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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5월호
시진핑 시대의 중국 고전시 _ 이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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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2023년 <중국시사대회>


인기 프로그램 <중국시사대회>

매년 중국에서는 <중국시사대회(中國詩詞大會)>라는 행사가 열린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중국 고전시가와 관련된 지식을 겨루는 퀴즈 대회이다. 2016년부터 1년에 한 번씩 개최되어 금년 1월에 열린 대회까지 이미 8년째 진행되고 있다. 중국 중앙방송총국이 교육부, 국가언어문자공작위원회와 공동 주최하고 CCTV에서 본방, 재방까지 여러 번 방송하면서 폭넓은 시청자층을 확보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매 시즌마다 10회씩 퀴즈대결을 펼쳐 10명의 우승자를 선발하는데 초등학교 학력의 노동자나 어린이, 청소년이 우승하는 경우도 많아 전국의 시청자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퀴즈의 형식은 다채롭다. 퀴즈에 등장하는 시는 대부분 초중고 교과서에서 출제된다. 범위는 <시경>부터 마오쩌둥의 작품까지. 호방, 전원, 변새, 영웅, 청춘 등 중국 고전시의 주제별, 풍격별 분류명이 사전에 제시되고 무용이나 애니메이션, 음악 등 시청각 자료가 동원되기도 한다. 일대일 겨루기도 있고 단체전도 있다. 우리나라의 <도전! 골든벨>처럼 수십 명이 앉아 퀴즈를 풀다가 틀린 사람들이 탈락하는 방식도 있다. 난이도를 체감하기 위해 기출문제 몇 개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2023년 문제. “天下興亡, 匹夫有責(천하흥망 필부유책)”이라는 구절이 있다. 다음의 시 중 이 구절의 정서와 관련된 것은?

A: “卻看妻子愁何在, 漫卷詩書喜欲狂(각간처자수하재, 만권시서희욕광)”

B: “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호우지시절 당춘내발생)”

(정답: A)

 

2021년 문제. “北方有佳人, 絕世而獨立(북방유가인 절세이독립)”에 나오는 가인(佳人)은 지은이 이연년(李延年)과 어떤 관계인가?

(정답: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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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2023년 <중국시사대회> 


고시를 많이 암송해야

진행자가 정답, 오답을 판정하고 나면 항상 전문가가 등장하여 해당 시에 관련된 해설을 하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특색이다. 시청자들은 이 해설을 통해 고전 시와 시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질 것이다. 출연자가 좋은 성적을 얻으려면 시를 많이 외워야 한다. 지식을 물어보기도 하지만 잘못 들어간 한 글자를 찾아내거나 빈 칸을 채워 말하는 문제도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 프로그램의 백미는 일대일 겨루기 방식인 비화령(飛花令)이다. 비화령이란 말은 옛날 술자리에서 돌아가며 시구를 읊다가 벌주를 먹던 게임에서 유래했다. <중국시사대회>에서의 진행 방식은 이렇다. 예를 들어 진행자가 소년이라는 제시어를 주면 두 사람이 교대로 소년이 들어가는 시를 계속 읊는 것이다. 시간을 초과해도 안 되고 시가 틀려도 안 된다. 사회자가 스톱시킬 때까지 계속 해야 한다. 숨 막히는 시 암송 대결이다.

 

비화령으로 스타가 된 출연자도 많다. 전통복장을 입고 2017년에 출연했던 장먀오먀오(張淼淼)3천수를 외운다고 해 화제가 되었다. 또 산동의 천재 소년 왕헝이(王恒屹)5살 반의 나이로 처음 출연했는데 6살 반에 다시 출연했고 20228살에 또 출연했다. 어린 왕헝이가 당시, 송사를 줄줄 암송하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왕헝이는 5살에 한자 3천자를 알았고 고시 580수를 외웠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팬이 생겼고 이 어린이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과 언론 인터뷰로 유명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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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고시 암송 천재소년 왕헝이 


정부의 고시 암송 프로젝트

인문학적 소양을 중시하고 고전을 많이 암송하는 것은 중국의 오랜 문화 전통이다. 고대의 과거는 관리를 선발하는 시험인데 시를 짓는 과목이 있었다. 공무원 시험 과목에 시창작이 있었던 셈이다. 역대 지도자들의 고전 소양도 높았고 정부에서도 고전 교육을 정책적으로 강조했다. 마오쩌둥은 탁월한 시인이기도 했고 장쩌민도 외교석상에서 수시로 고시를 암송했다. 후진타오는 해외 방문 때마다 그 지역의 공자학원을 방문하며 흥미로운 한시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2008년에는 중공중앙선전부, 교육부, 국가어언문자공작위원회, 해방군총정치부, 공청단중앙 등의 기관이 중화송(中華誦)’ 프로젝트를 전개해서 전국적으로 고전 송독, 역사유적 탐방, 고전 경전 서예와 작문 등의 행사가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펼쳐졌다. 비슷한 성격의 프로젝트로 중화찬(中華贊)도 있었다. 지금의 <중국시사대회>는 이 중화송’, ‘중국찬의 후속탄이자, 시진핑 시대의 고전문화 보급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시진핑 정부의 고전 교육과 관련하여 필자에게 인상깊었던 일화는 집권 초기였던 2014년 스승의 날 베이징사범대학 방문이었다. 당시 일부 지역에서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과서의 고전 시문을 줄였던 일이 있었는데 시진핑은 상당히 강한 어조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고전 시문은 중화민족의 문화 기반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대략 이 무렵 전후였던 것 같다. 고전 시문 교육을 확대한다는 기사가 등장했고 시진핑이 자주 인용한 고전 명구와 해설집이 출판되었다. TV에도 오락프로그램 대신 고전문화 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겨났다. 중화호고사(中華好故事), 최애시중화(最愛是中華), 중화호시사(中華好詩詞), 당송풍운회(唐宋風雲會), 한자영웅(漢字英雄), 성어영웅(成語英雄)등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각 지역 지자체와 초중고 학교에서도 고시 암송 대회를 개최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춘절이면 춘절 암송 대회, 청명절이면 청명절 암송 대회가 열렸다. 2018년에는 교육부에서 <중화경전송독공정실시방안(中華經典誦讀工程實施方案)>을 발표했는데 이 공정은 2021년에 다시 중화우수문화전통전승발전 프로젝트 23개의 항목에 포함되었다. 고전 시문 암송이 국가의 정책이라니 놀랍다. 교과서와 대학입시에서도 고전 암송의 비중은 매우 높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중국시사대회>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시청자들의 폭넓은 반향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국몽과 고시 암송 교육

온 나라가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즐기는 것을 보니 부럽다. 훌륭한 고전문학 유산을 갖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소동파는 뱃속에 시와 글이 들어있으니 기운이 절로 아름다워진다고 말했다. 문학과 예술을 체험하면 인생과 사고의 깊이가 달라질 것이다. 어린이들은 고시를 외우며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성이 풍부해질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다. 중국몽의 시대 아닌가. 국가가 나서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고 있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중국의 미래 세대들이 고시 암송 교육을 통해 우정과 협력, 양보와 화합의 미덕을 많이 배우기를. 그리고 과도한 문화 우월주의, 배타적인 애국주의의 방향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규일 _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news.bjd.com.cn/2023/01/27/10315161.shtml

사진 2: https://www.meipian.cn/1wug2gkc

사진 3: https://yule.360.com/detail/2683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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