해 채소밭 근처에 위치하는 경우, 도시 소비자들의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을 재생사업이 진행 중인 마을 근처에 위치하는 경우, 심지어 농민장터가 농촌과 도시를 잇는 가교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도시의 고층 아파트 맞은편에 설립된 경우도 있다.
홍콩 채소업의 생산량과 경작 규모가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기농 채소 재배는 2000년 이후 정부와 사회단체의 지원으로 생산, 유기 인증, 판매에 이르는 건전한 생산체계가 구축되면서 오히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현재는 소규모 농가가 유기농으로 전환하거나 일반 시민이 유기농 채소 재배업에 진출하는 문턱이 크게 낮아졌고, 농자재 구매부터 최종 판매까지 체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홍콩의 유기농 인증 채소밭은 130개에 달하며, 300개 이상의 채소밭이 어농호리서의 ‘유기경작 지원계획’의 혜택을 받고 있다.
리페이 _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 중문 원본은 다음 책 참조: 周思中 著, 2022, 『夕陽的光:誰說香港沒有菜園』, 香港: 藝鵠有限公司.
2) 위 책, 181쪽.
3) 대포대화농민장터 공식 페이스북, 2021.07.09., 검색일: 2023.12.25., https://www.facebook.com/taipofarmersmarket/photos/pb.100057307487428.-2207520000/10159256841497778/?type=3&locale=zh_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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