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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11월호
그들만의 리그, 혹은 나의 한 표 _ 구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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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는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한 지 45일 만에 물러나고 대신 인도계 이민자 출신인 리시 수낵이 새로운 총리가 되었다. 트러스가 그리 빨리 물러난 이유는 줄어드는 세수에 따른 구체적 대책 없이 대규모 감세안만 발표해 금융시장의 대혼란을 초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옆 나라 중국에서는 5년 만에 한 번씩 열리는 공산당 대회가 종료되고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되었다. 시진핑이 자신의 측근들로 지도부를 채웠다느니, 시진핑을 견제할 세력이 없어졌다느니, 기존의 관례가 파괴되었다느니, 정치국 위원 수가 이전보다 한 명이 줄었다느니 하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분석은 저명한 학자들에게 맡기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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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2022년 10월 16일부터 22일까지 진행한 20차 당대회


중국공산당 대회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만큼 세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고, 여러 분야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에 맞춰 당대회가 열리기 직전까지 새로운 지도부를 예측하는 수많은 판본이 각 언론사나 학자들을 통해 흘러나왔다. 리잔수와 한정이 퇴임하고, 왕양이나 후춘화가 총리를, 리커창이 전국인대 상무위원장을 맡을 것이라는 추측도 빈번히 보도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학자들이나 언론들이 그렇게 예측한 것은 그만큼 정보를 얻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그런 인사 배치가 기존 중국정치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당대회 직전 보도된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SCMP)의 기사가 비교적 정확했는데, 아마 고위층에서 흘러나온 정보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중국정치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래서 과거 중국을 죽의 장막이라 지칭했다. 개혁 개방 이후에도 중국정치는 여전히 투명성을 결여하고 있다. 그래서 또 다른 표현인 블랙 박스가 중국 정치의 특성을 정확히 드러내는 단어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선거는 후보자들이 출마하고, 유권자들이 그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후보가 있고 투표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다들 아시다시피 중국은 공산당이 결정하면 국가기관의 수장들이 자동적으로 직위를 차지한다. 그래서 이번 공산당 대회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당대회는 중국공산당 대표자 대회를 줄인 말이다. 9600만여 명의 공산당원 가운데 2천여 명의 대표가 모인다. 그 대표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200여 명의 중앙위원과 170여 명의 후보중앙위원, 그리고 130여 명의 기율검사위원회 위원을 뽑는 것이다. 그 후보자 명단은 공산당 중앙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고, 우리가 아는 경쟁선거와 달리 8%의 차액이 적용된다. 즉 뽑히는 인원보다 후보자 수가 8% 많게 작성되어 그 인원만큼 선거에서 탈락한다. 대표들은 예비선거에서 탈락자를 가리는 투표를 한다. 그리고 정식 선거에서는 확정된 인원에 대한 찬반만 이루어지는데 주로 거수로 그 찬반을 가린다. 당대회가 끝난 후 대표들은 더 이상 모이지 않고, 아무런 임무도 없다. 한마디로 일회용이다. 당대회에서 뽑힌 중앙위원 200여 명이 당 대회가 끝난 직후 1차 회의를 열어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총서기를 뽑는다. 여기서는 차액선거가 적용되지 않고, 이미 정해진 명단을 추인만 한다. 당대회에 모인 대표들은 선거에 참여했다는 명분만 가질 뿐, 실제로 지도부를 선출하는 데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중앙위원도 마찬가지로 이미 정해진 지도부를 추인만 할 뿐이다.

 

국가기관의 수장들을 뽑는 선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의 국가기관 수장들, 즉 총리,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대 상무위원장, 건의 기관인 전국정협 주석, 사법부인 최고인민법원 원장, 그리고 최고인민검찰원 검찰장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선출(?)한다. 내년 3월 새로운 전국인대의 임기가 시작되므로 거기에서 새로운 총리 등이 선출될 것이다. 전국인대는 헌법상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이지만 그 권력이란 것이 당 대표대회와 비교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우선 전국인대 대표들 역시 2천 명이 넘는다. 당 대표와 다른 점은 5년에 한 번 모이는가, 1년에 한 번 모이는가 하는 것이다. 전국인대 대표들은 그 아래 단위인 성급 인민대표대회에서 뽑는다. 직선이 아닌 간선인 것이다. 성급 인민대표대회도 그 아래 단위인 시급 인민대표대회에서 뽑는다. 직선은 향진급과 현급 인민대표 선출까지만 이루어진다. 전국 인대에서 국가 수장을 선출한다고 하지만 그 명단은 사전에 이미 만들어져서 공산당 중앙위원회 2차회의에서 추인한다. 전국인대에서는 차액선거도 적용되지 않는, 각 직위 당 후보 한 명이 나온 명단을 통과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체제를 극장국가라고도 표현한다.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 차례 쇼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의 고위 직위는 공산당이 미리 정해 놓고 형식상의 대표대회를 개최하여 추인하는 형식이다. 중국은 이를 중국식 민주주의의 장점이라고 선전한다. 서구의 민주는 금권선거 등으로 폄하하고, 서구 정치의 혼란상과 중국정치의 효율성을 대비시킨다. 지금까지의 경제발전 상황만 보면 중국정치의 효율성이 발현된 것처럼 보인다. 현명한지 능력이 있는지 검증도 안 된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정계에 진출하는 한국의 상황과 대비해 보면 훨씬 나은 정치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이 과연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왔을까?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보면 능력보다는 시진핑과의 친소관계 혹은 시진핑에 대한 충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다년간의 부총리 경험이 있는 왕양이나 후춘화 대신 상하이시 서기를 역임한 리창이 총리가 된 것을 현명함과 능력에 따른 인사발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오쩌둥 시기에는 혁명성()과 전문성() 가운데 혁명성을 강조하였다. 덩샤오핑 시기에는 개혁개방의 필요성에 따라 간부4(혁명화, 연소화, 지식화, 전문화)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시진핑 시기에는 무엇보다 시진핑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것 같다.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단점이 많은 체제이다. 그래서 아테네 민주정치의 혼란상을 겪은 플라톤은 철인왕이 통치하는 세계를 희망했다.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통치한다면 쉽게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를 통치자로 임명할 것인가? 중국공산당은 그러한 분별력을 갖고 있을까? 위에서 예를 든 영국 총리도 국민이 직접 뽑지 않는다. 영국의 총리는 집권당 당수가 맡는다. 집권당 당수는 현역 의원들이 선거로 선출한다. 중국의 총리와 다른 점이라면 국민이 직접 투표로 뽑은 의원들이 선거를 한다는 것이고, 누군가를 미리 정해 놓고 형식적인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직접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우리나라는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민주주의 체제였던 독일에서는 희대의 괴물 히틀러에게 권력을 부여했고, 그 결과는 세계의 파괴였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더디지만 조금씩이라도 진화했다. 민주주의 체제가 히틀러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반성하면서 잘못된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발전했던 서구의 국가가 아니라 한국이 먼저 이 장치를 사용했던 경험이 있다. 바로 대통령 탄핵이다. 이런 장치 말고도 민주주의는 권력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견제장치를 만들어왔다. 강화되는 시진핑의 권력을 보면서 희망보다는 비관적 정서를 더 많이 느끼는 것은 필자의 감정만이 아닌 것 같다.

 

구자선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kr.people.com.cn/n3/2022/1017/c203278-101597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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