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공을기 문학’의 출현?
2023년 3월 중국 포털사이트에서 ‘실의에 빠진 서생’(失意书生)이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이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 마침내 대학을 졸업했지만, 사회진출 과정에서 마음에 드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한 중국 청년들의 좌절과 무력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용어이다. 이처럼 최근 중국 청년세대 사이에서 고등 교육과 높은 학력 수준이 정작 현실에서는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족쇄가 되고 있음을 풍자하는 글들이 온라인상에 유행하면서 소위 ‘공을기 문학’(孔乙己 文学)의 출현으로 불리고 있다. 주지하듯이 ‘공을기’는 루쉰(魯迅, 1881년~1936년)이 1919년 발표한 소설의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이다. 소설 속 공을기는 봉건적 관료 선발 제도였던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굶어 죽더라도 수치스러운 육체노동은 결단코 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막노동꾼들이 입는 반팔 차림과 대비되게 항상 더럽고 너덜너덜해진 ‘긴 소매의 장삼’ 입기를 고집하며, 주점에서 자리를 잡고 앉을 돈조차 없어 ‘늘 서서 술을 마시는’ 공을기는 마을 사람 모두에게 심지어 아이들에게조차 조롱과 멸시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 소설을 교과서에서 배운 현재 중국의 청년세대들은 “어린 시절엔 경제적 능력도 없이 자존심만 내세우는 공을기를 봉건적 폐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시대의 상징으로 여겨 비웃었는데,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어느새 우리가 공을기의 처지가 되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어렵게 취득한 고학력 졸업장이 공을기의 허름한 장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제 “학력은 디딤돌일 뿐 아니라, 내려올 수 없는 높은 발판이자 벗을 수 없는 긴 장삼”이 되었고, “독서는 현 상황에 불만족하게 만들지만, 현 상황을 바꿀 수는 없으며”, “쓸모없는 지식, 손에 닿지 않는 이상, 부끄러운 생활환경”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깊은 무력감을 드러내고 있다.1)
‘공을기 문학’ 현상의 쟁점: 개인의 문제 혹은 사회구조적 문제?
이처럼 청년세대들의 좌절감과 무력감으로 표출된 ‘공을기 문학’ 현상이 ‘교육 혹은 지식 무용론’으로까지 확산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도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먼저 CCTV를 비롯한 관영 매체들은 청년세대들에게 현재의 일시적인 곤경을 인생의 실패로 여겨 절망하거나 자기 비하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공을기가 경제적으로 무력했던 것은 독서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해 육체노동을 경시했던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니, 교육의 본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현재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교육 무용론’을 비판했다.2) 또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도 논평을 통해 어느 시대 어느 환경이든 항상 곤경은 있게 마련인데, 중요한 것은 이에 직면해 자포자기하여 드러눕는(躺平) 것이 아니라 용기와 끈기를 가지고 미래를 향해 더욱 ‘분투’하려는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직업에 귀천을 따지지 말고 기대치를 낮춰 젊은이들의 지혜와 땀으로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자고 청년들을 독려했다.3)
관영 매체와 공청단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 청년세대들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며 비판하고 있다. 그동안 관영 매체들이 교육을 통해 개인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아름다운 환상을 심어주었지만, 현실은 이와 상반되게 사회계층 간 이동이 더 어려워지고 불공평한 분배 구조가 심화하고 있는 것이 ‘공을기 문학’ 출현의 사회구조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대학 졸업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코로나19와 경제성장의 둔화로 신규 일자리는 감소하고 있으며, 교육비와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이미 청춘을 바쳐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언제까지 분투하라는 것인지 되묻고 있다.
‘공을기 문학’에 내포된 중국 청년세대의 사상적 곤경
이처럼 ‘공을기 문학’은 중국 청년세대가 직면한 현실적 어려움과 심리적 압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 그리고 경제성장 둔화라는 현 국면에서 청년세대의 좌절과 무력감이 사회적 위기로 전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청년 취업난의 구조적 해결, 시장 수요에 부합하는 실용적 교육체계로의 전환, 교육비와 주거비 절감을 통한 가계부담 최소화 등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청년들이 제기하는 “월급 5,000위안(한화 약 94만 원)+주말 휴일+노동법 준수+정상적인 노동 환경+35살 이전 퇴직 걱정 없는 직장”이라는 요구 자체도 전혀 지나치지 않고 오히려 정당한 것이다. 하지만 ‘공을기 문학’의 출현에서 우리가 좀 더 근원적으로 감지해야 할 것은 중국 청년세대들이 처한 경제적·물질적 곤경만이 아니라, 오히려 모종의 ‘사상적 곤경’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독서나 교육마저 계층이동을 향한 수단으로 전락한 사회에서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경쟁의 승패에 따라 나뉘는 사회경제적 보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명문대생이나 석박사 출신이 음식 배달원이나 식당 종업원으로 취업했다는 소식은 사회적 문제로서 화제가 되지만, 애초에 경쟁 과정에서 배제된 노동자 빈민 청년들의 삶은 잘 조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책을 읽지 않았다면 기꺼이 공장에 가서 나사를 조였을 텐데”라는 ‘공을기 문학’을 대표하는 한 문구에서 드러나듯, ‘높은 학력에 기반한 좋은 직장’과 ‘공장에서의 초라한 노동자’로서의 삶이 당연하게 대비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청년세대들이 경제적 성공을 향한 끝없는 경쟁 속에 매몰된 채, 삶의 의미와 생명의 존엄마저 속절없이 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것이 사상의 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 더욱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그렇기에 ‘공을기 문학’에서 드러난 청년세대들의 좌절과 무력감에 대한 단편적인 대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절망’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누구와 어떻게 연대해 이에 저항할 것인지를 심층적으로 사유하는 일이다. 따라서 ‘공을기 문학’의 출현이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요구하는 것은 “절망을 제대로 직시하고, 이에 끝까지 몸부림치며 반항”하라는 루쉰의 사상과 삶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이는 위계화된 학벌 구조 속에서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기반한 공정성 담론이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요청되는 과제일 것이다.
정규식 _ 성공회대 학술연구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자료
2)https://mp.weixin.qq.com/s/x5ulpnRwQtFw_8wzn4Es6w
3)https://mp.weixin.qq.com/s/JVH8IUNaHCv82Un0FVYLZg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max.book118.com/html/2016/1224/76618535.s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