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그림 1. “두 개의 회랑 하나의 경제권 (Hai hành lang một vành đai)”
그림 2. 베트남 북부 랑선(Lạng Sơn)성 국경관문의 표지석
-“우의(Hữu nghị; 友誼)”-의 뒤로 보이는 중국의 “일대일로 공향미래(一帶一路 共享未來)” 대형 선전 간판.
“제2차 국제협력을 위한 일대일로 정상포럼”과 베트남
2019년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중국의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국제협력을 위한 일대일로 정상포럼에는 37개국 정상들과 150개국 90개 국제기구의 고위급 대표단이 참석했다. 이번 포럼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 중 하나는, 격화된 미·중 무역 분쟁과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 대한 서구의 공공연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이후 아세안)의 대부분의 회원국 정상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태국과 싱가포르, 브루나이 다루살람의 정상이 불참했던 2017년 제1차 포럼과 비교할 때, 이번에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자 하는 아세안 회원국의 공통된 관심이 드러난 것이자, 동남아시아 지역발전에 대한 기여도와 관련한 대중적 이미지 측면에서 적어도 미국보다는 더 직접적이며 우월한 위치에 있는 중국의 역내 위상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제2차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한 아세안 회원국들 가운데, 중국과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지정학적 특수 관계에 있으며 내년부터 아세안 의장국 지위를 수행하게 될 예정인 베트남도 제1차 일대일로 포럼 때와 비교해 대규모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했다. 특히 이번 제2차 포럼에는 지난해 말부터 공산당 총비서뿐만 아니라 국가주석직까지 겸임하게 된, “친중파” 응우옌푸쫑(Nguyễn Phú Trọng)이 국가수반으로서 정부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 공식방문에 나선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사실 그동안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일대일로 연선국가로서 사업 참여에 예상과 달리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2017년 말 양국의 공산당 총비서인 푸쫑과 시진핑이 일대일로 사업에 상호 협력하기로 합의하는 문서에 서명했지만, 그 후 이렇다 할만한 구체적인 사업 추진이 논의된 바는 없었다. 이번에는 국가수반의 권력까지 거머쥔 푸쫑이 직접 일대일로 포럼의 장에서 양국 간 정상회담을 통해 현안을 논의하게 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협력방안들이 논의되고 실행에 옮겨질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포럼을 앞두고 베트남 내에서는, 양국간 정상외교를 통해 베트남과 중국 사이의 산적한 문제들이 해결되고 베트남이 일대일로 사업의 주도적 참여국으로 나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당-국가의 “친중 노선”이 공공연하게 선언될 수도 있다는 대중적 우려도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푸쫑 주석의 포럼 참석은 무산되었다. 푸쫑주석의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에 관한 각종 루머가 베트남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구고 있던 상황임에도 상당기간 침묵하던 베트남 정부는 대표단 방중직전인 4월 22일 이번 포럼에 국가주석을 대신해 응우옌쑤언푹(Nguyễn Xuân Phúc) 총리가 정부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공교롭게도 푸쫑 주석의 건강 악화 사실이 공식 확인되던 그 날은, 1979년 베-중 국경전쟁 이후 단절된 양국 간 국교 정상화와 탈냉전 시대 “베-중 우의관계” 복원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대표적 친중파 정치인 전 국가주석 레득아잉(Lê Đức Anh)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날이기도 했다. 동아시아 맑스-레닌주의,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에서 “하나의 뜻, 하나의 마음, 승리의 붉은 깃발의 길”에서 함께 싸우며, “호찌민-마오쩌둥”을 함께 외치던 두 나라의 동지적 관계가 그렇게 저물어 가는 듯해 보이는 한편, 자본의 질서와 원리들을 바탕으로 한 일대일로의 계획 속에서 베트남과 중국은 다시 마주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대일로와 함께 하는 두 개의 회랑 하나의 경제권”
이번 제2차 일대일로 정상포럼에서 베트남의 쑤언푹 총리는 중국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와 잇달아 만나 베트남이 중국과의 북부 국경지역 개발을 위해 추진해 왔던, “두 개의 회랑 하나의 경제권 (Hai hành lang một vành đai)” 프로젝트를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과 함께 양국이 공동 추진할 것을 재차 요구하였다. 동남아시아지역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해상 실크로드’ 계획이 남중국해(베트남에서는 “동해 (Biển Đông)”로 부른다)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으로 사실상 답보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지난 2008년 양국 간 국경선 확정이 마무리된 베트남 북부와 중국 남부지역 사이의 국경지역을 육로로 연결하는 물류망 건설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특별히 이번 정상외교에서 베트남은 중국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온, 중국의 윈난(雲南)성과 베트남 라오까이(Lào Cai)성 사이의 철도 연결사업 추진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지난 2004년 5월 당시 베트남의 총리였던 판반카이(Phan Văn Khải) 수상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최초로 제안한 “두 개의 회랑 하나의 경제권” 계획은, 쿤밍(昆明)-라오까이(Lào Cai)-하노이(Hà Nội)-하이퐁(Hải Phòng)을 하나의 축으로 연결하고, 난닝(南宁)-랑선(Lạng Sơn)-하노이(Hà Nội)-하이퐁(Hải Phòng)을 다른 한 축으로 연결하는 경제 물류망을 건설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베트남의 항구와 북부 국경지역 그리고 중국의 남부 내륙지역을 연결하는 경제지대 구축을 골자로 하는 이 계획안은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을 연결하는 물류망의 핵심적 위치를 베트남이 선점하고자 하는 의도와 더불어, 1979년 중국과 치른 국경전쟁의 여파와 주로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는 산악지대라는 지리-정치적인 문제로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던 북부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다. 이 계획안은 2007년에 불어 닥친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의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력에 대한 베트남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기대와 의존도가 더욱 커지면서 다시금 주목받았다. 베트남 정부는 중국의 광둥(广东)성과 육로 및 해로로 가깝게 연결되고 대중국 석탄 수출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꽝닝(Quảng Ninh)성까지 이 계획 내에 추가하여 구체화하였고, 그에 따라 북부지역 고속도로 건설, 국경관문 검역소 확장과 현대화 및 국경무역지대 조성 사업 등을 역동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과 더불어 추진할 수 있어 보이던 이 계획안은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빈번한 무력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문제와 양국 간에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정치-경제적 긴장이라는 난관에 부딪쳤다. 해상 영유권 분쟁으로 인해 베트남 내에서 폭발하기 시작한 반중정서와 베트남의 최대 무역적자국인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정치-경제적 우려는 “두 개의 회랑 하나의 경제권” 사업 추진만이 아니라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참여까지도 민감한 정치적 사안으로 만들었다. 2018년 베트남 정부가 “두 개의 회랑 하나의 경제권”사업의 교두보로 삼고자 야심차게 추진했던 꽝닝성의 번돈(Vân Đồn)지역 경제특구조성 사업관련 법안통과가 중국기업과 자본에 의한 “식민화”를 우려한 베트남 인들의 전국적인 대규모 반중시위로 인해 무산된 사건은 양국 간의 경제개발 협력사업 추진이 정치적 협력관계 복원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 고민을 낳기에 충분했다.
“산과 산이 이어지고, 강과 강이 이어지며, 하나의 바다를 공유하는...”
베트남의 음악가 도뉴언(Đỗ Nhuận)이 1960년대에 작곡한 노래 “베트남-중화”는 베트남어와 중국어 가사를 통해 자연화된 연결체이자 순망치한(môi hở răng lạnh; 脣亡齒寒)의 공동 운명체로서 양국관계를 상징화한다. 중국의 오랜 침략에 시달려 온 베트남 인민들의 뿌리 깊은 반중정서를 극복하기 위해, 호찌밍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건설된 “신(新) 중국”은 이전의 중국과는 전혀 다르다고 설득했고,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의 깃발 아래 양국 인민은 함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세력”에 맞섰다. 그러나 1979년 베트남 북부 국경지역에서 벌어진 전쟁과 해상영유권 분쟁은 또다시 과거의 역사적 원한을 상기시키고 상호 불신의 기억을 남기고 말았다. 전 세계 사회주의권이 급격히 무너져 내리던 상황에서 레득아잉은 “그래도 베트남이 믿을만한 동지는 중국밖에 없다”라고 다시금 설득에 나서, 베트남과 중국의 정치적 동맹 관계를 복원시켰다. 그리고 이제 중국이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 하에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펼쳐내고자 하는 “중국몽(中國夢)”과 더불어 베트남은 스스로의 위치를 재설정하는 문제를 두고 경합하는 중이다.
베트남이 중국에 제안한 “일대일로와 함께 하는 두 개의 회랑 하나의 경제권” 계획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대한 영향력을 넘어 중국과의 특수 관계를 활용해 동남아시아 지역 내의 정치·경제적 위상을 제고하고자하는 ‘이몽(異夢)’을 담고 있다. 이 계획의 추진 향배에 따라, 동아시아 전체의 정치·경제·물류의 흐름과 지형이 바뀔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베트남 국내적으로도 ‘도이 머이(Đổi mới)’ 이후 호찌밍시와 남부지역에 중심을 두고 있던 경제지형에 큰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도 있기에 그 추이와 경합과정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양국 간 전쟁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며 소수민족의 삶의 터전인 베트남 북부와 중국의 남부 국경지역이 “자본주의적 물류흐름의 매듭이자 교차점”으로 더욱 급속히 전화해 갈 것으로 예상되기에, 국경경관(borderscape)의 변화를 추적하고 그 문화-정치적 의미들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려는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심과 노력들을 통해, “연결성(connectivity)”과 “인프라스트럭쳐 (infrastructure)” 건설에 관한 환상과 강박, 그리고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며, ‘다시쓰기와 덧쓰기’를 통해 펼쳐지고 있는 “일대일로적 질서”를 이해할 인식론적 지평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심주형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 이 글에서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Ehler, Charles (2013). “Marine spatial planning—what have we learned from international experience” National Workshop Proceedings on Application of Viet Nam’s Marine and Coastal Spatial Planning—an ecosystem-based management approach. Nguyen Chu Hoi et al. Grand, Switzerland:IUCN, p.89.
그림 2.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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