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불평등한 위험사회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은 현대사회의 주요 특성을 산업화의 진전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빈곤, 불안정 노동, 핵전쟁 가능성, 생태위기, 전염병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위험이 복합화·일상화·구조화·개인화되는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정의한 바 있다. 부(富)의 생산 및 분배를 둘러싼 대립을 중심축으로 했던 산업사회에서 이제 위험의 생산 및 분배가 주요한 정치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는 위험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험사회에서의 새로운 사회적 위험은 특정 집단이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으며, 초국가적이고 비(非)계급적인 특징을 지닌다고 보았다. 이는 그의 저작에 나오는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는 표현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경험하듯이 사회적 위험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올 수 있지만, 모두에게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위험은 계급, 젠더, 인종, 연령 등에 따라 다르게 분배되며, 위험에 대응하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자원도 불평등하게 주어져 있다. 따라서 산업재해의 위험이 큰 업종과 업무에 비정규·하청·청년 노동자들이 주로 내몰리는 ‘위험의 외주화’나 열악한 주거환경에 거주하는 빈곤층이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위험의 위계화’가 오늘날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다.
중국 코로나 시기 사회적 위험의 불평등
이와 관련하여 최근 중국 기층 노동자의 현실에 관한 주요 정보와 기사를 주로 다루는 ‘중국 노동 동향’(中国劳动趋势)이라는 온라인 매체에 코로나라는 사회적 위험이 어떻게 구조적인 불평등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분석 기사가 실렸다.1) 이 기사는 중국 인민대학 중국 조사 및 데이터 센터(中国人民大学中国调查与数据中心)에서 2023년 3월에 공식 발표한 ‘중국 종합사회조사’(2021)(中国综合社会调查, Chinese General Social Survey, CGSS) 자료를 바탕으로 데이터 분석을 수행한 것이다. 핵심 목적은 인구학적·사회경제적 지위 요인에 따라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위기(소득 감소)가 어떻게 불균등하게 분배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위험의 불평등을 경험하면서 일과 생활 그리고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는 어떠한 변화가 생겨났는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우선 CGSS 자료에 의하면 코로나 발생 초기 2년 동안(2020-2021년) 전체 인구의 64.2%가 소득에 변화가 없었고, 29.4%가 소득 감소를 경험했으며, 8.2%만이 소득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코로나로 인해 소득이 감소한 인구가 소득이 증가한 인구수의 3.6배에 해당해 코로나 기간 사회경제적 위험이 상당히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코로나 이전에 존재했던 인구학적·사회경제적 차이가 코로나 기간 소득 감소에도 영향을 미쳐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했다는 것이다. 먼저 이 기사에서 고려한 소득 감소에 영향을 미친 주요한 사회경제적 요인은 고용형태, 호적, 교육 정도, 가구당 연간 소득이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고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코로나 기간 경제적 위기를 견뎌낼 대응력이 더 컸으며, 반면 최근 더욱 확대되고 있는 각종 파견노동자와 임시직 노동자들은 코로나와 같은 사회적 위험에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도시 호구 소지자에 비해 농촌 호구 소지자의 소득 감소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으며, 학력 수준이 높을수록 소득 감소의 위험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구당 연간 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중·고소득(연소득 20,000위안 이상) 가구가 코로나로 인한 소득 감소를 겪을 가능성이 저소득(연소득 2,000위안 미만) 가구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험이 기존의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이 조사에서 통계적으로 가장 유의미한 결과를 보인 인구학적 요인은 결혼 여부와 가족 형태이다. 즉 배우자나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독신자와 비교했을 때 코로나로 인한 소득 감소가 훨씬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족 구성원 중 전염병에 취약한 노인이나 영유아를 돌보기 위해 추가적인 시간과 돈,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경제적 위기가 가중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2020-2021 코로나 기간 사회경제적·인구학적 요인에 따른 소득 감소 분석>
주: 화살표가 오른쪽(녹색)이면 소득 감소의 가능성이 크고 코로나에 취약하다는 뜻이며,
왼쪽(주황색)이면 소득 감소의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위험의 불평등 구조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의
한편 이 기사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CGSS에서 사용된 설문조사(n=8148, 유효=7997)를 기반으로 코로나로 인한 소득 감소가 개인들의 일과 생활 및 정부에 대한 인식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코로나로 인한 소득 감소를 더 크게 경험한 사람일수록 전염병 대응에 대한 정부의 정책에 더 소극적이며 신뢰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은 전반적으로 현재 중국 사회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삶과 일에 불만을 가질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요컨대 코로나 기간에 경험한 경제적 위험은 개인들의 정치사회적 인식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정부 정책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태도는 코로나 후기에 집단적인 행동(백지투쟁)과 사이버상에서의 분노 표출로 실제 관찰되고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분노와 불만을 초래한 원인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이 기사에서 인용된 CGSS 데이터 분석은 코로나 상황에서 발생한 경제적 위험의 불평등한 분배 구조가 이를 유발한 핵심적인 요인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물론 이 기사에서 사용한 CGSS 데이터는 전국 인구 분포와 유사하게 표본추출을 했지만 주로 코로나 초기(2020-2021) 상황에만 한정되어 있기에, 코로나가 중국 사회에 미친 사회적 영향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 중국에서 나타난 사회적 위험이 기존의 불평등 구조와 맞물려 어떻게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지를 구체적 데이터를 통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함의가 있다. 즉 호적에 따른 차별 구조와 교육을 통해 재생산되는 계층 구조, 저소득층과 빈곤 가구에 대한 안전망의 결핍, 고용 구조의 비정규직화와 불안정화 등이 코로나라는 사회적 위험을 만나 모순과 갈등을 더 격화시킬 수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국 정부가 사회적 안정과 통합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난제이기도 할 것이다.
정규식 _ 성공회대 학술연구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참고자료
1) 기사 원문은 다음을 참조. “疫情下的收入损失分析: 零工、劳务派遣人员风险为稳定雇佣者的1.7倍”
https://www.laodongqushi.com/pandemic-income-loss/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www.laodongqushi.com/pandemic-income-l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