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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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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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중심론자였던 토마스 홉스는 ‘생명·인격·법치’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국가는 망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 망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리바이어던』 제 21장 ‘국민의 자유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통치자에 대해 힘을 합하여 ... 저항을 하거나 ... 서로 결속하여 돕고 방어할 수 있는 자유를 갖지 못하는가? 당연히 가지고 있다. ... 그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무의 첫 위반은 부정한 행위지만, 그 행위에 이어 무기를 드는 것은 이미 실행한 행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더 이상 새로운 부정한 행위가 아니다. 나아가 만약 그 행위가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전혀 부정한 행위가 아니다."1)
또 30장 ‘통치자의 직무에 관하여’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상류층에 대한 (법적) 편파성 ... 형벌을 면제하는 것은 오만을 낳고 오만은 (국민의) 증오를 낳고, 따라서 (국민은) 증오가 국가의 파멸을 낳는다고 하더라도, 억압적이고 오만불손한 모든 상류층을 타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 그 분노는 부정한 행위를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를 보호할 수 있는 모든 권력에 대한 적대로 확대되기 때문이다."2)
홉스가 제기한 ‘국민의 국가해체 자유’는 수많은 자유주의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구분해가며, 적극적 자유에 충실한 개인이 정치사회적 혁명에 참여하는 것을 비판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홉스가 볼 때 개인은 생명·인격·법치의 가치를 위해 스스로 국가라는 괴물을 만들어 가혹한 통제도 감내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국가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훼손하여 망국 상황을 조성할 경우, 국민들이 힘을 합쳐 괴물이 되어버린 놈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어차피 국가는 유한한 인간이 만들어낸 ‘필멸의 인공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위 그림은 『리바이어던』 초판에 사용된 것이다. 홉스가 직접 도안을 구상한 후 작가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리바이어던은 ‘머리’와 ‘주먹’에 불과하지만, 각각의 개별적 국민들은 ‘완전한 신체’를 갖추고 있다. 즉 국민들은 리바이어던을 떠나서 살 수 있지만, 리바이어던은 국민이 떠나버리면 죽어버리게 된다. 또한 리바이어던 스스로 국민을 ‘살해’하는 것은 그 자체로 리바이어던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다. 마치 세월호 사건에서 국가 스스로 자신을 죽음으로 내던졌듯이.
홉스는 국가 해체 이후, 첫째, 개인은 ‘자연 상태’에서 새로운 공통의 가치를 창출하며 사회계약을 맺고, 둘째, 군주정·귀족정·민주정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여 국가계약을 맺으며, 셋째, 마침내 국가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통치를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홉스도 국가가 해체된 ‘자연 상태’를 끔찍하게 두려워했다. 국가의 해체는 도덕과 법이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내전 상태,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선제공격이 정당화되는 공포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자연 상태는 최근 몇 년 간 우리가 견뎌내었던 한국의 상황과 매우 가까웠던 것 같다. ‘헬조선’, ‘흙수저-금수저’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유행하고 있는 ‘죽창 드립’(죽창 앞에선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등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기회의 평등’을 핵심 가치로 제시했지만, 홉스는 인간의 유일한 평등은 신체적 취약성이라고 여겼다. 즉 누구든 창에 찔리면 죽는다는 것, 그래서 그는 자연 상태는 가능한 한 피해야만 하고, 그래서 괴물을 만들어내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6년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듯이, 국가가 망하는 이유는 국민이 아니라 바로 국가를 통치하는 자들 때문이지 않는가? 홉스가 그리스어였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Thucydides)』를 최초로 영문 번역한 것도 바로 이 문제를 ‘에둘러’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민주정’의 껍데기만을 미화해왔던 아테네 통치자들의 오만·허영·탐욕이 어떻게 그리스 전체의 패망은 물론, ‘문명적 질서’ 자체를 순식간에 ‘야만적 상황’으로 끌어내렸는지 신랄하게 비판했다. 즉 “죄악스러운 목표를 위해서 멋진 어구를 구사하는 것이 높은 평판을 얻었고”, 또 “자기들 스스로 동료를 믿지 못하고 전투에 임박한 것처럼 분열되었다.”
지난 몇 년 간 우리가 겪은 망국(亡國) 체험은 실로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오늘도 국가는 망국 상태가 지속되고 있지만, 최근 몇 주 토요일마다 진행된 ‘자연상태’는 무서울 정도로 평화로웠다. 11월 26일 시위에서는 눈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대 규모인 190만 명이 운집했고, 극단적일 정도로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했다. 이미 보수 언론은 ‘촛불’을 지겹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 밖으로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는’ ‘소극적 자유’에 취한 구경꾼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100만 이상의 시민들이 그 추위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동안 피켓을 들고 외치면서도 평화로운 자연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현재 망국 상태를 극복하고 ‘완전히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이다. 즉 시민들은 현재 한국과는 ‘완전히 상이한 국가, 새로운 체제, 새로운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어떤 국가냐고? ‘안전하고, 노동하는 만큼 인간답게 살 수 있으며,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 말이다.
김판수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 T. Hobbes, 1985(1651), [Leviathan], 270p, Penguin Classics.
2) T. Hobbes, 1985(1651), [Leviathan], 386-9p, Penguin Classics.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