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삼로향심우회(三路向心迂回)’, 즉 ‘세 개의 길로 우회하여 중심을 향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중국공산당이 한국전쟁 시기 미국의 대(對)아시아/중국 전략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한 개념이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당시 미국의 ‘침략’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대만, 베트남을 통해서도 동시에 전개되고 있었고, 그 최종 목표는 다름 아닌 중국이었다고 보았다.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 제7함대 대만 파견, 베트남에서의 프랑스 지원 등을 하나의 통합적인 중국 침략 전략으로 인식한 것이다.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도 이러한 논리에서 합리화되었다.
그림 1. '삼로향심우회'
미국의 전략이 ‘침략’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봉쇄’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토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어쨌든 간에 중국공산당은 그것을 ‘침략’으로 이해했고, 그것도 ‘중심을 향한(向心)’ 침략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세계를 ‘미국이 이끄는 제국주의 진영’과 ‘소련이 이끄는 반(反)제국주의 진영’으로 크게 양분하면서도, ‘중간지대(中間地帶)’의 개념을 통하여 사실상 소련보다 중국의 중심적 역할을 더 강조했던 마오쩌둥의 세계관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후의 역사 전개에서 나타나듯이,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은 소련보다 중국을 ‘반(反)제국주의 진영’의 중심으로 인식했으며, 1960년대에는 아예 소련을 ‘사회제국주의’로 규정하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중국을 세계적인 반(反)제국주의 투쟁의 중심으로 사유하는 인식은 근대 중국의 역사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세기 후반 이래 ‘반(半)식민지’로 전락했던 중국의 역사적 경험은 중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침략/제국주의’와 ‘저항/반(反)제국주의’로 인식하는 경험적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의 사회진화론적 약육강식의 국제정세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체제 대립이라는 국제정세는 서로 달랐지만, 근대 중국의 역사적 경험이 이 둘을 연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2. 시국도 원본 그림 3. 시국도 새 버전
19세기 말 중국의 위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아무래도 위의 <시국도(時局圖)>일 것이다. 이 그림은 1898년 7월에 홍콩에서 발행된 <보인문사사간(輔仁文社社刊)>에 처음 게재되었다고 하며, 확실하지는 않지만, 작가는 흥중회(興中會) 회원인 셰주안타이(謝纘泰; 1872-1939)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이미지는 근대 중국이 처한 국제적 위기 상황을 시각적으로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하였고, 이후 20세기 초에 도안이 추가/수정된 채색본 형태의 새로운 버전이 등장하면서 더 널리 각인되었다. 중국을 침략하는 주체가 여럿(러시아‧일본‧독일‧영국‧미국‧프랑스 등)에서 하나(미국)로 줄었을 뿐, 중국이 세계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상황에 놓여 있다는 인식은 <그림 1>과 위의 두 <시국도>에서 똑같이 나타난다.
마오쩌둥 통치 아래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국은 이미 과거의 ‘반(半)식민지’에서 벗어나 지역 강대국으로 부상했지만, 그의 ‘중간지대론’이나 ‘삼개세계론(三个世界论)’은 모두 기본적으로 세계를 ‘제국주의 vs. 반(反)제국주의’의 이분법적인 대립 구도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중국의 중심성은 바로 이 반(反)제국주의 투쟁에서 발현되는 것이었다.
주지하듯이, 1980년대에 들어와 개혁개방이 본격화하면서, 대외관계의 안정이 외교정책의 중심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마오쩌둥 시기의 이분법적 대립의 세계관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패권’에 대한 반대는 여전히 강조되었지만, 이는 과거와 같이 세계를 적대적인 진영으로 구분하여 ‘전쟁과 혁명’을 외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중국공산당의 세계 인식에서 중심 키워드는 ‘평화와 발전’이 되었고, 세계의 진영을 나누었던 경계선은 희미해졌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계속되었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후진타오 시기의 ‘화해세계(和谐世界)’, 시진핑 시기의 ‘인류운명공동체(人类命运共同体)’ 담론 등으로 연결되었다.
그림 4. '인류운명공동체'
중국공산당은 이 ‘공동체’의 다원성을 강조하지만,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중국공산당은 문화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국문화의 국제적 영향력 강화를 통한 ‘중화우수문화(中华优秀文化)’의 대외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근대의 서구 중심적 가치관이 해결하지 못하는 인류사회의 새로운 도전들에 대응할 수 있는 ‘중국방안(中国方案)’, 즉 중국식 의제와 원칙, 이념을 국제사회에 제시하겠다는 구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인류운명공동체’의 중심에는 역시 중국이 있다는 것이다.
그림 5. '중국방안'
요컨대,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적 세계이든, 이데올로기와 체제 대립의 냉전적 세계이든, ‘평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평화공존의 세계이든, 그 중심에는 늘 ‘천하의 중앙’인 ‘중국(中國)’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세계를 ‘중국과 그 바깥’인 ‘중외(中外)’로 개념화하여 사유했던 전통시대의 중화주의적 세계관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지 중국 11】
이원준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그림 1. 中央人民科學館 編印, 「抗美援朝運動中的東北與朝鮮圖集」, 1951.10., p.12.
그림 2, 3. 維基百科-時局圖 (https://zh.wikipedia.org/wiki/時局圖)
그림 4. 慧联网 웹사이트, “人类命运共同体: 中国的智慧, 人类的愿望”
(https://zixun.dtb315.com/article/index.html?id=590)
그림 5. 《中国教育报》 2017年06月29日(第5版) → 中国高校人文社会科学信息网 “人类命运共同体”思想助力实现中国梦(https://www.sinoss.net/2017/0629/77262.html)에서 재인용.
-
2024.11
-
2024.10
-
2024.09
-
2024.08
-
202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