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이정희, 「범한생 중화민국 경성총영사의 ‘친일’ 활동과 화교사회의 대응 ‘관지’ 매각 시도와 환지를 중심으로」, 『중국학보』 제102집, 한국중국학회, 2022.11, pp. 363-389.
본고는 범한생(范漢生) 주경성중화민국총영사의 ‘친일’ 활동을 총영사관의 관지와 관유재산의 매각 시도 및 환지를 중심으로 검토한 것이다. 검토 결과 밝혀낸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범한생이 1934년 11월 경성총영사로 임명되고, 1935년 들어 총영사관의 관지 매각을 시도한 배경에는 난징국민정부의 대일 타협노선 도입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행정원장 겸 외교부장인 왕징웨이(汪精衛)와 탕여우런(唐有壬) 상무차장이 같은 일본 유학파인 범한생을 경성총영사로 임명하여 중일 친선과 중일 제휴의 정책을 시행하려 했고, 범한생 총영사는 그 일환으로 우가키 가즈시게 조선총독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둘째, 범한생 총영사의 관지 매각 시도는 탕여우런 상무차장의 지시로 시작됐고, 매각이 성사되면 둘이 매각 자금의 일부를 착복하려 한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점이다. 주경성총영사관 영사관원의 밀보가 결정적인 증거이며, 범한생 총영사가 외교부에 보낸 공문에서도 그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셋째, 범한생 총영사의 관지 매각 시도를 알아차리고 반대운동을 주도한 것은 왕공온(王公溫)이 주석으로 있던 경성중화상회였다는 점이다. 왕공온 주석은 범한생 총영사의 협조 요청을 거부했으며, 직접 왕징웨이 외교부장을 찾아가 관지 매각의 부당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경성중화상회는 외교부뿐 아니라 중국국민당중앙위원회, 교무위원회 등에 범한생 총영사의 관지 매각의 부당성을 알리는 공문을 보내 여론화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경성중화상회는 관지와 관유재산은 조상의 재산이자 조선화교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를 매각할 경우 임대료 수입이 감소해 한성화교소학과 경성중화상회의 운영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넷째, 범한생 총영사는 이러한 화교사회의 반대운동으로 관지 매각 시도를 중지했지만, 그 이면에는 왕징웨이 외교부장과 탕여우런 상무차장이 피격 사건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범한생 총영사의 관지 매각 시도가 더는 지속될 수 없었다는 시대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다섯째, 범한생 총영사는 1941년 경성중화상회 회관 부지를 조선총독부가 제시한 변두리 부지와 환지를 성공시키게 되는데, 그 원인은 친일 정권인 왕징웨이 난징국민정부의 수립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중화상회가 조선총독부와 주경성총영사관의 어용기관으로 전락해 반대운동을 펼칠 수 없는 사정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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